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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

고제민 화가와 걷는 인천골목길
고갯마루 '무지개문'에 깃든 아픈 ..

(9) 홍예문 넘어 전동 골목길

홍예문 32×24(cm) Pen, watercolor on paper 2019    신포동 쪽 일본 조계지에서 전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자리한 홍예문에는 일제 강점기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을사조약(1905년) 이후 중앙동과 관동 등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수가 급격히 늘자 만석동 방면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해 일본 공병대가 뚫어 놓은 것입니다. 처음에 혈문(穴門)이라고 부르다가 홍예문(무지개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홍예문을 넘어 동인천역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전동을 가로지르는데 일제강점기에 화폐를 찍어내던 전환국이 있던 곳이라 동네 이름이 전동(錢洞)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던 곳이라 지금도 그 시대 흔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홍예문을 넘어 걷다보면 고갯마루을 중심으로 양쪽 문화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관동 아래 항구 쪽은 날로 번성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는데 전동 쪽은 낙후된 옛 모습 그대로인 곳이 많습니다. 반 세기가 넘도록 오래된 '전동떡집'에서는 간판도 없이 3대를 이어 찹쌀떡을 만들고 있고, 골목 골목엔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낡은 집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겨울 발걸음이 더욱 춥게 느껴지네요.                                                                                                                                                                                   2019. 1. 17. 글 그림 고제민 전동떡집 32×24(cm) Pen, watercolor on paper 2019 홍예문로 68번길 41×31(cm) Pen, watercolor on paper 2019  
평화의바다, 소청도를 보듬다
최북단 등대와 분바위가 부르는,서..

(1) 소청도는... - 글·사진 ..

