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과 학살, ‘인천상륙작전’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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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과 학살, ‘인천상륙작전’의 두 얼굴
  • 배영수 객원기자
  • 승인 2014.09.15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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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선 전승행사 퍼포먼스 탄성, 다른 한쪽선 폭격 희생자 눈물
 
 
‘인천상륙작전’은 여전히 인천 시민들에게 ‘아수라 백작의 두 얼굴’로 남아 있었다.
 
지난 15일 월미도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전승행사와, 상륙작전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희생된 주민들을 추모하는 위령제가 열렸다. 하나의 사건이 정부 및 지자체의 잘못된 행정으로 상반된 의미의 다른 행사를 낳아버린 셈이다.
 
우선 오전 9시경부터 월미도 문화의 거리와 인근 해상에서 펼쳐진 전승행사는 참전용사들과 해군 그리고 시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상륙작전을 재현하는 퍼포먼스가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졌다. 매년 크게 열리던 형식 그대로 큰 사고 없이 이루어졌다. 행사는 자유공원에서 맥아더의 동상에 헌화하는 것으로 먼저 시작됐으며 본격적인 행사는 10시부터 월미도 일대에서 군 주도로 시작됐다.
 
전승행사는 국방부의 주관 아래 참전국가들의 부스 설치와 참전군 사진자료, 그리고 군 주도로 참전국기 도열과 인천시립합창단의 축하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부대 행사로 펼쳐졌다. 현재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들의 당시 상황 인터뷰와, 한국전쟁 이후 군의 발전상 등도 영상으로 소개됐다.

이어진 식후 행사에서는 군함과 헬기, 수륙양용 장갑차 등을 동원해 1950년 9월 15일 당시의 상륙작전이 그대로 재현됐다. 잘 훈련된 군인들의 낙하산 도하와 해병들의 재빠른 상륙, 그리고 포탄 발포 등 볼만한 퍼포먼스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이날 전승행사는 참전용사들을 비롯해 최소 50대 이상 세대들의 참여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학생 혹은 젊은이의 입장이었거나 어린이였던 세대들로, 이들 세대와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세대들이 보는 한국전쟁과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시각 차이를 체감할 수 있을 만한 모습이었다. 실제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도 세대에 따라 이 행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드러냈다.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여했다는 김모씨(81)는 “거의 매년 이것을 보러 온다”며 “행사가 매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은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맥아더는 세계적인 추앙을 받기에 충분했던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시민은 “전승행사를 쌍수 들고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매년 행사 규모가 축소되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 쓸쓸하다”는 느낌을 말하기도 했다. 70대 이상의 세대 상당수가 이 행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단면 중 하나였다.
 
반면 휴가로 출근을 하지 않고 우연히 행사를 보게 됐다는 시민 이모씨(38)는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으로는 성공한 ‘승장’일지는 모르나, 연합군의 북진 때 압록강을 건넌 중공군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장군으로서 최악의 작전을 펼친 ‘패장’인 동시에 이로 인해 1.4 후퇴를 야기한 장본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냉정히 짚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일부에서 너무 상륙작전만 부각해 그를 신격화하려는 것처럼 보여 불편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또 다른 시민 장모씨(28)는 “한국전쟁이 엄연히 승전이 아니라 휴전인데 이것을 전승행사로 이름 짓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 행사가 최근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 전승행사가 열리기 직전 북한이 성명을 내고 이를 강력 규탄했기 때문이었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지난 14일 “남측이 평화와 친선의 이념으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전쟁과 대결의 광풍을 조장하며 북남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참가한 북한 선수들을 동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은 조평통이 성명을 낸 당일 국내 유수 언론사들에 의해 모두 알려졌다.
 

