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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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 이희인 여행가 겸 작가
  • 승인 2015.01.20 15:0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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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인의 <길 위의 책, 길 위의 맛> 1. 인천 신포동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 찾아간 곳 / 인천 신포동 다복집
- 읽은 책 /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고향에 왔다.
 
열흘 전 북유럽을 여행할 때 문득 그리웠던 내 고향 인천과 신포동의 다복집, 그리고 이집 대표 메뉴인 스지탕을 먹으러 왔다. 서울에서 6시까지 일을 해 보내고 급히 나서 인천으로 서둘러 내려왔다. 초등학교 동창 친구에게 전화해 한 잔 하자 했더니, 여기저기 연락이 돼 동창 다섯이 모였다. 고향에 와 고향 친구를 만나 고향 음식에 술 한 잔 기울이는 것. 이런 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일까?
 
‘노포’라는 말이 있었다. 글 잘 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가 최근에 낸 책 <백년식당>에 써서 알게 된 말인데 대를 이어 영업을 하는 오래된 가게를 일컫는다. 일본 도쿄나 오사카 등지에서 백년, 2백년 넘은 노포들을 더러 만날 수 있었는데 우리에겐 그런 집이 얼마나 될까? 책에는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오래된 국밥집, 냉면집, 어묵집 등의 노포들이 소개돼 있었다. 목차에 오른 집들 중에 내가 아는 집은 서울 청진옥이나 우래옥, 열차집을 포함해 몇 집 되지 않았다.
 
 
 
종종 신포동 갈 때마다 늘 가려던 다복집으로 먼저 발길이 닿지 않았던 건 스지탕보다는 우럭젓국이 앞섰기 때문이다. 부모님 고향인 서산의 별미 우럭젓국을 어릴 적에 먹은 기억이 있는데, 그걸 신포동에서 발견한 뒤 인천 내려와 우럭젓국에 소주 한 잔 마시는 게 한동안의 행복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스지탕이 목포였다. 오로라를 만나고 돌아온 그 밤, 노르웨이 북단의 도시 트롬쇠에서 왜 난데없이 신포동 스지탕이 생각났을까. 입맛이 부리는 변덕과 욕망은 종종 오리무중인 것이다. 오늘은 우럭젓국을 꾹 참고 다복집으로 향했다. 도가니와 비슷한 소의 힘줄 부위인 스지를 감자 등과 곁들여 얼큰한 탕으로 내오는 이 집의 또 다른 대표메뉴는 뜻밖에도 함박스테이크다. 그 안주들을 변함없이 내온 이 집도 ‘노포’일 것이다. 몇 해 전 작고하신 창업자 한복수 옹에 이어 그 자제분이 가게를 잇고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 대선배인 사진작가 김보섭 선생이 몇 해 전 이 집서 사진전을 여신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이제야 그 사진들을 만났다. 김보섭 선생이 촬영한 한복수 옹의 사진이 스지탕 맛을 감시라도 하듯 형형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아아, 고향에 와 고향 친구들을 만나 고향 음식에 소주를 마신다. 그러자 북유럽 여행에 가져가 읽었던 미국 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가 떠올랐다. 서구인들에게는 ‘고향’이란 단어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언젠가 외국의 포도주스 광고를 본 적이 있는데, 포도주스를 마시는 어른들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던 비주얼에 “엄마가 해준 포도주스가 마시고 싶어요” 하던 카피가 붙어있었다. 엄마, 집,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 보편의 감성인 것이다.
 
이 책은 여행에 함께 가져간 철학 서적이 너무 어렵거나 재미없을 것에 대비해 챙겨간 것이지만 실은 오래 전부터 읽으려던 책이다.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스콧 피츠제럴드와 동시대 작가였던 토마스 울프는 당시 미국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존재였고 꽤 촉망받는 작가였지만 38살의 나이로 요절한 비운의 소설가이기도 했다. 미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싱클레어 루이스가 그 수상소감에서 토마스 울프를 극찬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는 그의 유고작이 된 소설인데, 나는 이 책을 소설가 윤대녕의 에세이에서 추천받았다. 절판되어 구하기가 쉽지 않은 책을 간신히 구해 오래 전부터 읽으려 했는데 여행 배낭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차치하고 나는 여행지에서 이 책의 표지만 봐도 그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You can’s go home again.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거라니. 너무 먼 곳으로 여행 와 있자니, 영원히 고향에 못갈 거라는 제목이 무슨 저주의 예언처럼 여겨졌다. 길 위의 여행자에게 이만큼 슬픈 제목이 어디 있을까. 또 이렇게 뭉클한 제목이 어디 있을까. 이보다 아름다운 제목의 소설을 좀처럼 생각해낼 수 없었다. 소설가 이문열이 자신의 소설에 일찌감치 이 제목을 차용한 까닭도 그러할 것이다. 먼 이방의 여행지에서 신포동 스지탕이 그리워진 것도 그 제목 때문은 아니었을까?
 