소청도 등대 2층 전망대에서 서남쪽으로 본 풍광. 붉은 해가 잠들면 짙은 노을이 어둠을 감싸고 형용할 수 없는 그라데이션의 하늘빛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서해안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등대로 소청도의 서쪽 끝 해안절벽 위 83m 지점에 자리한다. 일제 강점기에 고래잡이를 위해 세웠다. 이 위치는 인천항 산동과 대련 등지를 오가는 선박들이 지나가는 항로로 인근 북쪽의 대청도와 백령도, 그리고 바다 건너 북한의 옹진반도(장산곶)가 훤히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소청도 등대의 등명기는 1908년산으로 대한민국에서 현역으로 사용되는 등대 등명기 중 팔미도 등대 다음으로 가장 오래 되었고 2006년에 새롭게 건립되었다. 등대 아래로는 가마우지 서식지가 있다. 이 등대는 인천항에서 중국 쪽을 오가는 서해 국제항로 상에서 거쳐 가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김대건 신부가 중국을 오갔던 뱃길도 이 인근을 지나갔으며, 풍랑을 만나면 중국 어선들이 피항하는 곳이기도 했다. 소청도에 TV가 가장 먼저 보급된 곳이 이 등대의 관사라고 한다. 소청도 주민이 유일하게 소풍가는 주요 관광지이기도 했다. 뱃터에서 15분 거리인데, 이곳을 오르는 지형이 가파르고 위험하기도 하다.   차를 주차하고 200여m를 올라 입구에서 본 등대, 흰색의 사각 구조물에 바닷바람을 깊게 쏘인 등대는 독특한 아우라를 가진 이국적 풍광이다.     인천168개의 섬들은 나름대로 이야기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지내며 소청도는 특별한 슬픈 역사와 질곡의 세월을 보낸 섬이다. 한반도 화해무드에 맞추어 [인천in]은 우리들이 알지 못했던 소청도의 역사와 삶을 조명하는 시리즈를 격주 연재한다. 일제 강점기 소청도에는 동양대리석이라는 일본의 회사가 주둔하고 있었다. 소청도 남쪽 예동 해변에 배를 대기 위한 석조 구조물을 세워 놓았다. 해변의 서쪽에서 동쪽 바닷가 구조물까지 레일을 깔고 대리석을 배에 실어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함이다. 이 돌이 바로 스트로마톨라이트라 불리우는 질 좋은 대리석이다. 해방 이후에도 계속 캐었고 60년까지 운영하였다. 1946년에는 기뢰 폭발사고로 주민 67명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고, 6.25 이후 유엔사 관할 시절에는 잦은 어업 통제로 삶의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이 평소에 잔잔하던 파도가 갑자기 높아지고 가끔은 돌풍을 만나 돛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다반사였다. 6.25 이후 51-52년도에만 8척의 배에 20여명 등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50명이 넘는다. 자의든 타의든 소청도 사람들은 전쟁의 끝자락에서 다른 지역보다 더 거칠게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가슴에 지니고 있었다. [평화의 바다, 소청도를 보듬다]의 의미는 문화예술 접목을 통해 주민과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보듬고 풀어주어 화해와 상생의 평화 메시지를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는 2018년 9월에서 4개월간 진행되었고 인천광역시, 인천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역협력형 사업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섬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도시에 나간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자식들의 소망은 부모들이 섬에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더 이상 섬이 섬으로서의 고립이나, 불편하기보다는 정신세계와 정주의 여건(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섬의 역사를 기록, 보존하고 화해와 상생이라는 목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움직인다.   1. 소청도의 현재를 보다   소청도 면적은 2.91㎢이다. 철새도래지로 조류학자와 지리 연구자들이 섬을 많이 드나들며 국가철새연구센터가 건립되었으나 약간의 문제로 아직 오픈하지 못하고 있다. 소청도와 대청도, 그리고 백령도를 아우러 국가지질공원을 추진하고 있고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아름다운 섬이다.   소청도는 섬이 작아서 예로부터 소수의 주민이 거주하여 왔고 서로 외로움을 달래며 돕고 살아왔다. 섬은 예동, 노화동으로 나뉜다. 너무도 외로웠던 섬 주민들은 지나던 상선이나 표류해온 선박들이 정박하게 되면 깍듯이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며 친절을 베풀어 예의를 지켰다하여 예동(禮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노화(蘆花)동은 지역이 가파른데다가 삼면이 깎아지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지형인데다 예부터 갈대가 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해서 불러지고 있다(옹진군 지명유래 참고). 소청도 주민 수는, 최고 정점인 1960년도 말에 1,300여명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6.25와 정전협정 이후 작전 중인 켈로부대. 해병대 등 국군이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며 그 현장에 지금은 일반 주택들이 자리하고 있다. 1,300명이나 모여 살았던 사람들은 향학열에 불타 자녀를 육지 학교로 유학을 보냈고 일자리(직장)을 마련하기 위해 육지로 나서면서 노령화되어 현재는 주민과 공공기관 직원 등 250여명(그 중 노화동은 40여명)이 살고 있다. 1973년 소청도가 백령면 관할 리 단위로 소재할 때 인구는 982명으로 “백령도지”에 기록되어 있다. 2004년 인천광역시에서 주관한 인천앞바다바로알기 탐사팀의 조사에 의하면 당시는 108가구에 207명(영외군인 제외, 순수 토박이)이고, 2010년에는 116가구에 222명이었다. 현재는 소청도 남쪽으로 소청1리(예동)와 2리(노화동)로 나뉘어져 삶의 터전을 지켜오고 있는 원주민 수는 대략 250명 정도 된다. 2018년 12월 현재는 소청1리(예동) 이장 이은철, 소청2리(노화동) 2리 이장 조성청, 어촌계장 이용희가 맡고 있다.     분바위 앞에 물 때가 맞아 바다가 열리면 수많은 홍합과 다시마, 톳이어우러져 생명의 보고가 들어난다.     주 어업은, 주 어종인 홍어 잡이와 까나리, 조기가 주 어업이었으나 1990년대 들어서 조기는 자취를 감추었고 홍어와 까나리는 대청도, 백령도에서 명맥을 유지하여 잡고 있다. 홍어 잡이는 일제 강점기 부터 시작했고 6.25이후 서해 5도가 유엔사령부 관할에 있었다. 70년대 초반 수원22호 납북사건으로 조업이 통제되자 모든 어선이 선단을 구성하여 충남 태안반도, 전남의 흑산도 방면으로 옮겨 조업을 이어갔다. 이런 상태는 몇 년 가지 못했고 서해5도의 조업 재개가 점차적으로 이루어지자 충남, 전남 지역으로 옮겨갔던 선단들이 속속 소청도로 올라왔다. 그러나 군부대의 엄격한 조업 통제로 출어의 어려움 속에 80년대 초까지 취로사업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지금까지도 소청도 주민들은 고갈된 어족자원이긴 하지만 다른 섬에 비해 월등히 나은 어업과 노인들의 공공근로사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소청도에는 두떼기의 논(100여평)과 척박한 밭(18헥타) 재배(보리, 고구마, 조, 메밀)만이 있었으며 주소득원은 오로지 바다에 의존하는 실정이었다. 현재는 낚시 배와 인근어장에서 우럭, 놀래미, 삼식이, 삼치, 꽃게 등을 잡고, 미역, 다시마, 홍합, 가리비 등을 채취한다.   민박집에 널어놓은 삼식이와 부속 고기들, 해마다 11월이면 마을주민들이 스티로폴 배를 타고 인근 해변에 나가 창으로 찍어 삼식이를 잡는다. 예동에 고기를 널어 말리는 도구에 걸려 있는 홍어잡이 낚시바늘. 지금은 유일하게 대청도에서만 잡지만 한 때 1970년 초까지 소청도에서 왕성하게 홍어를 잡았었다. 그 흔적이 이 낚시바늘로 남아있다.     종교는, 50년대 개인집(당시 소청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시작한 장로교가 소청교회의 전신이며 현재까지 3명의 장로를 배출했고 현재 담임목사와 30여명의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천주교는 노화동과 예동에 각각 공소가 세워졌으나 노화동 공소는 80년대 초 문을 닫았고 현재는 철거되었으며 예동 공소는 현 위치에 2000년대 초반 개축됐다. 현재 20여명의 신자들이 대청도에서 들어오는 신부와 미사를 드리고 있다.   예동의 언덕에 있는 김대건신부 동상, 그의 순교 역사가 쓰여있다. 작은삭금 선착장 앞에 있는 월띠 부근, 스트로마톨라이트를 캐내어 실어나르던 곳, 1970년대 초에 이 돌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더 이상을 캐어내지 못했다.   분바위, 이 곳에서 서해의 많은 섬들 중에 으뜸의 경관을 가진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을 보려면 특히 아침 일찍이나 저녁 무렵 물이 많이 빠져있는 시간에 가서 바위 전체를 보는 느낌은 최고로 힐링하는 포인트이다.   소청도의 분바위는, 여성이 분칠을 한 것처럼 바위가 희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소청도 분바위는 천연기념물 제 508호로 지정되었으며 생물의 광합성 활동으로 만들어진 생물학적 석회성분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화석이 ‘스트로마톨라이트’라 불리운다. 소청도의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선캄브리아기 지층으로 약 10억 년 전에 활동한 남조류이다. 월띠(밤이면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고 어부들이 이 바위의 흰 반사를 보고 들어왔다고 해서 월띠라고 불렀다), 어르꾸미, 이랑금(산에서 내려온 줄기가 밭의 이랑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등으로 불리웠고 천혜의 자원인 홍합, 미역, 강투(톳)이 집단 서식하는 곳으로 마을 어촌계의 어장이다. 당연히 아무나 홍합을 채취하지 못하며 겨울철에 물 때 맞추어 바다가 열리면 공동작업을 통해 한 달에 두 번 홍합을 캔다. 1960년대에 이 곳 분바위 부근의 작은삭금 선착장(소청도 동쪽 끝)에서 대리석을 싣고 가다 황해도 비읍도 근방에서 돌풍을 만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기도 했다. 당시 위급환자가 생기면 부영발 신부가 만든 백령도의 병원으로 가야했으며 부영발 신부의 병원선 '바다의 별'이 운영되면서 밀가루와 옷가지 등을 많이 원조 받았다.   소청도를 운항하는 배의 역사는, 가장 초기에 운행했던 배는 백령호라는 목선이었고 인천항에서 무려 14-15시간이 걸렸다. 다음으로 은하호(철선), 새관광호, 황진호(철선) 13시간, 옹진호(철선) 10-11시간, 새경기호(철선) 9-10시간, 그리고 쾌속선 시대가 도래해 4-5시간으로 단축이 되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원래의 뱃터는 예동 마을 앞 남쪽이었으나 바람을 막아주는 장치가 없었고 초기에는 접안이 안 되었으므로 작은 나룻배(종선배)로 노를 저어 왕복하면서 사람과 화물을 날랐다. 60년 까지는 소청도에서 백령도까지도 어선을 타고 3-4시간 걸려 다녔다. 잔잔하기만 하던 파도가 갑자기 높아지곤 했고 가끔은 돌풍을 만나고 돛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다반사였다. 현재 인천 나가는 배는, 백령도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는 쾌속선(옹진훼미리호)이 인천에 도착하고 오후 1시에 다시 백령도로 출발한다. 소청도까지는 대략 편도 4시간이 소요된다. 인천 연안부두에서는 오전7시50분 2천 톤급의 하모니플라워호와 8시30분에 출발하는 코리아킹호가 있으며, 이들 여객선은 백령도에서 12시50분(하모니호), 1시30분(코리아킹)에 인천으로 출발하며 소청도 까지는 3시간 10분 내외 소요되는 쾌속선들이다. 소청도에서는 여객선이 입항하기 30분 전에 방송을 통해 안내해 준다.   하지만 아직도 소청도에 차량의 입도가 불편한 실정이다. 차량은 하모니플라워호를 타야만 승하선 할 수 있지만 소청도에는 이 쾌속선의 접안시설이 없어서 불가능하고, 대청도와 백령도만 승하선 할 수 있다. 당연히 화물선을 이용해야 하나 이마저도 격일제로 운행하고 미리 차량을 예약하고 인천항 화물부두에서 화물선에 차량을 승선할 때도 항운노조의 힘을 빌어 비용을 주고 승선시켜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차주는 여객선으로 소청도에서 들어와 하선을 위해 기다려야 한다. 비용도 1톤 트럭이나 봉고차의 경우 왕복비용이 8-90만원에 달한다.   숙박시설은, 제법 규모가 있는 팬션이 4-5군데 있고 여인숙도 5-6개 되지만 식당이라고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집은 없고 민박집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 식사는 소청도의 바다 먹거리가 풍부해 다른 섬보다 훌륭하며 마트나 편의점은 없고 간판도 없는 가게 1곳이 유일할 뿐이다. 숙박비 기본 2인 5만원, 1식 7000원으로 모든 집이 동일하다.   예동 마을 전경, 이 마을에는 청색의 지붕이 많고, 노화동은 주황색의 지붕이 많아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예동에만 100가구 200명 정도의 주민이 산다.   노화동 마을 전경, 유일하게 스레트 지붕에 페인트를 칠한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독특한 풍광을 만난다.     인천광역시가 서해5도에 지원해주고 있는 여객운임 할인정책이 2018년까지 80%에 달해 많은 사람들이 섬을 찾고 있고 대청도나 백령도는 벌써 단체 패키지 여행상품이 사람들을 엄청나게 불러 모아 인심이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소청도는 아직도 때 묻지 않은 인심에 먹거리가 풍부한 자연이 잘 보존되어있는 섬이다. 차후 행정이나 육지의 많은 관심이 필요한 섬이다. 하지만 이제는 소청도에 국립지질공원 지정이 코 앞에 있고, 많은 개발자금이 투입된다는 계획이 서 있는 만큼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섬마다의 특화를 위해서라도 이 섬이 자연보존과 상생의 합리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청도에 사는 주민의 단합된 의지가 필요한 시기이다. 소청도는 인천광역시의 섬 중 마지막 남은 천연의 섬, 낙원인 것이다. 시급한 것은 소청도 주민의 [정주여건 개선]인 것이다.  
미술치료 가족의 세상살이
엄마의 철학

