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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

유광식 작가의 <고주파 인천>
바다 위 산소공장

(10) 유광식 / 사진작가

옹진군 소청도, 2018ⓒ유광식   지난달 소청도에 다녀왔다. 섬이 많은 인천이지만 그렇다고 섬에 직접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소청도에 가보니 보는 이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지질암석이다. 지구 생명의 초기 활동을 알 수 있다는 스트로마톨라이트와 하얀 암석으로 불리는 분바위가 그것이다. 특히 분바위는 등대 불빛 못지않게 밝은 색을 발하고 있어 등대 없던 시대의 이정표(월띠라고도 함)로 불릴 만도하다. 한편 20세기에는 그 문양의 아름다움과 희귀함을 탐한 나머지 애석하게도 상당수 채석되었다.  배로 3시간 반을 울렁울렁 가야 당도하는 소청도. 그곳은 공장이었다. 남조류의 광합성 활동으로 원시 지구대기에 산소를 생산, 공급한 것이다. 그리고는 서서히 퇴적된 암석(스트로마톨라이트)이 바로 그들의 공장 터인 셈이었다. 가히 흉내 낼 수 없는 퇴적의 인내야말로 작은 소청도를 커다란 풍채로 바라보게끔 한다. 가까이 대청도, 백령도가 부럽지 않은 탄탄한 내력이 숨 쉬는 섬이며, 함부로 대할 돌이 아니라는 생각도 출렁였다.  우리는 오랜 고독의 무게를 짊어진 자연물체에 경외감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감정은 화석화된 과정에 비하면 너무나 짧아 금세 흥미를 던져버리고 만다. 채석되어 나뒹구는 분바위가 과거 인간 욕심의 증거라면, 분칠을 한 것이 아니라 침묵하며 분을 삭이고 있는 풀이가 어울리겠다는 생각이다. 한편 섬은 접근의 제한으로 지구환경의 수장고도 맞지만 인간활동의 부메랑으로 일컬어지는 플라스틱류의 바다쓰레기 문제가 코앞에 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 옆 빈 PET병에 산소를 넣어 잠가 두면 어떨까 싶다가도 한 숨 내쉬니 이산화탄소 수치만 오른다는 판단이다.  
심형진의 자유여행
이작, 이름의 뜻을 새기다

(6) 이작도

이작도 부아산에서 바라본 소이작도와 대이작도로 둘러싸인 내해. 두 개의 섬의 해안선이 하트를 형성하고 있다. 이작도 이작도는 두 개의 섬이 마주하고 있어 섬으로 둘러싸인 내해가 있다. 크기에 따라 소이작도와 대이작도로 불리는 이작도, 두 섬이 서로에게 파도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여 내해는 언제나 잔잔하다. 이런 조건에서 이작도란 이름이 유래했는데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그 하나는 두 섬이 바다를 가리니 그 안에 배를 숨겨두기가 좋다. 해적들이 배를 숨겨두었다가 이를 모르고 지나가는 조운선이나 배를 습격하여 공물을 탈취하고 다시 이 곳에 숨었다 하여 도둑에게 이로운 섬이라는 뜻의 이적(利賊)도라 불렀는데, 이 음이 변하여 이작도가 되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두 섬이 있는데 이짝 섬에서 저짝 섬으로 폴짝 뛰면 넘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워서 ‘폴짝섬’이라 불렀다가 이짝 저짝의 음을 빌려 이작도가 되었다는 설이다. 당연히 섬 주민들은 이짝을 좋아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도둑놈 후손이라는 말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옹진군지에도 그렇다고는 하나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한 발 빼었다. 하나를 놓고 부르는 이름이 갈리는 것을 보면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가가 중요하다. 설사 이작도가 도적의 소굴이었다 하더라도 그 도적을 어떻게 보는가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작도에 발을 디디면서 이름에 내포된 뜻과 중요함을 새겨본다.     이작도 오형제 바위   이작도 선착장에 내려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부아산 아래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곳에 오형제 바위가 있다. 삐죽 솟아 있는 기둥 다섯 개가 커다란 바위를 형성하고 있는 씨스택의 모습에서 유래한 듯하다. 이 바위에는 이름에 걸 맞는(?) 전설이 있다. 효성이 지극한 아들 다섯이 바다에 일을 하러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데 아버지는 풍랑에 휩쓸려 이승을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형제들은 기다리다 결국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바닷가에 우뚝 솟은 기암에 얽힌 수많은 전설과 대동소이하다. 대부분은 지아비를 기다리는 지어미의 망부석이 많은 데 아들 다섯이 동시에 죽었다는 내용은 아마도 유일하지 아닐까 싶다. 여러 번 이곳을 방문했지만 ‘아버지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왜 돌이 되었을까?’ 의문이 들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같은 곳을 방문해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매번 감흥이 다른데, 이번엔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해서인지, 전설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가부장제에 대한 생각이 하나이다. 효성이 강한 아들들은 아버지가 죽으니 더 이상 살 희망이 없어 그 자리에 굳어 돌이 될 수도 있었을 수도 있다. 그만큼 효성이 강해 울다 기절하고 깨서 다시 울다 기절하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죽음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다섯이 모두 그렇게 되었으니 효성으로 치면 이들을 대적할 자 그 어디에도 없으리라. 이러한 효성을 기려 마을에서 이 바위에 매년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 또 한편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죽었으면 아비가 없지 어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없으니 이 또한 가부장제의 산물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효성이 지극한 아들들이 아버지가 없다고 돌이 되어야만 했는가? 돌이 되기까지 맵고 쓴 삶의 연속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아버지 없는 삶이 결국 살아 있는 생명을 돌로 만드는 섬 생활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자기 가족 목숨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섬 생활에서 남의 자식 생활까지 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오형제 바위를 보며 사회가, 마을이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돌보는 복지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풀등 뒤로 멀리 선갑도가 보이고 있다. 풀등 이작도를 가는 이유는 여럿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풀등이다. 함께 간 사람들은 풀등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다. 모래섬이 바다 밑에 잠겨 있다 썰물 때가 되면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를 풀등이라 한다. 이작도 자연생태관에 근무하는 해설사는 “풀은 모래의 사투리이며, 풀등 보다는 풀치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다.”고 한다. ‘풀’이 모래를 나타내는 말이라는 점이 신기하다. 바람에 모래가 풀풀 날려서 생긴 말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치’는 꽁치와 갈치처럼 가늘고 긴 형상을 이르는 우리말이기에 모래톱이 가늘고 길게 뻗어 있는 형상을 잘 표현하기 때문이란다. 설명을 들으니 그럴 듯하다. 풀등의 면적이 한 때 70만평-여의도가 대략 80만평이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이었는데 현재는 1/3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몇 십 년 동안 이 인근에서 바다모래를 채취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계속 바다모래를 채취하면 20년 이내에 없어질 수도 있단다. 풀등은 갯벌만큼 해양생태계의 보고이고 수많은 생물들의 서식처인데 이렇게 조금씩 사라지면서 풀등에 사는 생물도 함께 사라졌다는 말을 들으니 풀등이 신기하게 여겨지면서도 사막처럼 고요할 뿐 그 안에 깃든 생물들을 거의 보지 못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선생의 해설을 들으면서 이 모래섬을 완전한 풀등으로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등’은 우리 신체의 등처럼 넓고 평평한 형태를 이르는 말이다. 과거의 풀등은 사람들에게 정말 넓게 다가왔을 것이다. 인간이 자연 변화에 나쁜 영향을 많이 끼쳤는데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이 풀치다. 지금이라도 ‘풀치’가 ‘풀등’이 되도록 바다모래 채취를 중지해야 한다. 풀치가 풀등이 되는 날 인천 앞바다는 조기파시의 영광과 민어파시의 영화를 조금이라도 회복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2018년 9월16일 이작도를 다녀와서   풀등에서 바라 본 이작도 소이작도 소야도 덕적도 이작도 풀등선착장 전망대에서 본 풀등의 일부  
동네방네 아지트
10대들의 문화와 모임을 품어주다

