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은 치유의 첫 단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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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은 치유의 첫 단추입니다
  • 박남춘 국회의원(인천 남동갑)
  • 승인 2014.09.15 23: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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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단식농성 참여 소감

*박남춘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 인천 남동갑)이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 단식 농성장에서 하루 단식을 마치고

<인천IN>에 소감을 보내왔습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광화문의 아침볕은 뜨거웠습니다. 영화 명량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는 단촐한 천막들이 몇 동 세워져 있습니다. 자리를 돌보는 사람, 주변 쓰레기를 정리하는 사람, 시민들께 나눠줄 유인물과 노란 리본을 챙기는 사람, 아침 신문을 읽으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지만 질서 있는 차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뒤를 이어 21일째 단식중인 동료 정청래 의원과 반갑게 수인사 하고 자리에 앉았습 니다. 정의원은 10kg 정도 몸무게가 빠지고 검게 그을린 피부와 덥수룩한 수염이 익숙하지 않지만 정신이 맑아지고 아직 버틸만 하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오히려 하루 단식을 시작하는 제게 이것저것 주의사항을 일러줍니다. 오늘 함께 단식을 할 우상호, 남윤인순 의원도 옆자리를 채웠습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단식 농성장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뒤 148일째를 맞는 9월 10일입니다. 진도 팽목항에서,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청와대 앞에서, 그리고 이곳 광화문 광장에서 유족들과 시민들은 또렷하게 묻습니다. 단원고 2학년 최성호 군의 아버지는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데 정작 부모는 제대로 된 설명 하나 듣지 못했습니다. 왜 자식의 죽음을 구경만 하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만 해도 이리 오래 갈 것이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유가족을 달랬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언제든지 찾아오라 했으며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히겠다고 했습니다. 여당 또한 선거를 앞두고 “한번만 살려달라”며 진상규명과 국가개조를 약속했습니다. 그랬던 대통령과 여당이 두 번의 선거에서 자신감을 얻었던 것일까요. 참사의 진상규명이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의 문제를 ‘정쟁’과 ‘이념’의 문제로 바꿔놓아 버렸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야당의 무능과 실수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국민들과 유족들이 야당에 실망하고 비판했던 여러 부분들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농성장에 앉아 있는 동안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혼도 많이 났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똑바로 해라’, ‘끝까지 제대로 싸워라. 중간에 또 흐지부지 하지 말고’, ‘2005년 한나라당은 사학법 투쟁 할 때 지금 야당과 같이 약하게 싸우지 않았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지금보다 적은 국회의원 숫자로 똘똘 뭉쳐 원하던 바를 이뤄냈다.’……

모두 맞는 말씀입니다. 더디 가더라도 유가족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어 진상 규명에 오롯이 집중해야 합니다.
 
오후가 되며 제 지역구인 인천 남동구에서 몇몇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광화문 분수대에서 물놀이 하며 장난치는 개구쟁이들의 모습이 유독 해맑아보였습니다. 농성장 한 켠에 걸려 있는 세월호를 연상케 하는 애드벌룬과 유독 대비됩니다. 아이들의 웃음이 이 땅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세월호특별법 통과를 위해 마음을 모으고 계신 분들은 다양한 몸짓과 마음으로 힘을 보태고 계십니다. 신부님, 목사님, 스님, 수녀님들은 거룩한 신의 존재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읍니다. 영화 연극 예술인들은 재능을 살려 죽은 아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거리의 극을 만들어 냅니다. 언론인들과 만화가들은 붓을 들고 글로, 그림으로 현재를 기록합니다. 이름 한 줄 내놓기 꺼려하는 시민들은 가슴에 단식 패찰을 붙이고 농성장 모퉁이에 조용히 앉아 이 기나긴 싸움의 한 끝자락을 놓지 않고 계십니다.
 
뜨거웠던 볕은 건물 뒷 편으로 물러나고 서늘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옵니다. 농성장에 어둠이 짙게 내리고 사투리 억양 강한 가수 강산애가 허름한 무대 위에 앉습니다. 처연한 하모니카와 구성진 어쿠스틱 기타를 튕기며 ‘라구요’, ‘연어’, ‘넌 할 수 있어’ 등 익숙한 음율로 도시속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농성장의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펼쳐 놓았던 특별법 서명 가판대를 치우며 하루를 정리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변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웁니다. 또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잠자리를 정돈합니다. 정확히 11시 30분. 농성장을 비추고 있던 백열등이 꺼집니다. 광화문을 질주하는 증폭된 자동차 소리와 숨 쉬기 조차 곤란한 매연 속에서도 이 곳 세월호 공동체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문명국가에서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면 상황을 수습하고 원인을 규명해서 치유를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입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아무런 수습도 하지 못한 국가가 제대로 된 원인 규명을 회피하는 바람에 그 참사에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와서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국가가 책임 있게 풀지 못하고 적당히 넘어가려 한다면 유가족들에 대한 치유는 요원할 것입니다.
 
다시 광화문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를 정리하고 노란 리본을 접으며 서명판을 펼칩니다. 하루 단식으로 조그마한 마음 보태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한 가지 더 분명하게 느끼고 돌아갑니다.

이 싸움은 유가족이 일상으로 돌아가야 끝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끝의 시작에서 함께 사는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두고 더 큰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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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주민 2014-09-16 17:06:17
지역구 활동도 열심히 하시고 세월호 가족들에게도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만드는데 앞장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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