(69) 'sky캐슬‘을 보며, 청소..

    최근 'sky캐슬‘을 보게 되었다. 1-2회를 보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빠져들었는데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최근 뉴스에서 봤던 각종 입시관련 문제들을 상기하며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 청소년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그 드라마가 그려내는 부모들은 우리들의 모습이다. 무관심한 부모, 권위적인 부모, 결과에만 목숨 거는 부모, 갈팡질팡 하는 부모, 끌려다니는 부모... 자신들의 열등감 때문에 세상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갖게 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편협한 가치관을 심어주는 모습을 보노라면 부모의 균형 잡힌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아이들이 잠든 금요일 밤11시에 방송하는 이 드라마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바로 부모들에게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학창시절에 학습이나 공부, 성적은 꽤 중요한 요인이다. 친구들과의 관계, 학교생활 전반, 진로에 영향을 준다.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공부를 잘 하면 좋고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좋고 더 지원해주고 싶다. 하지만 공부가 ‘제일’ 중요한가 묻는다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상담실에서는 어린 아이부터 큰 아이들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다양한 어려움들을 다루게 된다. 사람이 살면서 위기나 좌절은 언제든 다가올 수 있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부모들이 예상하지 못한, 예상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들 또한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그래도 유아기에는 부모의 힘이 절대적이라 부모님이 노력하면 빠르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아이들도 상담으로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 아동기에 부모와 아이들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데 부모 이외에도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많아지고 친구관계 또한 중요해진다. 그래도 아동기까지는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듣는다. 야단도 칠 수 있고 혼도 낼 수 있다.   그런데 청소년기가 되면 아이들이 정말로 말을 듣지 않는다. 청소년기 친구관계 또한 부모의 개입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때때로 부모를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집과 학교에서의 모습이 전혀 다르기도 하다. SNS, 게임 등 온라인 환경 또한 부모의 사각지대라서 이 때문에 발생하는 각종 개인정보나 저작권 관련 문제, 성문제, 사이버 따돌림 등의 사건사고도 많다.   때문에 청소년기에 어려움이 발생해서 방문하는 부모님들은 도와주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무력감을 호소하시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기 아이를 돕는 방법을 모르겠고 마땅한 방법이 없거나, 아이가 부모의 의도에 저항하고 거부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의 아이와 부모와 어긋난 관계를 되돌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청소년기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부모가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들을 동원해야 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이다. 때문에 청소년기 아이들을 돕기 위해 마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은 모든 상담자들에게도 중요한 과제이다.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은 아이들은 상담자나 선생님, 어른들을 믿지 않기 때문에 관계를 맺기가 매우 어렵다. 상담의 진행이 더디거나 애초에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겪을 수 있는 ‘진짜 위기’는 청소년기가 시작이다. 나는 상담자로서 때때로 그렇게 느낀다. 이후 아이들은 졸업을 하고 군대를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한다.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이가 위기를 버텨낼 수 있는 튼튼한 마음으로, 건강한 몸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의 어려움에 잘 대처하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지 않겠는가? 때문에 성적이나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미경 강사님의 인상적인 말이 기억난다. ‘아이는 엄마의 정보력으로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굳건한 철학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동네방네 아지트
지역공동체의 다양한 생활문화활동..

⑫ 배다리 헌책방거리 ‘나비날..