[동네방네 아지트]⑧ ‘아프리카..

  중구 홍예문 인근의 아프리카 목공소. ⓒ인천문화재단   지난해 인천문화재단은 주민들이 직접 영유하고 창조하는 생활문화예술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동네방네 아지트’라는 사업을 추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인천in>은 지난해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에 선정된 공간을 포함, 생활예술 차원의 문화공간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공간들을 한 달에 한 번씩 소개하고 있다. 9월에 찾은 공간은 홍예문 근처에서 목공을 기반으로 하는 재능나눔 활동은 물론, 아이들과 청소년의 모임방 역할까지 하고 있는 ‘아프리카 목공소’다.   ‘아프리카 목공소’를 이끄는 김영수 사장. ⓒ배영수   ◆ “우연히 테이블 만들어달라 부탁받으며 목공소로 불렸다”   동인천역 대한서림과 학생교육문화회관 사이를 거쳐 홍예문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한 아프리카 목공소. 이미 그곳을 지나는 순간 ‘아, 이곳이구나’라고 알 수 있는 아이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어설프게 나무 위에 그려놓은 아이들의 그림을 따라 무척 정교하게 재단한 나무를 보면 그 아이러니함에 발길을 멈춰 서게 되는데, 이내 나무색 가득한 색감으로 꾸며진 외관과 열려 있는 문 너머 걸려있는 목자재와 공구들은 여기가 목공소 혹은 목공예술을 하는 공간임을 단번에 알아채게 한다.   이곳을 이끄는 김영수 사장은 사실 인천 출신도 아니고, 당초 목공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부산 출신으로 인천 땅은 백령도에서 해병대 복무를 하면서 처음 밟아봤지만, 정착 전까지 그는 인천에서 터를 잡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고. 서울에서 자동차 영업을 하다 우연한 기회에 인천 주안동으로 이사를 왔고, 구월동 농산물시장에서 일을 하다 건축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원자력 발전소 현장에서도 일하는 등 잘 나가는 시절도 있었지만 회사를 나와서는 어려움도 많았다. 어려움이 심할 때는 인생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했었지만, 인천으로 다시 돌아와 우연한 시기에 삶의 희망을 찾아 전망이 괜찮은 현재의 목공소 공간을 숙소로 임대했다. 이곳이 목공소로 불리게 된 것도 재미있다. 장비 몇 개 갖다 놓고 내부를 꾸며놓은 게 목공소인 줄로 착각한 동네 아주머니가 목재 테이블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이를 들어주면서 “동네에 목공소가 있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이에 그냥 목공소로 자연히 자리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때 아주머니 부탁이 30만 원 줄 테니 해달라는 거였는데, 월세가 28만 원이었어요. 그래서 해줬던 거예요. (웃음) 당시 제 삶의 경제적 수준이 바닥이다 보니까. 그런데 그렇게 공구로 꾸미고 가끔 안면이 있는 동네 분들 부탁 들어드리고 하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목공소로 불리고 있었더라고요. 건설업에 종사한 경력이 있어서 공구 사용 자체는 익숙했고, 동네 분들이 원하는 목공품들이 탁자나 책상 같은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거여서 그런 것들이 수년 간 아프리카 목공소를 이끌어왔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중부경찰서 동인천지구대 제안으로 10대 청소년들이 협의된 공간에 벽화작업 및 벽돌 색칠작업을 하는 모습. ‘우범지대’로 인식된 곳들의 분위기를 바꾸자는 차원이었다. ⓒ아프리카 목공소   ◆ “아이들이 오히려 어른들보다 몇배 더 낫다.”   김영수 사장은 목공 일만 아니라, 인천지역에서 예술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안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공 체험수업이나 인천문화재단 소품 제작을 하면서 입주작가들 일부와 컬래버레이션의 경험도 있다. ‘한국미술조망전’에 자신 혹은 협업 형태로 작품 출품을 하고 입주작가 쇼케이스 등을 했던 경험도 있다.   현재 아프리카 목공소의 수입원이라고 하면 작은 가게들이 의뢰해 오는 목재나 철재 등의 인테리어나 집기 제작, 집을 비롯한 공간 수리 등이다. 홍예문 인간 카페 ‘파랑돌’과 신포동 재즈 클럽 ‘버텀 라인’ 등 인근 가게들 중에서도 그의 손길이 닿은 경우가 꽤 있고, 그 역시 동네 주민들의 일 해줄 때는 특히 더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하지만 아프리카 목공소가 ‘동네 아지트’임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아지트로서 그 기능을 한다는 점이다. 인근 인성여중고 혹은 제물포고 등의 아이들 사이에서 김 사장은 ‘동네 목공아저씨’로 통한다. 동네 목공아저씨는 이 공간에 계속 놀러오던 아이들과 청소년들, 신기한 마음에 처음 들어온 학생들까지 누구라도 찾아와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던, 그림을 그리던 그들 마음대로 놀 수 있게 배려했다. 처음엔 주변에서 아이들, 학생들이 자주 놀러온다는 것을 우려하는 눈빛도 있었지만, 그건 다 편견이라는 게 김 사장의 말이다.   “10대 아이들이 모이면 무법천지처럼 놀 거라는, 어른들이 색안경을 쓰고 보는 시선들이 있습니다. 물론, 잘못된 생각이예요. 만약 그게 맞다면 아프리카 목공소 역시 무법천지가 돼 있었겠죠. 아이들이 스스로 모이는 공간에서 어울리면, 각자 질서들을 잘 지키고, 논 다음에 치울 것이 생기면 더 잘 치웁니다. 스스로 지켜야 할 룰 같은 것도 스스로 만들고요. 외려 나 같은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몇 배는 훨씬 나아요.”   ‘아프리카 목공소’가 매년 할로윈데이마다 치르는 ‘구미호 데이’의 기념촬영. ⓒ아프리카 목공소   ◆ “조만간 10대와 아이들 주인인 활동무대 더 크게 만들어주고파”   지난해 인천문화재단이 진행한 ‘동네방네 아지트’에도 아프리카 목공소는 아이들을 위한 아지트 및 그들의 콘텐츠를 위한 방편으로 참여했다. 원래부터도 아이들이나 학생들, 젊은 청년들이 아지트라는 생각으로 놀러오면서 목공체험도 하고 결과물도 선보였던 활동이 있었는데, 인천문화재단에서 이를 지원했던 거였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진행했던 것이 ‘GO AFRIKA 목공교실’이라는 이름의 활동이었고, 그들 스스로가 그림과 톱질, 나아가 용접 등까지 원하면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그들이 직접 제작한 벤치를 노인들 쉼터에 제공하기도 하고, 후미져 우범지대처럼 보였던 곳엔 아이들이 벽화를 그리는 활동도 했다.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과는 별개로 매년 할로윈 데이에 ‘구미호 데이’를 기획해 아이들, 10대 학생들과 같이 노는 난장을 열기도 한다.   아프리카 목공소는 올해의 경우 문화재단이나 시에서 하는 직접지원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당초 참여 계획이 있었지만 공기관의 계획이 아프리카 목공소가 지향하는 바와는 달라 '푼돈 지원'에 중심을 흔들리게 하면 안 된다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는 게 김 사장의 설명이다. 대신 올해 중구의 교육혁신지구 선정과 관련해 청소년들의 진로 멘토링 수업 중 목공분야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일반인들까지 대상으로 하는 ‘동네 예술대학 : 꾸물꾸물 문화학교’의 목공수업 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이 동네에 거주하거나 자주 오가는 아이들이 직접 동네의 뉴스를 전할 수 있는 소규모 신문 제작을 한번 해 보고 싶어요. 사실 저녁에 놀거리 같은 게 없어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수도 적지 않은데, 그들을 활용해 그들 스스로 활동하도록 배려하고자 하는 거예요. 그 아이들도 멍하니 놀면서 스스로 명분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나 동네 주민들이 이들에게 활동할 명분을 주면 그 아이들이 어울려 놀면서도 활동할 수 있게끔요. 조만간 정말 해볼 생각입니다.”    
강화, 작지만 큰 학교 이야기
우리 모두가 사회자고 기자였다

(4) 교장 선생님과의 인터뷰 /..

