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누구를 위하여 팡파레를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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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누구를 위하여 팡파레를 울리나?
  • 문석영 시민기자
  • 승인 2016.04.21 18:12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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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펼친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


“선생님, 우리 여기 저사람들 상받는 거 보러 여기 온 거에요? 공연보고 놀러 온 거 아니었어요”
제대한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청년이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하는 말이다.
 
“오늘 행사 어떠셨나요?”
“매번 똑 같죠. 뭐? 근데 축사는 더 길어 진 것 같네요.”
 
지난 20일 오전 9시45분부터 시작된 장애인의 날 기념식 행사는 11시 20분까지 '그들만의 리그'를 펼쳤다.
잠깐의 축하쇼를 시작으로 국민의례와 내빈소개에 20분 정도가 할애되고 그마저도 모자라 프로그램 중간 중간마다 다시 늦게 도착한 내빈들이 소개되었다. 그나마 있는 장애인 분야 유공자 표창에는 20~30분 정도가 소요되었으나 상을 왜 받는지 어떤 기여를 하였는지도 소개 없이 그냥 기관과 수상자 호명만 나열 될 뿐이었다.

그 뒤에 이어진 각종 인사들의 기념사와 축사들로 20~30분이 또 채워졌다. 그리고 하나의 행운권 추첨에 뒤이어 본 무대 위에서 수십명 되는 내빈들의 기념촬영이 있었다. 그러더니 사회자 멘트는 이렇게 이어진다. 내빈들이 외부에 설치된 체험부스를 돌아볼 예정이니 담당자들은 부스에 가서 준비하라는 내용의 멘트이다.
이렇게 1시간 반이 넘어서야 오늘의 주인공인 장애인들은 몇 가지 마술과 축구공 선물, 초청 가수의 썰렁한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사회자의 마이크를 잡고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이 아니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니 무대에 올라와 춤을 추라”
 
“15년 전에도 올라와서 춤추라고 한 게 이상했는데 아직도 무대에 올라와서 춤을 추라고 하네. 장애인들은 소원이 무대에 올라와 춤춰 보는 걸로 알고 있나?”
한 사회복지사의 어이없어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점심식사 안내에는 VIP내빈들은 OO식당에 예약이 되어 있으니 모여달라는 내용과 오늘의 주인공인 장애인들 및 관계 직원 및 자원봉사자들은 공연장 안에서 음식물을 먹을 수 없으니 외부에서 먹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차라니 VIP 내빈들 어디서 점심식사 하라는 안내는 내부에서 조용히 공유하였으면 이토록 실망스럽지는 않았을 거라는 한탄도 들을 수 있었다. 그나마 올해는 식사할 수 있는 테이블이 외부에 일부 설치되어 있어서 돗자리 신세는 면했다며 좋아하는 종사자들도 있었다.
 
밖으로 나온 장애인들과 기관 사회복지사들은 더 어이가 없었다. 식전까지 그마나 차려져 있던 몇가지 안되는 체험 부스가 벌써 철수되고 없었던 것이다. 내빈들이 돌아보고는 이미 철수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결국 장애인들이 1시간 반 동안 내빈들의 잔치를 구경하고 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여해서 얻은 것은 차디찬 김밥 도시락과 음료, 오렌지 1개, 수건1장이다.
J기관장은 “저도 오랜만에 따라 나와 봤는데 달라진 게 없네요. 이젠 보내지 말아야 겠어요. 도시락 보셨나요? 이번 행사로 예산을 얼마를 쓴 건지 궁금해지네요.”
S기관 자원봉사자는 “작업장에서 오랜만에 나와서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내빈소개와 축하메시지로 자기들 잔치를 구경하게 하는 이런 행사를 참여하면서 사회복지사들이 가만히 있는 게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사회복지에 회의를 느낀다고 하였다.”

M기관 담당 사회복지사는 “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장애인들은 장애인 학교나 장애인 주간보호나 단기보호시설, 장애인보호작업장 등을 이용하는, 즉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없는 지적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 등 중증장애인이 대부분입니다. 일을 하는 장애인들은 상을 받지 않는 이상 참여하기 쉽지 않죠. 일하러 가야 하니까요. 그런 장애인들을 모아두고 몇십년째 똑같은 행사를 합니다. 주인공인 장애인들은 빠지고 시 관계 인사들의 보이기식 행사인거죠. 저는 제발 무대에 올라가서 춤이나 추지 말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전혀 공감이 형성되지 않는 이런 행사를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하며 불만을 터뜨렸다.

K기관 사회복지사는 “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참여하는 행사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유공자 표창을 정 하려거든 그 이유라도 알고 함께 박수해주면 좋겠구요. 지적장애인 시설에서 참여가 많은데 눈높이에 맞는 행사를 준비해 주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냥 편안하게 평소에 보기 쉽지 않은 대규모 뮤지컬을 보거나 하고, 이 인근에 식당도 많잖아요. 기관별로 흩어져서 저렴한 메뉴라도 제공을 해주면 지역 축제로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차라리 예전에 N기관에서 짜장면 파티와 함께한 단축마라톤이 더 재밌는 것 같아요.” 라는 제안도 하였다.
 
장애인의 날,
군사정권 아래에서 장애인에게 시혜적인 행사를 치르기 위해 기상청에서 가장 강수량이 적은 날로 뽑아준 날 중에 고른 날,
몇 십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좀 다르게 진행되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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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먼저 2016-04-27 21:10:08
장애인의 날,
군사정권 아래에서 장애인에게 시혜적인 행사를 치르기 위해 기상청에서 가장 강수량이 적은 날로 뽑아준 날 중에 고른 날

이라고 했는데,

장애인의 날은 순수 장애인관련 단체에서 먼저 제정한 재활의 날을 정부가 장애인의 날로 지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4월 20일 경이 절기상 곡우라 비가 많이 옵니다.
그래서 늘 장애인의 날즈음에는 비가 옵니다.

이길석 2016-04-23 08:19:10
장애인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프로그램 이었습니다.
연설도 길었지만 마술도 비장애인인 우리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좀 쉽고 뭔가 확 나타나고 그런 마술이었으면 지적장애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고희선 2016-04-22 13:01:14
이거 예산 사용 부분은 정말 공개 여부 요청 해야 하는거 아닌가 합니다.

정미연 2016-04-22 11:57:55
속이 다 후련하네요

한보름 2016-04-22 10:19:23
올라와서 춤을 추라고요? 비장애인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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