  나비날다책방 ⓒ배영수     지난 2017년부터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은 주민들이 직접 영유하고 창조하는 생활문화예술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동네방네 아지트’라는 사업을 추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인천in>은 지난해 인천시의 ‘천 개의 문화 오아시스’ 사업 및 인천문화재단의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에 선정된 공간을 포함, 생활예술 차원의 문화공간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활동하는 곳들을 한 달에 한 번씩 소개하고 있다. 해를 넘겨 올해 1월에 찾은 공간은 동구 배다리 헌책방거리 초입에 위치한 ‘나비날다책방’이다.     ◆ 배다리에 정착한 사회활동가, 소통의 시작은 바로 ‘책’이었다     ‘나비날다책방’의 운영자 청산별곡. ⓒ배영수     인천에서는 문화 및 사회 방면에서 여러 활동들을 해온 ‘청산별곡(본명 권은숙)’이 운영하는 나비날다책방('나눔과 비움이 배다리에 날아든다')은 지난 2009년 ‘책 쉼터’를 테마로 한 공간으로 출발했다. 당시는 지금의 위치는 아니었고 삼성서점 옆 7평짜리 공간을 얻었다가 구 조흥상회 건물인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청산별곡은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자신의 ‘활동가’로서의 시작은 서울의 작은 환경단체였다. 대안화폐, 지역 공동체 등을 주제로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면서, 당시 환경문제의 큰 이슈였던 새만금 간척사업 및 천성산 터널 건설공사 등에 대한 시민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러다 인천으로 내려왔던 것이 배다리에 7평짜리 공간을 얻었던 2009년 즈음의 일이었다. 당시 인천에서 ‘사진책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운영하던 최종규 작가와 친분이 있었는데, 그를 통해 지금도 이슈가 되고 있는 산업도로 문제를 비롯해 재개발 현안 등 배다리 일대의 이야기들을 듣게 됐고,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공동체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인천에서 자란 내가 여기서 활동할 수 있는 분야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사회활동을 하며 공간도 운영해오게 됐다고.   “이쪽 헌책방들이 책 자료들이 정말 많고, 찾아오는 분들도 제법 되는데, 막상 책을 막 사서 바로 읽을 공간이 있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헌책방에서 책을 사면 읽고 가라는 의미의 공간으로 문을 열었던 거죠.”   그래도 맨 공간으로 둘 수는 없어서 집에 있는 자신의 책을 다 갖고 나왔다. 어떻게 보면 그때 자신의 취향을 ‘큐레이팅’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 건데, 그러자 공간을 들른 일부 손님들이 그냥 갖다놓은 책을 사고 싶어 하기도 했다. 팔려고 갖다놓은 책이 아니니까 처음엔 실랑이도 하고 그러다가, 이후 마음을 덜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미 읽은 책이라면, 그 책을 원하는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가도 크게 상관은 없겠다고 생각했다는 것.   물론 ‘나비날다책방’이 프랜차이즈 대형서점과 같은 수만, 수십만 권의 책을 갖다놓은 곳은 못 되지만, 요즘 ‘힙스터’들에게 각광받는 이른바 ‘취향팔이’의 트렌드로서는 제격인 곳이 됐다. 실제 이곳을 직접 가보면, 청산별곡 본인이 직접 기르기도 하는 고양이와 관련된 서적들을 메인 공간에 구비하고 환경 및 인권활동과 관련한 책들을 전면에 전시하는 방식 등으로 공간의 취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을 덜어내면서 제 책을 손님들에게 넘기기 시작할 때만 해도, 본격적인 ‘장사’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제가 모았던 책들을 사겠다는 분들이 계셨다 보니, 어쩌다 사업자 등록도 하게 된 거죠. 공식적으로는 지난 2016년에 사업자 등록을 했고, 날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4월 16일로 맞췄습니다.”     ◆ “앞으론 인문학 분야 인프라도 넓히고파”   나비날다책방이 운영하고 있는 ‘요일가게’ 내부. 작가들의 작업은 물론 인근 주민들 중심으로 뭉친 동아리들의 활동 근거지가 되는 곳이다. ⓒ배영수     나비날다책방은 청산별곡이 주로 책을 팔고 작업을 하는 1층 책방 외에도 조흥상회 건물의 2층 전시공간과 바로 옆에 위치한 ‘요일가게 다 괜찮아’ 등을 통해 배다리 일대 주민들의 문화 활동과 동아리단체들의 움직임을 돕기도 한다.   특히 이 공간을 통해 동네의 젊은 작가들, 디자이너들과도 이 공간을 통해 문화예술 협업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지난해 ‘천 개의 문화 오아시스 사업’ 공간으로도 선정되면서 요일가게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이 전개됐다.   청산별곡은 나비날다책방 및 요일가게 등의 공간을 기반으로 활동한 동아리들이 10개는 족히 넘었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 ‘천 개의 문화 오아시스 사업’을 통해 요일가게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동아리들이 활동하는 분야를 시의 예산을 받아 직접 지원해줄 수 있었고, 집밥요리를 체험하는 동아리와 뜨개질, 기타연주, 영화감상 등 다양한 시민들의 동아리 활동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특히 이들 가운데 세 개의 동아리(쫄리의 기타교실, 인희의 집밥 부엌화장품, 월별 주제의 영화감상)를 중심으로는 동아리 각자가 가진 콘텐츠를 나누는 협업도 진행했었다고.   “그러니까,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진 동아리들이 모여요. 그래서 먼저 집밥을 해먹고, 밥을 다 해먹고 정리가 끝났으면 영화 감상도 같이 하거나 다른 활동을 같이 하는 등의 방식이었죠. 지자체의 지원을 받은 활동이니까 지금은 정산작업 하느라 머리가 아프긴 한데, 지원된 예산 중 일부 소액은 공간 리모델링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 혜택도 약간은 봤고, 여기서 활동하는 동아리들도 재원 부담을 거의 안 느끼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모습도 보다 보니 보람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공간을 운영하기 시작해 올해로 10년여의 시간이, 그리고 사업자 등록을 통한 ‘공식적인 판매 행위’가 시작된 시점으로부터도 이젠 3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 나비날다책방은 인천시의 천 개의 문화 오아시스 사업 외에도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작가회의가 진행하는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고, 그전부터도 인천문화재단이 진행하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재은(소설), 이설야(시) 등의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업 혹은 시민들과 작품 세계를 공유하는 등의 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올해는 어떤 활동계획이 있을까.   “올해가 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 사업 마지막 연차라서 그 사업도 해야 하고, 기타 지원사업에 참여한 것들은 끝날 때까지는 계속 해야죠. 하지만 그보다는 전 이 공간을 통해 인문학 인프라를 더 만들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물론 동아리들의 자율적인 네트워킹은 계속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제가 인문학에 대한 애정이 많거든요. 그리고 이 공간에서 지금까지 해온 북 큐레이션 및 작가와의 만남 등 프로그램은 앞으로 분야를 더 넓히고 싶고, 그렇게 작가들과 주민들이 자유롭게 활동을 하도록 하면서 ‘나눔과 비움’이라는 주제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나비날다책방 외부 전경. ⓒ배영수  
<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비극은 일정한 길이의 완결된 행동..