                                      강서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2018년 8월 27일, 2018년 9월 1일자로 북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으로 발령 나서 강서중학교를 떠나는 김태용 교장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나는 사회자가 되고 친구들은 기자가 되어 질문하기로 하였다. 총 질문은 8가지였고, 교장 선생님께 질문지를 먼저 드렸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장선생님과 역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우리가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에 교장선생님이 오늘 아침에 있었던 임학중학교의 여교사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교장선생님과 여교사분이 아는 사이여서 안타까웠다고 하신다. 인생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교장선생님의 간단한 말씀이 끝나고 나와 친구들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사회를 처음 맡아봐서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서 걱정이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1번 질문은 구자빈이가 시작하였다. 질문은 “선생님이 되려고 했던 이유가 있나요?” 교장선생님은 고등학교 3학년까지 교사라는 직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교장선생님이 중학생 때 수업료를 안내면 담임 선생님이 집으로 수업료 갖고 오라고 보냈다고 하셨다. 당시 학교와 교장선생님의 집까지는 6km인데 그 거리를 다녀오라는 선생님이 싫으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교장선생님은 대학교 시험을 보았다고 한다. 의과대학에서 떨어져서 아버지가 가라는 사범대학교에 가게 되었다고 하셨다. 교장선생님이 대학교 3학년 때, 지금의 사모님과 연애를 하면서 여자 친구가 교사를 하라고 하여 교장선생님은 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기자였다 김가은이가 2번 질문을 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누구이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요? 교장선생님이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는 고영익이라는 학생이 가장 생각난다고 하셨다. 이 학생이 수업시간에 엎드려서 울고 있기에 따로 불러서 왜 우냐고 물어보니 아침에 교통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영익이는 건강을 위해서 치료를 위해서라도 등하교를 자전거로 하였는데, 등교하면서 택시와 부딪쳤다고 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는 영익이에게 사과는커녕 오히려 화를 내며 마구 욕하고 심지어 때리기조차 했다고 한다. 교장선생님은 그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하였는데, 오히려 교장선생님께 마구 욕을 하였다고 한다. 교장선생님은 통화 내용이 녹음이 되고 있으며, 만일 이 학생에게 찾아와 정중하게 사과하지 않는다면, 경찰에 고소한다고 했다. 결국 그 택시기사는 학교로 찾아와 사과를 하였다고 한다. 교장선생님은 이 일 때문에 고영익이라는 학생을 기억하게 되었다고 한다. 3번 질문은 심재현이가 하였다. “교사나 교장으로서 해보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 있었나요?” 교장선생님은 점점 교장이 되면서 마을과 학교가 하나가 되는 마을교육공동체학교를 하고 싶으셨다고 한다. 강서중학교를 마을교육공동체학교로 만들려고 했는데 강서중학교가 독립적으로 있어서 쉽지 않았다고 하셨다. 교장선생님은 하점면장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봤는데, 하점면장은 야구부를 만들자고 하였고, 교장선생님이 거절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동광중학교도 축구부를 만들었는데 실패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일부의 학생들을 위해서 학교가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다음 4번은 이은정이가 하였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과 아쉬웠던 점은?” 교장선생님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교장선생님의 사모님과 만나서 결혼한 것이 가장 행복했다고 하셨다. 여러 가지 다툼은 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사모님과 결혼한 것이 가장 행복했다고 하셨다. 그 반대로 아쉬운 점은 고등학교에서 입학시험에 떨어진 것과 의과대학의 길이 막히셔서 너무 아쉬웠다고 한다.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의과대학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다음 5번 질문은 김승지가 하였다. “강서중학교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은?” 교장선생님이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 지역을 마을교육공동체학교를 만들고 싶었는데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고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드는 게 어려웠다고 한다. 6번 질문은 양성호가 하였다. “선생님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직업을 가졌을 것 같나요?” 교장선생님은, 가정 형편이 되었다면 재수를 해서 의과대학으로 진학했을 거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아니면 학원 수학강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유는 말을 잘 하니까 아이들을 꽤서 교장선생님의 강의를 많이 듣게 하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웃음). 7번 질문은 유호민이가 하였다. “퇴임하고 나서 제 2의 인생계획은 무엇인가요?” 7, 8년 전 존경하는 선배 교장선생님께 굉장히 도전적인 말을 교장선생님은 들었다고 하셨다. “김 교장 당신은 교회를 다니니까 자네가 가진 재능 달란트를 십일조 해본 적이 있나?” 라는 그 질문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셨다. 존경하는 선배 교장선생님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가서 과학을 가르치고 오셨다고 하셨다. 탄자니아의 학생들은 모두 컴퓨터와 과학, 그리고 수학을 배우고 싶어 한다. 선배교장 선생님은 그 말에 힘을 얻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고 하셨다. 하여 김태용 교장선생님도 그 분처럼, 퇴임하고 해외 교육봉사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8번째 질문은 이다희가 했다. “저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교장선생님은, 우리 모두가 날마다의 일상을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환경이 안 좋다고 욕을 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손해가 된다고 하셨다. 또 환경이 안 좋을수록, 그 환경이 오히려 나의 삶을 더 균형 잡을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하셨다. 자신의 꿈보다 우선은 일상의 삶을 잘 살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면, 좋겠고 책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사회자와 기자가 되어 인터뷰 하는 체험을 해 보았다. 좋은 기회였고 체험이었다. 그리고 4교시 수업시간, 인터뷰를 마치면서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점심시간까지 5분 남았네요. 오늘은 3학년보다 2학년이 먼저 점심을 먹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도 2학년 모두, 아니 우리 모두가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 당당하게 줄을 서, 3학년보다 먼저 식사하는 거죠. …어때요? 한 번 해 볼까요?” 교장선생님의 뜻밖의 제안과 도발(?)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우리는 ‘여럿이 모두 함께!’ 승강기를 타고 식당으로 갔다. 이것은 또 하나의 학창시절 추억 쌓기가 될 거 같다. 행복하고 재밌는 경험이었고 도발이었다.  
김인자 작가의 할머니 꼬시기
"오늘 왔으니 추석에는 또 못 오지?"