 
 
때로 장광설과 주관이 넘쳐나는 부분이 보이지만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전반부에서 소설가로 등단한 주인공이 친척의 상을 당해 10여년 만에 고향을 찾아가는데, 대공황을 앞둔 1929년의 시골 고향 마을은 온통 부동산 투기에 미쳐있다. 천정부지로 뛰는 부동산의 광풍에 매몰돼 있던 고향 사람들에게서 풋풋한 정이나 따뜻함도 느낄 수 없던 화자에게 고향의 눈먼 어르신이 충고한다. 자네가 고향에 다시 갈 수 있을 것 같나? 정말 고향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따지고 보면 우리 중 누구도 온전히 고향에 갈 수 없으리라. 고향이 단지 행정구역상의 지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의 추억과 바람 안에 박제된 고향은 결코 찾아갈 수 없는 땅인지도 모른다. 누구도 고향으로 갈 수 없음.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의 실존을 극명하게 표현한 선고가 아니겠는가. 개발이 진행 중인 고향을 지향 없이 찾아가는 우리 소설 <삼포 가는 길>이 자주 아른거린 것도 그 때문이다. 한껏 울고 싶어질 때 이 책을 싸들고 고향으로부터 멀리 여행을 떠나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난 고향에 왔고 옛 고향 친구들을 만나 50여년 된 노포 식당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술도 친구도 오래될수록 좋다고 했던가. 오래고 낡은 것들의 아름다움이 신포동 거리에 난만했다. 마침내 나는 고향에 와 닿아있는 것이 아닌가. 고향에 와 있음. 이거야말로 기적적인 일이 아닌가. 기분 좋게 마시고 서울의 집으로 올라오며 삶이 때로 기적 같을 수 있음을 생각했다. 나의 행복은 아직 안전한 것 같다고.
 
‘그대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 말은 그에겐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즉 그대는 다시는 고향으로, 가족의 품으로, 어린 시절로, 낭만적 사랑으로, 영광과 명예에 대한 청년 시절의 꿈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다시는 방랑 생활, 다른 나라로의 도피, 그리고 ‘예술과 미’, ‘사랑’을 완성시키려는 이상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중략) 한때는 영원한 것으로 보였지만 언제나 변화하는 사물의 낡은 형태와 조직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가 없으며, 다시는 시간과 기억의 도피처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토마스 울프,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에서)

 

이희인 
1969년 인천 송림동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한때 소설가, 극작가가 되길 꿈 꾸었지만 졸업 뒤 광고회사에 취업하면서 잠시 그 꿈을 접었습니다. 
이십여년, 그 일로 밥벌이를 하며 살아왔으니 광고 카피라이터가 분명합니다. 이십여년간 우리 국토와 낯선 나라들을 열심히 헤집고 다녔으니 여행가라 해도 될 듯합니다. 여행과 책은 물론 사진, 음악, 연극 등 관심 가는 일은 많지만, 닉네임으로 쓰는 ‘크눌프’의 삶처럼 어디에도 진득하게 속하거나 묶이질 못합니다. 그것들의 넘나듦을 통해 언젠가는 자신만의 의미망을 만들 수 있을 거라 희망합니다. 

《사람과 책》 《해피 투데이》 《월간 포토넷》 《황해문화》 《계간 아시아》 《책과 삶》 등의 잡지, 신문에 여행과 광고, 사진에 관한 글을 기고, 연재해 왔습니다. 『사진, 광고에서 아이디어를 훔치다』 『여행자의 독서』 1, 2 등 6권의 책을 세상에 상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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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바다 2015-01-21 23:19:20
한때는 영원한 것으로 보였지만 언제나 변화하는 사물의 낡은 형태와 조직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가 없으며...
One can never fully “go back home to the old forms and systems of things which once seemed everlasting but which are changing all the time.”

서해바다 2015-01-21 22:43:01
"천정부지로 뛰는 부동산의 광풍에 매몰돼 있던 고향 사람들에게서 풋풋한 정이나 따뜻함도 느낄 수 없던 화자에게 고향의 눈먼 어르신이 충고한다. 자네가 고향에 다시 갈 수 있을 것 같나? 정말 고향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따지고 보면 우리 중 누구도 온전히 고향에 갈 수 없으리라. 고향이 단지 행정구역상의 지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의 추억과 바람 안에 박제된 고향은 결코 찾아갈 수 없는 땅인지도 모른다. 누구도 고향으로 갈 수 없음.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의 실존을 극명하게 표현한 선고가 아니겠는가." 밑줄 긋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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