(5) 시학 6장 - 비극, 카타르..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고전을 읽고 함께 대화하는 형식을 통해 고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그 문턱을 넘습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에는 김경선(한국교육복지문화진흥재단인천지부장), 김일형(번역가),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지난주부터 합류한 김영애(생활소품작가), 서정혜(의류디자이너)등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고전읽기 연재는 대화체로 서술하였는데, ‘이스트체’ 효모의 일종으로 ‘고전을 대중에게 부풀린다’는 의미와 동시에 만나고 싶은 학자들의 이름을 따 왔습니다. 김현은 프로이드의 ‘이’, 최윤지는 마르크스의 ‘스’, 김일형은 칸트의 ‘트’, 김경선은 니체의 ‘체’, 김영애는 헤르만헤서의 ‘르’, 서정혜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베’라는 별칭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시학 6장을 읽기를 시작합니다.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는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요, 쾌적한 장식을 한 언어를 사용하고 각종의 장식은 각각 작품의 상이한 여러 부분에 삽입된다. 그리고 비극은 희곡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애련과 공포를 통하여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 39쪽. 체: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한 행동을 모방하며,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를 사용하고 각종의 장식은 카타르시스를 행한다고 요약해 볼 수 있겠습니다. 트: ‘진지'의 의미를 헬라어로는 'Spoudaios 스프다이오스’라고 하는데요, 도덕적인 탁월함, 도덕적 착함을 뛰어넘어 유능한 기능을 발휘하는 등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단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르: 아, 기능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이란 의미군요. 체: 이어서 '일정한 크기'란 하루안에 상연되는 길이라는 물리적 뜻도 있지만 정신의 크기로까지 확장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숭고함이나 고귀함, 위압감 등 정신의 크기까지 발전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지요. 트: ‘완결된’이란 원어로 'teleios 텔레이오스’, 즉  신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는 동물이 흠없이 온전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원래 모방하는 행위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제물이였다고 합니다. 베: ‘쾌적한 장식’이라는 의미는 희곡 대본의 지문 또는 해설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체: 이 문장에 ‘카타르시스 katharsis’란 유명한 단어가 나오네요. 카타르시스가 무엇일까요?     아, 카타르시스하니까 생각나는 그림이 있네요. 행복한 눈물 happy tears.     사람이 무엇인가에 감동받았을 때 눈물을 흘리잖아요.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닌 행복한 눈물, 기쁨의 눈물. 이것이야말고 감정의 정화, 카타르시스가 아닐까요?   Happy tears(1964). Roy Lichtenstein, Roy Fox Lichtenstein. 스: 요즘 인기드라마인 ‘나쁜형사'를 보면 살인자들의 심리묘사가 잘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아요. 살인하는 과정을 통해  살인자들이 인간의 죽음과 같은 불쾌감을 은밀한 쾌감으로 느끼고 있는 심리적 묘사 장면이 혹 카타르시스의 일종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로마시대 콜레세움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간 결투 또한 보는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던 것 같습니다. 르: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가 기억나네요. 아~ 여기서 국민학교라고 하니 세대차이가 느껴지네요. 우리 모임 중에 초등학교를 다니신 분들도 있는데요. 제 기억에 선생님이 학생들을 체벌할 때 친구를 서로 때리게 했어요.  스: 그런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인데요. 선생님이 체벌할 때 왜곡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건 아닐까요? 베: 아, 저도 뜬금없지만 체벌이 주는 고통을 확인하고 싶어서 맞아보기도 했어요... 체: 카타르시스의 여러 경험을 말씀하셨는데요. 윤리적 견해로는  카타르시스가 '감정의 정화’이고 의학적 견해로는 '감정의 배설'로 보는 견해가 있네요. 트: 배설에 대해서는 금기나 부정적인 의미가 강한데 카타르시스가 배설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폭넓은 의미확장으로 볼 수 있겠네요. '쾌적한 장식을 한 언어'는 율동과 해음과 가요를 포함하는 언어를 의미하고 '각종의 장식은 각각 작품의 상이한 여러 부분에 삽입된다’ 40쪽. 스: 희곡적 형식은 드라마적인 형식으로 조사는 운문의 작성을 의미하고 가요는 노래(합창)를 말한다고 보면 되겠네요. "비극은 행동의 모방이고 행동은 행동자에 의하여 행해지고, 행동자는 필연적으로 성격과 사상에 있어 일정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40쪽. 체: 모든 성공과 실패는 사상과 성격에 기인한다고 하였고, ‘행동의 모방’이 ‘플롯’이라고 하네요.  이미 행해진 사건과 사건의 결합이 ‘플롯’이고, 성격에 의해서 행위자를 일정한 성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써 있는데요. ‘격’과 ‘질’의 차이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베: 국어사전에서 ‘성격'은 개인이 행동을 통해 드러낸 고유한 것이고, ‘성질'은 사람이 지닌 본바탕이라고 하는데 분명한 차이를 알기는 힘든 것 같아요. 트: 사전마다 개념정의가 다 달라서 명확한 의미파악은 힘든 것 같아요. 체: 암튼 성격은 본바탕이고, 성질은 습관적인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 이정도로 하고 넘어 가겠습니다. “사상이란 그가 어떤 것을 증명하거나 혹은 보편적 진리를 진술하려고 할 때, 그의 언어에 나타나는 것이다”. 40쪽. 르: 사전에서는 ‘사상'이란  인식하는 힘, 능력, 행동자들이 무엇을 증명하거나 또는 보편적인 진리를 말할 때 그들의 언사를 나타나는 바를 의미한다고 되어 있네요. 체: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장이 되버린 우리 사회는 그래서 보수와 진보간에 대화, 타협이 힘든 것 같아요. 1989년 미국의 페미니즘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당신의 몸은 전쟁터이다’라는 작품은 여성의 낙태여부가 남성에 의해 결정짓는 것이 아닌 여성들의 권리임을 주장하기 위한 시위포스터인데요.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내 몸 안에서 사상의 갈등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Untitled(Your body is a battleground), 1989, Barbara Kruger. 스: 아, 여기까지 읽어 내려가보니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상'보다 ‘성격'과 ‘성질'을 먼저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네요. 보편적 진리를 증명하고 언급할 때 개인의 본바탕과 습관적인 행동과 언사가 사상을 이루기 때문이라는 거죠. 트: 그런데 성격, 성질은 행동과 연결해서 설명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성격과 성질이 행동을 통해 하나의 사상을 이룬다고 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얘기들이 행동을 중심으로 잘 진행되었다고 보셔도 될 것 같아요. 트: 마지막으로 이렇게 정리하면 될 거 같습니다. 비극은 6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조사와 가요는 '모방의 수단'에 속하고 장경(장면)은 '모방의 양식'에 속하고 플롯, 성격, 사상은 '모방의 대상'에 속한다고 깔끔하게 정리를 해 주셨네요. 좀더 알기 쉽게 예를 들어 분류하자면 미메시스(모방)는 수단(리듬, 언어, 화성), 대상(성격, 감정, 행위), 양식(방법-서술체, 드라마)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체: 6장은 1장부터 5장의 내용을 잘 요약한 핵심장이라 다음 연재에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리: 이 참고문헌: 아리스토텔레스, 손명현역(2009), 시학, 고려대학교출판부.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역(2017), 수사학/시학, 도서출판 숲. Aristoteles, Manfred Fuhrmann(1982), Poetik, Griechisch/Deutsch, Philipp Recl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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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춘 시장 "G시티 최적의 계획안 독려, 속도낼 것"

18일 시민청원 첫 답변, "김진용 청장 사퇴요구는 청원 취지 맞지 않아"

박남춘 인천시장 영상 답변. <사진=인천시 시민청원 게시판 캡쳐>   박남춘 인천시장이 인천시 시민청원에 처음으로 직접 답변했다. 박 시장은 김진용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 사퇴 촉구 시민청원과 관련해 '사퇴는 없다'고 답했다. 인천시는 18일 오후 시 홈페이지 ‘시민청원 게시판’에 ‘청라 발전을 저해하고 주민을 우롱하는 김진용 경제청장의 사퇴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에 박 시장의 영상 답변을 게시했다. 해당 청원은 최초로 답변 기준인 3천명 이상의 '공감'을 얻었다. 청원인은 김 청장의 사퇴 이유로 시티타워 건축사업 지연과 사업 무산 위기 수수방관, 외국인 투자 유치 실적 전무, 전문성 부족으로 청라 G-city 사업 어렵게 만듦 등 8가지를 꼽았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청라 시민들이 원하는 것이 여러 현안 사업들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게 시가 적극 나서라는 뜻이라면 공직가 한 사람의 사퇴 여부가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사안이 있을 때마다 사퇴와 같은 인사 문제로 귀결된다면, 소신 있는 공무를 수행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시민의 의견을 시정에 담고자 하는 시민청원제도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G시티는 대규모 생활숙박시설 유치에 따른 문제점을 최소화해 주민 피해를 줄이고 민간의 이익 구조를 공정하게 해 공공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식산업센터 유치로 지역경제 활력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어 다소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최적의 계획안을 제출하도록 독려해 인·허가 작업에 속도를 내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청라 주민들이 느끼는 것은 결국 인천의 불균형 발전과 지역 간 소통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잘 알기에, 더불어 잘 사는 인천 균형 발전이라는 목표를 제대로 이루는 일에 더 박차를 가하겠다”며 “청라 발전을 위한 최적의 대안을 마련해 조속히 시행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최북단 등대와 분바위가 부르는,서해 멀리 외로운 섬