(231) 강화 큰집

"나, 너도 못보고 죽는 줄 알았다. 병원에 있는데 나는 니가 그렇게 보구싶더라."   비오는 일요일 강화에 사시는 큰아버님댁에 갔다. "비오는데 아버지 산에 가실까?" "아부지가 가신댔으니까 비와도 가실걸." "안가실거야.오늘 못가면 추석에 가등가.비 안오는 평일에 다녀오지뭐." "아부지한테 전화드려봐. 아부지가 가신다고 하셨으니 오늘 비와도 가실거야."   나는 안다. 할머니하고 할아버지들은 당신이 한번 정하신건 왠간해선 번복을 하지 않으신단걸. 당신들이 간다하고 정하셨으면 하늘이 두 쪽 나도 꼭 가셔야하고 온다하고 정하셨으면 꼭 오신다는걸.   지난 여름 시큰아버님이 암수술을 하셨다. 병원에 계실 때 진즉 찾아뵀어야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병원으로 찾아뵙지를 못했다. 큰어머니도 앉아서만 생활하신다는 말을 일찌감치 들은터라 찾아뵙지 못한 송구함에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않았더랬다.   "아부지가 이도한테 강화가자고 하셨대 일요일에." 저녁상을 물리는데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툭 던진다. "추석에 안가시고 미리 다녀오시려나보다." "할머니 산소에도 미리 가보고 납골당도 가보신다고.   15년 쯤 되었을래나. 시아부지가 납골당에 가족묘를 사셨다. 아파트로 치면 대형 평수다. "니들 자식에 자식까지 다 묻힐 수 있어. 그러라고 내 일부러 큰거 샀다. 풍광도 좋고 앞에 뭐 하나 거칠 것이 없게 탁 트인게 제일 전망 좋은 곳에 샀다. 어떠하냐, 좋지?"   생전 결혼이란걸 안하고 살 줄 알았던 시동생이 늦은 결혼을 하고 딸 낳고 아들 낳고 알콩달콩 잘 사는게 기특하고 좋으셨나보다. "딸 다 필요없다. 아들이 최고야. 뭐니 뭐니해도 제사 지내 줄 아들이 최고지." "아부지, 저는 딸만 둘인데." "너는 니가 나한테 최고라서 너는 아들 없어도 괜찮다.이도 아들이 니 제사도 지내줄거다. 딸들 다 필요없다. 지금도 봐라. 내 끼니 정성껏 챙기는건 너 밖에 없잖냐."   지난 여름 시어머니가 허리수술을 하셔서 병원에 계실때 한 달 넘게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 끼 시아버지 식사를 챙겨드렸다. 시아부지는 그때도 제사 얘기, 아들이 최고란 얘기를 하셨더랬다. 딸은 있어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딸만 둘인 며느리 앞에서.   "애들 다 데리고?" "응, 돌도 안된 애길 데리고 납골당엘 왜 가신다는건지 아부지도 참." 툴툴대는 남편 맘을 모르는 바 아니나 난 시아부지가 왜 그러시는 줄 안다. 시아부지는 시동생이 낳은 아들을 조상님들께 자랑을 하고 싶으신거다.   "아부지가 강화 큰집에 가자고 전화하셨어." "다녀와." "자긴 안가고?" "어, 나는 안가." 했더니 남편이 하는 말 "자기 안가면 나도 안갈래. 하는 거다. "아부지가 가자고 했담서 어캐 안가냐?" 했는데 막상 일요일이 되어 밍기작 밍기작 가기싫어 늑장부리는 남편을 보니 안되겠단 생각이 들어 채근해 길을 나섰다.   "산소에 가져갈 술이랑 포랑 사셨나?" "몰라." "어무니가 사서 보내셨겠지? 큰집에 과일이라도 사서 가자." "아부지가 사셨겠지."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시아부지가 산소에 가져갈 제물이랑 사과 한 박스랑 사셨단다. 큰아부지가 큰어무니대신 조석 끼니를 챙기신다기에 밑반찬을 사가려고 재래시장에 들렀다. "차 세울 때 없어. 한바퀴 돌고 올테니 빨리 사가지고 와." "얼굴 좀 펴라.이왕에 나선길. 아부지 앞에서도 그렇게 인상써라." 처갓집에 가자는 것도 아닌데 볼멘 소리를 하는 성질 급한 남편. 가뜩이나 가기 싫어 하는데 한 소리 듣기 전에 서둘러 물건을 사려고 하니 마음이 더 바빴다. 앉아서 생활하시는 큰어머니 대신 큰아버지가 조석을 하신다하니 드실 반찬이 필요할 것 같았다.' '소문난 밑반찬가게' 간판이 보인다. 