해병 군복을 입고 현장에 참여한 몇몇 시민은 “우리가 미군의 지원도 받는 마당에 굳이 북한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 최모씨(47)는 “행사 자체의 시선이 세대 별로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찬/반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북한의 참여에 큰 의미를 가지는 아시안게임을 생각해서 이번 연도만은 한 번 취소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행사와 아시안게임과의 연관성에 대해 인천시는 이번 “전승행사를 이번 연도만 한 회 취소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국방부에 요청했으나, 국방부가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곳과 거리도 상당한 데다 이 행사와 아시안게임은 전혀 무관한 것이고, 또한 전승행사는 매년 열리는 것이므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역시 중앙언론사들에 의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언론사들 역시 보수 성향의 언론은 “인천시가 북한 눈치를 보고 있다”는 기사를, 진보 성향의 경우 “평화의 의미를 다지는 아시안게임에 포탄을 내세우는 어이없는 모습을 연출한다”며 성향에 따라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한편 전승행사가 종료된 뒤 오후 2시부터 월미공원에서는 상륙작전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희생당한 당시 월미도 주민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열렸다.
 
이 위령제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9월 10일 미군이 상륙작전을 위해 북한군 무력화 작전을 전개하면서 월미도의 민간인 마을을 폭격(월미도 포격사건)해 대량으로 희생된 무고한 시민의 혼을 위로하고 폭격된 땅을 미군이 점령해 살던 곳에서 쫓겨난 유족을 위로하며, 이에 대해 아무런 추모의 뜻도 표하지 않는 정부와 인천시를 규탄하기 위해 2007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처음 시작되기 전에도 2004년부터 주민 농성과 시청 앞 1인 시위 등이 펼쳐지고 있던 차였다.
 
미군의 폭격 당시 희생된 시민들은 유족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했을 때 1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10명에 불과해 지역사회에서 안타까워하고 있기도 하다.
 
위령제를 주관한 한인덕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그간 인천 지역 내 의식 있는 인천시 정치인들이 관련 조례를 만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안전행정부가 '한국전쟁과 관련된 지원책은 지자체가 아닌 국가의 사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자신들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책임을 미루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주고 있다”며 분통해 했다. 그는 “전승행사 같은 것은 물론 불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그 가운데 희생된 유족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정부가 모두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며 국방부는 토지 대장이 없다는 이유로 원주민의 귀향 자체를 거부했다”고 밝혀, 정부의 입장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숨김 없이 내비쳤다.
 

인사말을 통해 월미도 원주민들의 한과 정부의 무대책을 토로하는 한인덕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장

행사에 참여한 문병호 국회의원(인천 부평갑)은 “월미도 폭격사건은 무고한 주민들이 미군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고 거기에 국가가 주민들이 살고 있던 토지와 집을 아무런 보상 없이 빼앗아 금전 상의 이익을 취한 사례”라며 “주민들은 물론 정치인들이 이를 자각해야 하는데 그간 세월호 침몰 사고 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주목하지 못한 측면이 있어 무척 죄송하게 생각하고 관심 끊지 않고 해결을 보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위령제를 관람한 시민 유모씨(36)은 “매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전승행사와 위령제를 한 날에 보고 나면 상륙작전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두움에 항상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전승행사의 멋진 광경에 취해 어두운 단면을 보지 못하거나 알고도 외면한다면 그것은 인천에서 시민으로 사는 도리가 아니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 위령제 현장을 처음 방문했다는, 신원 공개를 거부한 한 참여자는 “한창 문제가 됐던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의 경우 유족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정부-지자체 협력의 관련 사업이 이루어지는 데에 반해 월미도 폭격사건은 차별까지 당하는 것처럼 보였다”며 “정부가 노근리 사건 못지 않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는 견해를 내비치기도 했다.
 
월미도 미군폭격사건의 경우, 근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보상 및 지원을 정부에 권고했으나 정부는 “권고는 권고일 뿐”이라며 사실상 거절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인천시의 경우 “당시의 일은 안타까운 것이지만 법적 근거가 있지 않아 사실상 보상이나 지원 등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 매년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다만, 문병호 국회의원이 추도사를 하면서, 한국전쟁과 관련해 피해를 입은 8곳 지역 국회의원들이 최근 만나 보다 진전된 새로운 특별법의 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이뤘다고 언급한 점은 주목된다. 문 의원은 "우선 이명박 정부 들어 활동이 중단된 진실과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다시 활동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며 "새로운 특별법은 정부가 워낙 보상 문제에 대해서는 난색을 보이고 소극적이어서, 보상 문제는 한 발 뒤로 미루고 일단은 기념사업과 위령제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먼저 알려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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