(1) 소청도는... - 글·사진 사진가 류재형

소청도 등대 2층 전망대에서 서남쪽으로 본 풍광. 붉은 해가 잠들면 짙은 노을이 어둠을 감싸고 형용할 수 없는 그라데이션의 하늘빛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서해안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등대로 소청도의 서쪽 끝 해안절벽 위 83m 지점에 자리한다. 일제 강점기에 고래잡이를 위해 세웠다. 이 위치는 인천항 산동과 대련 등지를 오가는 선박들이 지나가는 항로로 인근 북쪽의 대청도와 백령도, 그리고 바다 건너 북한의 옹진반도(장산곶)가 훤히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소청도 등대의 등명기는 1908년산으로 대한민국에서 현역으로 사용되는 등대 등명기 중 팔미도 등대 다음으로 가장 오래 되었고 2006년에 새롭게 건립되었다. 등대 아래로는 가마우지 서식지가 있다. 이 등대는 인천항에서 중국 쪽을 오가는 서해 국제항로 상에서 거쳐 가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김대건 신부가 중국을 오갔던 뱃길도 이 인근을 지나갔으며, 풍랑을 만나면 중국 어선들이 피항하는 곳이기도 했다. 소청도에 TV가 가장 먼저 보급된 곳이 이 등대의 관사라고 한다. 소청도 주민이 유일하게 소풍가는 주요 관광지이기도 했다. 뱃터에서 15분 거리인데, 이곳을 오르는 지형이 가파르고 위험하기도 하다.   차를 주차하고 200여m를 올라 입구에서 본 등대, 흰색의 사각 구조물에 바닷바람을 깊게 쏘인 등대는 독특한 아우라를 가진 이국적 풍광이다.     인천168개의 섬들은 나름대로 이야기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지내며 소청도는 특별한 슬픈 역사와 질곡의 세월을 보낸 섬이다. 한반도 화해무드에 맞추어 [인천in]은 우리들이 알지 못했던 소청도의 역사와 삶을 조명하는 시리즈를 격주 연재한다. 일제 강점기 소청도에는 동양대리석이라는 일본의 회사가 주둔하고 있었다. 소청도 남쪽 예동 해변에 배를 대기 위한 석조 구조물을 세워 놓았다. 해변의 서쪽에서 동쪽 바닷가 구조물까지 레일을 깔고 대리석을 배에 실어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함이다. 이 돌이 바로 스트로마톨라이트라 불리우는 질 좋은 대리석이다. 해방 이후에도 계속 캐었고 60년까지 운영하였다. 1946년에는 기뢰 폭발사고로 주민 67명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고, 6.25 이후 유엔사 관할 시절에는 잦은 어업 통제로 삶의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이 평소에 잔잔하던 파도가 갑자기 높아지고 가끔은 돌풍을 만나 돛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다반사였다. 6.25 이후 51-52년도에만 8척의 배에 20여명 등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50명이 넘는다. 자의든 타의든 소청도 사람들은 전쟁의 끝자락에서 다른 지역보다 더 거칠게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가슴에 지니고 있었다. [평화의 바다, 소청도를 보듬다]의 의미는 문화예술 접목을 통해 주민과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보듬고 풀어주어 화해와 상생의 평화 메시지를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는 2018년 9월에서 4개월간 진행되었고 인천광역시, 인천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역협력형 사업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섬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도시에 나간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자식들의 소망은 부모들이 섬에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더 이상 섬이 섬으로서의 고립이나, 불편하기보다는 정신세계와 정주의 여건(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섬의 역사를 기록, 보존하고 화해와 상생이라는 목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움직인다.   1. 소청도의 현재를 보다   소청도 면적은 2.91㎢이다. 철새도래지로 조류학자와 지리 연구자들이 섬을 많이 드나들며 국가철새연구센터가 건립되었으나 약간의 문제로 아직 오픈하지 못하고 있다. 소청도와 대청도, 그리고 백령도를 아우러 국가지질공원을 추진하고 있고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아름다운 섬이다.   소청도는 섬이 작아서 예로부터 소수의 주민이 거주하여 왔고 서로 외로움을 달래며 돕고 살아왔다. 섬은 예동, 노화동으로 나뉜다. 너무도 외로웠던 섬 주민들은 지나던 상선이나 표류해온 선박들이 정박하게 되면 깍듯이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며 친절을 베풀어 예의를 지켰다하여 예동(禮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노화(蘆花)동은 지역이 가파른데다가 삼면이 깎아지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지형인데다 예부터 갈대가 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해서 불러지고 있다(옹진군 지명유래 참고). 소청도 주민 수는, 최고 정점인 1960년도 말에 1,300여명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6.25와 정전협정 이후 작전 중인 켈로부대. 해병대 등 국군이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며 그 현장에 지금은 일반 주택들이 자리하고 있다. 1,300명이나 모여 살았던 사람들은 향학열에 불타 자녀를 육지 학교로 유학을 보냈고 일자리(직장)을 마련하기 위해 육지로 나서면서 노령화되어 현재는 주민과 공공기관 직원 등 250여명(그 중 노화동은 40여명)이 살고 있다. 1973년 소청도가 백령면 관할 리 단위로 소재할 때 인구는 982명으로 “백령도지”에 기록되어 있다. 2004년 인천광역시에서 주관한 인천앞바다바로알기 탐사팀의 조사에 의하면 당시는 108가구에 207명(영외군인 제외, 순수 토박이)이고, 2010년에는 116가구에 222명이었다. 현재는 소청도 남쪽으로 소청1리(예동)와 2리(노화동)로 나뉘어져 삶의 터전을 지켜오고 있는 원주민 수는 대략 250명 정도 된다. 2018년 12월 현재는 소청1리(예동) 이장 이은철, 소청2리(노화동) 2리 이장 조성청, 어촌계장 이용희가 맡고 있다.     분바위 앞에 물 때가 맞아 바다가 열리면 수많은 홍합과 다시마, 톳이어우러져 생명의 보고가 들어난다.     주 어업은, 주 어종인 홍어 잡이와 까나리, 조기가 주 어업이었으나 1990년대 들어서 조기는 자취를 감추었고 홍어와 까나리는 대청도, 백령도에서 명맥을 유지하여 잡고 있다. 홍어 잡이는 일제 강점기 부터 시작했고 6.25이후 서해 5도가 유엔사령부 관할에 있었다. 70년대 초반 수원22호 납북사건으로 조업이 통제되자 모든 어선이 선단을 구성하여 충남 태안반도, 전남의 흑산도 방면으로 옮겨 조업을 이어갔다. 이런 상태는 몇 년 가지 못했고 서해5도의 조업 재개가 점차적으로 이루어지자 충남, 전남 지역으로 옮겨갔던 선단들이 속속 소청도로 올라왔다. 