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운과 함께보는 인천경제>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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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운과 함께보는 인천경제>시작합니다.
  • 진달래 기자
  • 승인 2015.09.0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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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미래 알려면 거시경제를 구석구석 뜯어보아야
<인천in>은 격주로 약 20여회에 걸쳐 (사)함께하는 인천사람들의 김하운 대표와 함께 인천거시경제 칼럼을 게재합니다. 김하운 대표는 한국은행 인천본부장을 거쳐 인천시 경제정책자문관, 인하대학교 경영대학 겸임교수, 인천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전문가입니다. 그가 말하는 “인천의 거시적 경제구조의 이해”와 “인천의 경제가 나아갈 길”을 진달래 기자가 그래프를 넣어가며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진: (사)함께하는 인천사람들 김하운 대외협력이사>

인천경제자유구역 지정 12년, 안상수 8년과 송영길 4년 그리고 유정복 시장 1년. 인천의 과거와 현재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이며, 계속 인천에서 인연을 맺고 살아갈 시민들인 우리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이현식 인천근대문학관장은 인천을 근대도시, 산업도시, 그리고 주변부 도시 세 가지로 표현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개항한 제물포항이 위치하여 중국인, 일본인 등이 교역을 위해 드나든 역사를 지녔다는 의미에서의 근대 도시, 60년대 이후 부평주안산업단지 등의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 대한민국의 제조업과 공업을 이끌어갔다는 의미에서의 산업 도시이다.

하지만 서울에 인접해 있어 이와 같은 인천의 핵심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인천은 타 광역시들과는 달리 수도 서울의 발전을 지원하는 역할로서 그 잠재적 성장가능성이 제한되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인천의 공업 제품은 대부분 중간생산물로써 타 지역의 부가가치 생산을 돕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변부 도시라는 별명은 이로 인해 붙여졌다.

60년대 이후 급격한 개발성장 과정에서 인천은 수도권 뿐만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제품 및 서비스의 공급기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면서 많은 분야에서 전국 최초를 기록하였는데, 인천을 빼놓고는 이 나라의 공업 발전을 논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전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과 공설운동장도 인천에 생겼다. 

인천은 원자재에 해당하는 생산재와 중간재의 공급에 있어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성장한 제조업도 결국은 서울을 위한 성장일 뿐이었다. 새로 나는 길도 서울을 향해 났다. 동인천과 부평을 거쳐 구로로 향하는 1호선 전철은 인천의 노동자들을 서울로 실어나르기 위한 대표적인 통근전철이었다. 

 
<사진: 인천 지역내총생산 구성비별 산업구조. 인천 산업의 중추였던 제조업이 점점 줄어드는 양상>

하지만 이제 인천은 변했다. 제조업 도시에서 서비스업 도시로, 산업도시에서 첨단도시로, 주변도시에서 독립도시로. 하지만 인천의 제반 여건이 변한 것은 아니다. 중국 접근성, 항만과 공항, 서울과의 인접성은 여전하다. 같은 조건에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도 정주 인구가 늘어나고 문화가 융성한 인천 경제를 만들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인천in>은 앞으로 격주로 약 20여회에 걸쳐 (사)함께하는 인천사람들의 김하운 대외협력이사와 함께 인천 거시경제 칼럼을 게재한다. 김하운 이사는 인천시 경제정책자문관, 인천신용보증재단 이사장, 한국은행 인천본부 및 제주본부 본부장을 역임한 전문가이다. 그가 말하는 "인천에 맞는 경제구조 이해"와 앞으로 인천이 나아갈 길은 어디일까? <김하운의 인천경제 톺아보기> 은 진달래 기자가 정리하고 그래픽을 넣어 보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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