한 눈에도 맛있어 보이는 반찬들이 팩에 예쁘게 포장되어있다. 큰아버지 큰어머니 두 분 다 틀니들을 하셨으니 멸치볶음은 중멸치보다 잔멸치가 좋겠지 하는 생각에 잔멸치 두 팩 사고 아몬드랑 해바라기씨, 땅콩 등을 버무린 견과류 두 팩도 사고 큰아버지 좋아하시는 더덕무침도 두 팩사고 깻잎 간장무침도 두 팩, 고추절인거, 잔게고추장 무침도 두 팩 사고 김 무침, 동태전도 사고. 밑반찬을 사고 보니 다음 주면 추석이라 그런지 떡집에 맛있는 송편도 있길래 송편도 샀다. 빵집에 들려 롤케잌이랑 과일가게 들려 큰어머니 좋아하시는 레몬과 아보카도를 샀다. 뜨끈 뜨끈한 두부도 만들어 팔기에 사려고 두부집가는데 남편이 빨리오라 성화다.   "뭘 그렇게 오래 걸려? 세 바퀴나 돌았다. 큰아버지 큰 어머니 당신들 자식도 다섯이나 있는데.우린 할 도리만 하믄 된다." 기분좋게 나선 길이 아니어서일까? 남편은 큰집을 가는 내내 길을 헤맸다. "귀신한테 홀렸나? 왜 같은 길을 뺑뺑 도는 기분이 들지?" 먼저 시아버지를 모시고 출발한 시동생한테서 어디냐고 계속 전화가 왔다. 큰아버지가 식사챙기기 어려울테니 큰집 들어가기 전에 점심먹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길을 헤매는 남편 덕에 점심은 못 먹었지만 강화 온 섬을 순회했다.내가 좋아하는 바다옆에 딱 붙은 동막해수욕장은 사람들로 붐볐다.여름철 휴가때처럼 텐트친 사람도 많고 주차장도 차들로 꽉 찼다.   예전에 큰집에 갈때는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제는 석모도에 다리를 놓아서 배를 타지않고도 큰집에 간다. 그래서 그런지 외포리선착장은 갈매기한테 주는 대형 새우깡을 팔던 가게 대신 대형 음식점들로 꽉꽉 들어찼다. 대형 젖갈수산시장이 들어서 흡사 연안부두를 보는 듯했다. 짧은 거리였어도 배를 타려고 줄줄이 섰던 차들의 긴행렬, 사람들이 던져준 새우깡을 먹으려고 끼룩끼룩 거리며 배에 낮게 날아들던 갈매기들이 그리웠다.   "대파 좀 따주랴?" "감자좀 주까?" "뭐 줄게 없네." 하시며 뭐 하나라도 더 주시려는 큰아버지. "그걸 다 주면 어떻해요? 추석때 오는 애덜도 줘야지."하며 말리시는 큰어머니. "아 나는 몰라. 먼저 가져가는 놈이 임자야." 하시며 고추를 하나라도 더 따서 봉투에 넣으시는 큰아버지가 출발하려는 차창 밖으로 잡은 손을 안 놓으신다. "애덜 밑으로 들어가는 돈도 많을건데 뭔 돈을 이르케 많이 주냐? 밑반찬도 그케 많이 사오고." "큰아부지 큰어머니랑 읍내 나가셔서 잡숫고 싶은거 사드세요. 큰아부지 매끼니 식사 챙기시는거 힘드세요." "그래, 고맙다. 내 잘 쓸께. 힘들텐데 냉장고 청소까정 다해놓고 밑반찬도 채워주고. 니 애비는 참 복이 많다. 싹싹하고 이쁘고, 똑똑하고, 으른맘을 으찌 그리 잘 헤아리냐.." "큰아부지 ,이장님댁 마이크 갖다드리까요?" 옆에 있던 남편이 웃으며 안하던 농을 한다. "그래, 그래 ." 큰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오늘 왔으니 추석에는 또 못 오지? 바쁘니까 안 와도 된다." 말씀은 그리 하시면서 잡은 손도 못 놓으시고 눈으로 손으로 또 오라시는 큰 아부지를 보니 나도 따라 눈물이 난다. "큰아부지, 그러고보니 제가 오늘 큰어머니랑 화투를 못쳤네. 잔전 많이 바꿔가지고 저 금방 또 올께요." "그래 그래 금방 또 오너라. 어서 가." "아, 영감이 손을 놔야 가지요. 애 손 다 짓무르겄네." 큰 어머니가 소리를 빽 지르신다. 차가 출발하고 뒤를 돌아보니 서서 큰아버지와 앉아 큰어머니가 잘가라 손을 흔드신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내 눈앞이 자꾸만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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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인천 곳곳서 다양한 문화행사