그러나 군부대의 엄격한 조업 통제로 출어의 어려움 속에 80년대 초까지 취로사업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지금까지도 소청도 주민들은 고갈된 어족자원이긴 하지만 다른 섬에 비해 월등히 나은 어업과 노인들의 공공근로사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소청도에는 두떼기의 논(100여평)과 척박한 밭(18헥타) 재배(보리, 고구마, 조, 메밀)만이 있었으며 주소득원은 오로지 바다에 의존하는 실정이었다. 현재는 낚시 배와 인근어장에서 우럭, 놀래미, 삼식이, 삼치, 꽃게 등을 잡고, 미역, 다시마, 홍합, 가리비 등을 채취한다.   민박집에 널어놓은 삼식이와 부속 고기들, 해마다 11월이면 마을주민들이 스티로폴 배를 타고 인근 해변에 나가 창으로 찍어 삼식이를 잡는다. 예동에 고기를 널어 말리는 도구에 걸려 있는 홍어잡이 낚시바늘. 지금은 유일하게 대청도에서만 잡지만 한 때 1970년 초까지 소청도에서 왕성하게 홍어를 잡았었다. 그 흔적이 이 낚시바늘로 남아있다.     종교는, 50년대 개인집(당시 소청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시작한 장로교가 소청교회의 전신이며 현재까지 3명의 장로를 배출했고 현재 담임목사와 30여명의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천주교는 노화동과 예동에 각각 공소가 세워졌으나 노화동 공소는 80년대 초 문을 닫았고 현재는 철거되었으며 예동 공소는 현 위치에 2000년대 초반 개축됐다. 현재 20여명의 신자들이 대청도에서 들어오는 신부와 미사를 드리고 있다.   예동의 언덕에 있는 김대건신부 동상, 그의 순교 역사가 쓰여있다. 작은삭금 선착장 앞에 있는 월띠 부근, 스트로마톨라이트를 캐내어 실어나르던 곳, 1970년대 초에 이 돌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더 이상을 캐어내지 못했다.   분바위, 이 곳에서 서해의 많은 섬들 중에 으뜸의 경관을 가진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을 보려면 특히 아침 일찍이나 저녁 무렵 물이 많이 빠져있는 시간에 가서 바위 전체를 보는 느낌은 최고로 힐링하는 포인트이다.   소청도의 분바위는, 여성이 분칠을 한 것처럼 바위가 희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소청도 분바위는 천연기념물 제 508호로 지정되었으며 생물의 광합성 활동으로 만들어진 생물학적 석회성분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화석이 ‘스트로마톨라이트’라 불리운다. 소청도의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선캄브리아기 지층으로 약 10억 년 전에 활동한 남조류이다. 월띠(밤이면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고 어부들이 이 바위의 흰 반사를 보고 들어왔다고 해서 월띠라고 불렀다), 어르꾸미, 이랑금(산에서 내려온 줄기가 밭의 이랑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등으로 불리웠고 천혜의 자원인 홍합, 미역, 강투(톳)이 집단 서식하는 곳으로 마을 어촌계의 어장이다. 당연히 아무나 홍합을 채취하지 못하며 겨울철에 물 때 맞추어 바다가 열리면 공동작업을 통해 한 달에 두 번 홍합을 캔다. 1960년대에 이 곳 분바위 부근의 작은삭금 선착장(소청도 동쪽 끝)에서 대리석을 싣고 가다 황해도 비읍도 근방에서 돌풍을 만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기도 했다. 당시 위급환자가 생기면 부영발 신부가 만든 백령도의 병원으로 가야했으며 부영발 신부의 병원선 '바다의 별'이 운영되면서 밀가루와 옷가지 등을 많이 원조 받았다.   소청도를 운항하는 배의 역사는, 가장 초기에 운행했던 배는 백령호라는 목선이었고 인천항에서 무려 14-15시간이 걸렸다. 다음으로 은하호(철선), 새관광호, 황진호(철선) 13시간, 옹진호(철선) 10-11시간, 새경기호(철선) 9-10시간, 그리고 쾌속선 시대가 도래해 4-5시간으로 단축이 되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원래의 뱃터는 예동 마을 앞 남쪽이었으나 바람을 막아주는 장치가 없었고 초기에는 접안이 안 되었으므로 작은 나룻배(종선배)로 노를 저어 왕복하면서 사람과 화물을 날랐다. 60년 까지는 소청도에서 백령도까지도 어선을 타고 3-4시간 걸려 다녔다. 잔잔하기만 하던 파도가 갑자기 높아지곤 했고 가끔은 돌풍을 만나고 돛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다반사였다. 현재 인천 나가는 배는, 백령도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는 쾌속선(옹진훼미리호)이 인천에 도착하고 오후 1시에 다시 백령도로 출발한다. 소청도까지는 대략 편도 4시간이 소요된다. 인천 연안부두에서는 오전7시50분 2천 톤급의 하모니플라워호와 8시30분에 출발하는 코리아킹호가 있으며, 이들 여객선은 백령도에서 12시50분(하모니호), 1시30분(코리아킹)에 인천으로 출발하며 소청도 까지는 3시간 10분 내외 소요되는 쾌속선들이다. 소청도에서는 여객선이 입항하기 30분 전에 방송을 통해 안내해 준다.   하지만 아직도 소청도에 차량의 입도가 불편한 실정이다. 차량은 하모니플라워호를 타야만 승하선 할 수 있지만 소청도에는 이 쾌속선의 접안시설이 없어서 불가능하고, 대청도와 백령도만 승하선 할 수 있다. 당연히 화물선을 이용해야 하나 이마저도 격일제로 운행하고 미리 차량을 예약하고 인천항 화물부두에서 화물선에 차량을 승선할 때도 항운노조의 힘을 빌어 비용을 주고 승선시켜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차주는 여객선으로 소청도에서 들어와 하선을 위해 기다려야 한다. 비용도 1톤 트럭이나 봉고차의 경우 왕복비용이 8-90만원에 달한다.   숙박시설은, 제법 규모가 있는 팬션이 4-5군데 있고 여인숙도 5-6개 되지만 식당이라고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집은 없고 민박집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 식사는 소청도의 바다 먹거리가 풍부해 다른 섬보다 훌륭하며 마트나 편의점은 없고 간판도 없는 가게 1곳이 유일할 뿐이다. 숙박비 기본 2인 5만원, 1식 7000원으로 모든 집이 동일하다.   예동 마을 전경, 이 마을에는 청색의 지붕이 많고, 노화동은 주황색의 지붕이 많아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예동에만 100가구 200명 정도의 주민이 산다.   노화동 마을 전경, 유일하게 스레트 지붕에 페인트를 칠한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독특한 풍광을 만난다.     인천광역시가 서해5도에 지원해주고 있는 여객운임 할인정책이 2018년까지 80%에 달해 많은 사람들이 섬을 찾고 있고 대청도나 백령도는 벌써 단체 패키지 여행상품이 사람들을 엄청나게 불러 모아 인심이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소청도는 아직도 때 묻지 않은 인심에 먹거리가 풍부한 자연이 잘 보존되어있는 섬이다. 차후 행정이나 육지의 많은 관심이 필요한 섬이다. 하지만 이제는 소청도에 국립지질공원 지정이 코 앞에 있고, 많은 개발자금이 투입된다는 계획이 서 있는 만큼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섬마다의 특화를 위해서라도 이 섬이 자연보존과 상생의 합리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청도에 사는 주민의 단합된 의지가 필요한 시기이다. 소청도는 인천광역시의 섬 중 마지막 남은 천연의 섬, 낙원인 것이다. 시급한 것은 소청도 주민의 [정주여건 개선]인 것이다.  