도호부청사서 민속문화축제, 월미공원서는 한가위 민속한마당

인천 도호부청사 추석 민속축제 모습.   인천지역에서도 추석연휴 동안 공연과 전시, 민속놀이 등 문화행사들가 열린다. 인천을 방문한 외지인들 및 멀리 가지 못한 시민들이 즐길 만한 여러 행사들을 소개한다.   인천도호부청사에서는 추석 다음 날인 25일(화)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추석맞이 민속문화 축제’가 진행된다. 대금정악, 강강술래, 전통무용 등의 공연과 단소만들기, 목공예체험, 연만들기, 떡메치기, 송편빚기 등 전통문화 체험 및 제기차기, 널뛰기, 투호놀이, 다듬이지, 맷돌 돌리기 등의 민속놀이 체험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월미공원 만남의 광장에서는 24일(월)과 25일(화)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한가위 민속 한마당’이 열린다. 사물놀이와 북청사자놀이, 판소리 등 공연과 함께 탈 만들기 체험, 에코백 만들기 등 남녀노소가 다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꾸며진다.   또 22일과 23일 양일간에 걸쳐 인천공항 제1터미널 1층 중앙 밀레니엄홀과 면세점에서 국내·외 여객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공연 및 이벤트가 펼쳐진다.   22일에는 인천 무형문화재 제4호 대금정악 보유자 진철호 선생이 아리랑 변주곡 등을 연주한다. 또 체혐행사로는 인천무형문화재 제17호 완초장 한명자 선생과 함께 전통공예품을 만들어보는 시간이 마련된다. 흔히 왕골로 알려져 있는 완초라는 풀을 재료로 돗자리, 방석 등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완초공예작품 전시도 같이 진행된다.   23일에는 인천무형문화재 제20호 휘모리잡가 예능보유자 김국진 선생이 비단타령, 방아타령, 아리랑 등을 선보인다. 같은 날 인천무형문화재 제11호 규방다례 기능 보유자인 최소연 선생과 함께 전통 차(茶)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차 문화와 생활예절을 정립한 규방다례를 체험하게 된다.   인천 개항장 일대의 인천아트플랫폼과 한국근대문학관은 추석 당일만 휴관하고 전시가 진행된다. 아트플랫폼의 B동 전시장에서는 오는 28일(금)까지 ‘모두와 눈 맞추어 축하 인사를 건네고’, 창고갤러리에서는 22일(토)부터 30일(월) 까지 ‘황기숙 개인전’이 열린다. 한국근대문학관.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진행 중인 ‘소설에 울고 웃다-근현대 베스트셀러 특별전’은 청소년이 한국문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어른들은 학창시절 읽었던 이수일과 심순애의 ‘장한몽’, ‘순애보’, ‘청춘극장’, ‘별들의 고향’ 등의 작품을 실제로 보는 재미가 있다.   또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26일 오후 8시에는 ‘2018 트라이보울 시리즈-해설이 있는 키즈 클래식 콘서트’, 오후 2시에는 청라호수도서관에서 ‘소리꾼 김명자의 판소리 한마당’ 행사가 열린다.   추석 연휴 다음 주말인 29일(토)에는 10시부터 인천 곳곳의 동네 책방들과 함께하는 ‘2018 문학페스티벌; 신바람, 동네책방’이 개최된다. 나비날다책방, 딸기책방, 북극서점 등 9개 책방에서 동네 책방만의 독특한 책 전시 부스를 구경하고, 작가와의 만남도 가질 수 있다.   또 같은날 12시부터 아트플랫폼 야외광장에서는 아트마켓 및 소규모 아트페어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부담없는 가격으로 예술품, 소품 등을 구입할 수 있어 '소확행'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이 행사는 오는 11월 11일(일)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린다.   인천에서 열리는 공연은 아니지만 30일 전설의 밴드 ‘사랑과 평화’가 ‘Funky Autumn’이라는 이름의 콘서트를 서울 합정동 프리즘홀에서 연다. 사랑과 평화의 리더 이철호는 인천 출신으로 지금도 부평구에 거주하며 인천의 음악 역사를 고증하는 데에도 큰 공헌을 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추석 연휴 이후 10월에도 소래포구 축제(10월 5일~10월 7일), 강화 새우젓축제(10월 12일~10월 14일), 강화 고려인삼축제(10월 20일~10월 21일), 연수 능허대문화축제(10월 6일~10월 7일), 국제 클라운마임 축제(10월 4일~10월 14일) 등 가을 축제가 계속 이어진다.  

‘바닥 수준 시민의식’ 보여준 토론회 현장

상상플랫폼 관련 토론회서 협박 및 폭력행위 벌어져

‘인천내항과바다되찾기시민모임’이 진행한 상상플랫폼 관련 토론회에서 한 시민이 토론회 진행을 방해하면서 폭언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   인천시가 대기업을 끌어들여 조성하려는 상상플랫폼 사업에 대해 논란과 공방전이 오가는 가운데, 결국 민간 영역에서 열린 토론회에 '무력'이 개입하며 고성과 협박 등이 난무하는 극한의 상황까지 치달아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19일 ‘인천내항과바다되찾기시민모임’ 측은 지난 19일 인천아트플랫폼 칠통마당에서 ‘인천시의 CJ 상상플랫폼 추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시민모임 측에서 대관을 정식 허락받아 진행한 이날 토론회는 남승균 인천대 사회적경제연구센터장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공동대표, 민운기 스페이스빔 대표 등이 발제 및 지정토론자로 나서 시가 상상플랫폼 사업에 대기업을 끌어들인 데에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보고, 각자가 가진 의견들을 개진하고 나누자는 취지였다.   인천시가 운영자 선정에 적용했다는 지역영향평가 대부제가 지역에 미칠 파급효과가 큰 업체가 선정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그만큼 파급 효과가 크려면 자본력이 받침이 돼야 하는 만큼 시가 대기업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다는 지적 등이 이날 토론회 자리에서 이야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토론회 시작 전부터 문제가 생겼다. ‘중구발전협의회’ 등에서 왔다는 사람들 중 일부가 이들의 주제발표를 대놓고 막고 나서면서 토론회가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시민모임 측에서 경찰까지 불러 조치했으나 이들은 그 이후로도 계속 폭언과 폭력행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모임 주최 상상플랫폼 토론회에서 ‘중구발전협의회’ 등에서 왔다는 사람들 일부가 토론자 책상 앞쪽까지 가서 폭언 등 행위를 하는 순간. (당사자들 모자이크 처리함. 영상 제공 = 민운기)   이날 지정토론자로 자리한 민운기 스페이스빔 대표는 “이들 소속 회원이라는 사람들이 시작하기도 전에 시비를 걸고 행사진행을 방해하면서 토론장이 아수라장이 됐다”면서 “토론회는 진행자 혹은 좌장이 발언을 허락하고 진행되는데, 이들은 계속 허락받지도 않은 발언을 해대며 욕설, 폭언은 물론 손찌검을 하려는 듯 위협에 이어 발제자에게 구두를 벗어 던지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토론회를 중단시킨 이들 단체들과는 직접적인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다만 현장을 목격한 한 시민은 “당시 그 분들(토론회를 방해한 사람들)께서 주장한 의견이 오래도록 노력해 폐창고를 개방하는 데에 성공했는데 왜 일방적으로 반대의 자리를 여느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시민모임 측 다른 관계자가 “이들은 지난해 인천가톨릭회관 철거 반대 기자회견 당시에도 현장에 나타나 물리적으로 이를 방해하고 막았던 사람들”이라고 밝히면서 논란이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상습적으로 기자회견이나 포럼 등을 방해하고 다닌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   3백만 인구가 되는 도시에서 찬반 의견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일이고 찬반의 자리 역시 합법적이고 민주적으로 열릴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토론회나 포럼 자리에 무력으로 개입해 방해를 하는 등의 행위가 민주국가에서 아직도 일어난다는 것은 비판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 순간을 포착한 영상은 이미 SNS상에서 빠르게 공유되면서 시민들의 반응도 비판 일색으로 치닫고 있다.   시민 고보선씨는 “정당하게 자기 의견을 제시하면 될 것을, 막가파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과연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 걱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녹색당 문지혜 당원은 “심히 황당하다, 토론회 방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꼭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시민모임 측은 20일 오후 중구청 앞에서 이들의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인천시와 시민단체, 평양공동선언 환영

군사 분야 합의, 분쟁의 바다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 것

                  지난 5월 서해평화수역 실현을 촉구하는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 모습  인천시와 시민단체가 남북 정상의 평양 공동선언과 군사 분야 합의를 환영했다.  시는 19일 평양 공동선언과 군사 분야 합의를 환영하는 성명을 내 “남과 북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며 “특히 군사 분야 합의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고 시범적으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기로 한 것은 분쟁의 바다였던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시는 “이번 합의로 서해5도 어민들의 조업구역이 확대되고 해상 파시도 실현되는 등 서해 NLL 인근 해역이 바다의 개성공단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시는 “그동안 평화수역 설정과 공동어로구역 지정 등을 위해 해양수산부, 국방부 등 관계부처와 긴밀하게 협의해 왔다”며 “이번 평양 공동선언과 군사 합의를 토대로 관련 사업이 조속히 이행될 수 있도록 제반 사항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다짐했다.  ‘서해5도 평화수역 운동본부’와 ‘평화도시 만들기 인천네트워크’도 평양 공동선언과 군사 분야 합의를 환영하고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한반도의 화악고라 불리는 서해바다에서 평화를 향한 본격적인 발걸음이 시작된 것을 열렬히 환영한다”며 “남과 북이 합의한 서해 해상에서의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설정에 대한 후속 조치가 빠른 시일에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중국어선 불법조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서해5도 어민들의 오랜 염원인 어장 확장과 야간조업 허용 등 규제 완화가 즉각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남북 갈등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서해5도 주민들에 대한 예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인천시민사회가 9월 한 달을 ‘평화의 달’로 선포하고 다양한 평화·통일 행사를 열고 있는 가운데 평양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에 평화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며 ”앞으로 북한 예술단의 남한 공연인 ’가을이 왔다‘ 인천 개최, 서해평화협력지대 조성 등의 실현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년부터 중,고 신입생 무상교복 지원 확정