인천경제청과 LH공사, 청라 G-City 불합리 의견 공유

업무협약에서 향후 청라국제도시의 체계적 발전 방안 도출 추진키로

      인천경제지유구역청과 LH공사가 영종·청라 국제도시의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업무협약을 맺었다.  인천경제청은 15일 송도 G타워에서 김진용 청장과 김인기 LH공사 청라영종사업본부장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양측은 영종·청라국제도시 기반시설 준공과 적기 인계·인수, 설계상의 문제로 지연되고 있는 청라시티타워의 조속한 사업 추진, 영종하늘도시 영종항공 일반산업단지 투자유치 등 각종 현안을 풀기 위해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분기별 정례회의와 수시회의를 갖기로 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양측이 그동안의 청라 국제업무단지의 G-City 추진이 도시계획이나 개발계획 차원에서 불합리했다는 사실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고 향후 청라국제도시의 체계적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언급은 JK미래와 인베스코가 청라 국제업무단지 27만8722㎡를 글로벌 스마트시티로 개발하겠다는 ‘G-City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사실상 주거시설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생활형 숙박시설(분양호텔) 8000실 건립을 추진해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하거나 계획의 대폭 수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인천경제청은 지난해 12월 9일 보도자료를 통해 “LH공사에 시장보고회에서 논의된 공모 등 특혜시비 방지대책 및 추진일정 계획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며 “앞으로 LH공사가 공모 등을 통해 새로운 사업계획을 제출하면 청라 국제업무단지 개발 논의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경제청의 입장은 ‘공모’와 ‘새로운 사업계획’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대규모 생활형 숙박시설을 포함한 G-City 사업계획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최후통첩으로 해석됐다.  이에 앞서 경제청은 지난해 7월 ▲대규모 생활형 숙박시설이 들어설 경우 기존 청라 계획인구 9만명의 20%가 넘는 약 2만명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학교, 교통, 도시기반시설, 주거환경 등에 악영향을 미치고 ▲LG전자와 구글(Google)이 직접 투자하거나 입주할 계획이 없는 가운데 구글은 청라 G-City에 ‘Google City’라는 명칭을 쓸 수 없다고 밝혔으며 ▲벤처 및 중소기업 입주를 담보할 확실한 대책이 미흡하고 ▲생활형 숙박시설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의 구체적 처분계획과 공익 목적의 기부채납 계획 등이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LH공사에 ‘실시계획 반영 불가’를 통보했다.  이번 업무협약에서 양 기관이 그동안의 G-City 추진이 불합리했다는 점에 인식을 함께 한 것은 LH공사가 인천경제청이 요구하는 ‘공모’와 ‘새로운 사업계획 제시’에 응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볼 수 있다.  한편 청라국제도시총연합회는 국제업무단지 개발이 장기간 지연되는 상황에서 구글 등 세계적인 회사가 참여하는 G-City 개발을 조속히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후보 5명 서류심사 통과

22일 직무계획서 공개발표회 열어

인천문화재단의 대표이사 지원자 14명 중 5명이 서류심사를 통과했다. 이들 5명을 대상으로 한 직무계획서 발표회가 오는 22일(화)일 공개적으로 열리고 이날 심층면접도 진행한다. 이후 인천시장에 추천될 2명의 후보를 선정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14일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 오후부터 비공개로 진행된 서류심사에서 총 14명(마감시한을 넘겨 지원서류를 낸 후보는 미포함키로 결정)의 지원자 가운데 5명을 선발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직무계획서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직무계획서 발표회는 인천아트플랫폼 H동에서 진행하며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참관할 수 있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5명이 15분 이내로 자유 형식으로 본인의 직무계획에 대해 발표하게 된다. 원활하고 공정한 진행을 위해 질의응답은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대표이사 추천위 측은 “문화도시 인천을 위해 출범한 인천문화재단에서 6대 대표이사 후보자 추천을 위한 직무계획서 발표 자리를 마련한 만큼 관심 있으신 분들이 많은 참관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세한 사항은 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032-455-7116)으로 문의할 수 있다.  후보자 5명의 신상은 아직 비공개다.  

해외연수 떠난 계양구의회, 일부 의원 조기 귀국

연수구의회 조례 개정키로... 대부분 기초의회 해외 연수계획 ”꽁꽁“

  경상북도 예천군의회 의원들의 외유성 해외연수와 추태 파문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인천시 10개 구·군의회는 해외연수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는 등 잔뜩 몸을 낮추고 있다. 14일 인천 기초의회에 따르면, 계양구의회 자치도시위원회 소속 의원 4명과 수행공무원 등 6명은 지난 10일 8박9일 일정으로 호주와 뉴질랜드로 해외연수를 떠났다가 비난 여론이 악화되면서 12일 조기 귀국했다. 윤환 계양구의회 의장은 “조기 귀국에 따른 위약금 처리문제와 다른 의원들의 해외연수 추진 여부 등을 논의할 계획”이라며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 올해 해외연수를 진행할 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계양구를 제외하고 부평·미추홀·서·중·동구의회와 옹진·강화군의회는 의원들의 해외 연수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기초의회는 최소 300만원(남동·연수구의회)에서 최대 650만원(동구의회) 가량 의원 1인당 해외 연수비를 책정하고 있지만, 올해 이 예산이 실제 집행될 지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원 해외 연수 경비를 의원 1인당 325만원에서 650만원으로 인상, 전국 1위의 비용을 올려 도마에 오른 동구의회의 관계자는 “예산은 있지만 집행계획 자체가 아직은 없다”며 “삭감할 거냐, 안 갈 거냐 등에 대해 확정된 부분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이와관련해 동구의회는 구의원이 참여하지 않는 공무국외여행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심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연수구의회는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연수구의회는 오는 18일 임시회를 열고 ‘연수구의회 의원 공무국외여행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공무국외여행 조례)을 개정할 방침이다. 연수구의회는 지난 2017년 12월 의원들이 버젓이 여행사 패키지 관광상품을 이용해 중국과 미국을 다녀오는 등 외유성 해외연수로 파문이 일었다. 연수구의회 의원들은 2018년에는 해외 연수를 단 한건도 다녀오지 않았다. 연수구의회는 이에 따라 공무국외여행 규칙을 조례로 제정했고, 이번에 공무국외여행 심사위원회 설치·운영을 강화하고, 공무국외여행 계획서와 공무국외여행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행정안전부도 ‘지방의회 의원 공무 국외여행 규칙’을 개정해 전국 지방의회에 개선을 권고할 방침이다. 행안부의 권고안은 국외연수 심사위원회에 민간위원 비중을 늘리고, 심사위원장을 의장이나 부의장이 아니라 민간위원 가운데 호선으로 뽑도록 하고 있다. 또, 국외연수에서 부적절한 일정이 발견되면 관련 비용을 환수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배상록 미추홀구의회 의장은 “해외연수가 해외에서 좋은 사례를 보고 배워 지역에서 활용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데, 지금 분위기로 보면 전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며 “만약 꼭 가야할 연수가 있다면 후반기 정도에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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