시와 교육청 50%씩 부담 합의-사립유치원 무상 급식도 시행

                           교육특별시 인천 공동선언식<사진제공=인천시의회>  내년부터 인천에서 전국 최초로 중·고교 신입생 전원에게 교복이 무상 지원되고 사립 유치원까지 무상급식이 전면 시행된다.  인천시와 시교육청, 시의회는 18일 오전 시의회 본관 1층에서 ‘교육자치와 지방자치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교육특별시 인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날 박남춘 시장과 도성훈 교육감, 이용범 시의회의장은 ‘삶의 힘이 자라는 인천교육’ 실현을 통한 ‘교육특별시 인천’을 만들기 위해 ▲무상교육 ▲안심교육 ▲평등교육 ▲미래·혁신교육 분야에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무상교육은 초·중·고 무상급식에 이은 고교 무상교육, 중·고교 신입생 교복 무상 지원, 공·사립 유치원 무상급식이다.  안심교육은 학생 정신건강 지원, 학교폭력·미세먼지 등 위해환경으로부터의 안전, 등굣길이 안전한 학교를 일컫는다.  평등교육은 소득수준과 지역에 무관하게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 및 소외받지 않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의미하며 시와 교육청은 다문화·탈북학생 지원을 확대하고 과밀학급 해소 및 지역 간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노력키로 했다.  미래·혁신교육은 지능정보사회에 대비한 미래교실 구축, 마을공동체교육 활성화, 다양한 진로체험이 가능한 환경 조성이다.                 교육특별시 인천을 선언한 도성훈 교육감, 박남춘 시장, 이용범 시의회의장    이번 공동선언을 앞두고 중·고교 신입생 무상교복 지원을 위한 연간 추정예산 160억원은 시(군·구 포함)와 교육청이 50%씩 분담키로 합의했다.  무상교복 지원 대상은 중·고교 신입생 5만2399명(중 2만5315명, 고 2만7084명)으로 1인 30만1170원(교육부 권장 상한액) 범위 내에서 지원하는데 그동안 학부모가 전액 자부담했던 중·고교 교복 비용은 평균 29만6140원(동복 21만905원, 하복 8만5235원)이다.  시와 군·구의 예산 분담비율은 협의가 진행 중인데 이날 행사에 참석키로 했던 박형우 군수·구청장협의회장과 송광식 군·구의회의장협의회장의 불참은 협의가 진통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시와 교육청은 만 3~5세 사립유치원생 무상급식(3만2000여명, 연간 226억원 추정)도 내년부터 시행키로 합의했으나 예산 분담비율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초·중·고 무상급식은 질 향상을 위해 내년 식품비 단가를 소비자물가 지수가 아닌 신선물가 지수를 반영해 5~8%(초 5%, 중 8%, 고 5%) 인상키로 했다.  이에 따라 한 끼의 식품비가 초등학생은 2210원→2320원, 중학생은 2650원→2860원, 고등학생은 2720원→2860원으로 각각 오르면서 내년에는 1471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친환경 우수농산물(쌀, 쇠고기, 계란) 차액 지원은 교육청이 참여하고 학부모 부담금은 없애기로 했다.  친환경 무상급식 예산 분담비율은 현행 초·중학교 시 55%, 군·구 45%와 어린이집·유치원·고교·특수학교 시 40%, 군·구 35%, 학부모 25%에서 초·중·고·특수학교는 시 40%, 군·구 30%, 교육청 30%와 어린이집·유치원은 시 55%, 군·구 45%로 바뀐다.  대상은 604곳 24만7264명으로 내년 29억원의 예산이 들어가고 학부모 부담 약 1억원은 사라진다.  박남춘 시장은 “이번 공동선언을 통해 인천은 광역자치단체 중 최초로 중·고교 신입생 전원에게 교복을 무상 지원하고 어린이집을 포함한 유치원 무상급식을 전면 시행하는 도시가 된다”며 “사립유치원 무상급식 예산 분담비율 등을 조만간 확정해 인천을 전국에서 아이 키우기 가장 좋은 교육특별시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도성훈 교육감은 “‘교육자치와 지방자치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교육특별시 인천 공동선언문’은 서로의 입장 차이를 극복하고 협치의 정신을 구현한 것으로 ‘삶의 힘이 자라는 우리 인천교육’ 실현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OBS 인천 이전 무산, 새로운 민영방송 설립해야"

인천시민단체연대, "청문회 등 책임소재 분명히 가려야"

  OBS 경인TV 인천 이전이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새로운 지상파 민영방송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는 13일 오후 인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본사 이전을 미뤄온 OBS는 기업특혜와 시민기만에 대한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제 300만 인천시민의 방송주권확보를 위해 새로운 지상파 지역방송인 '인천방송'을 설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시는 임대료 대부료율을 5%에서 1%로 낮춰 주는 방안과 방송환경공사에 60억원을 지원하는 내용을 제시했다. OBS는 경영사정 등을 이유로 방송기금 조성 등을 통해 100억원을 연 1.2%의 저리로 융자해달하는 조건을 걸면서 사실상 이전 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에 김은경 인천시 대변인은 지난 3일 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에서 "특정 언론의 무리한 조건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사실상 OBS 이전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OBS는 방송통신위원회 재허가 절차 때마다, 시와 본사 이전 양해각서(MOU) 등을 체결하며 재허가를 받아 왔다. 특히 시는 2013년 토지 소유자인 금아산업에 개발이익의 40%에 해당하는 방송시설을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계양구 터미널 부지를 일반상업시설로 용도변경 혜택을 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공공용지인 공원 부지까지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금아산업은 용도변경과 주상복합아파트 건설로 막대한 개발이익을 챙겼지만, 방송국 이전은 사실상 무산 수순을 밟고 있는 상황이다. 시와 OBS가 지지부진한 협상을 반복하는 사이 계양 방송통신시설은 지난 4월 준공됐다. 부지 3천656㎡, 총면적 1만5천638㎡, 지하 2층·지상 8층 규모의 시설이다. 시는 이 곳에 다른 방송국이나 문화 콘텐츠 관련 시설을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들어올 수 있는 분야가 제한되다 보니 이 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장정구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운영위원장은 "인천시의회가 지역사회와 함께 청문회를 열어 무산 책임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방통위는 허가 조건을 이행하지 않는 OBS에 분명하게 책임을 묻고 인천방송 설립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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