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바다 북극, 그리고 죽음의 트롤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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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바다 북극, 그리고 죽음의 트롤어선
  • 김연식
  • 승인 2016.07.1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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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해양생태계 파괴하는 트롤어선

# 고래 숨소리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는 닫을 수 없다. 사람은 그렇게 지어졌기에 화면 없이 소리만 들을 수는 있어도, 소리 없는 화면을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영화든 방송이든 경험 많은 제작자일수록 음향에 공을 들인다. 보는 것 하나로는 감동이 없다. 영상에도 음악이 곁들어져야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놀라운 경관이 나올 때는 웅장한 배경음악이, 슬픈 장면에서는 낮은 음악이 깔린다.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있다. 맛좋은 음식도 냄새를 못 맡고 맛보지 못하면 한낱 그림에 불과하다. 그래서 음식방송에서는 보글보글 끓는 소리나 튀김의 바삭거리는 소리라도 들려주려고 안달한다. 이래저래 따져보면 오감 중 시각은 제일 나중이다.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듣는 것이 진짜다. 결국 무엇을 보는 경험은 사실 보는 것 이외의 것이 함께일 때에야 감동이다. 보는 것 홀로는 감동이 없다.


북극 바다에서 혹등고래 떼를 봤을 때도 그랬다. 지난 6일, 나는 북위 79도 노르웨이 령 스발바르(Svalbard) 인근 해안을 항해하고 있었다. 새벽 2시이지만 태양은 북쪽 수평선 위로 20도 정도 떠 있었다. 멀리 하얀 설산 아래서 고래가 뿜은 물보라가 올라왔다. 즉시 배를 돌려 고래에 다가갔다. 멀리서 눈으로 보는 거야 사실 방송국에서 고화질 렌즈로 최고의 위치에서 찍은 화면만 못하다. 그러니 사람들은 쌍안경을 들고 이게 혹등고래니 청고래니 하며 아옹다옹했다.

고래와 거리가 80미터 남짓 되었을까. 몸길이 15미터 가량 하는 고래가 열 마리쯤 있었다. 우리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빈 바다에서 갑자기 검은 등이 수면위로 미끄러지듯 올라오더니 ‘푸우아~’하며 고래가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 공중에 분수처럼 하얗게 물이 뿜어 나오고 사방에 깊은 고래의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래는 다시 ‘후우욱~’하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북극을 항해하다 만난 혹등고래. 꼬리의 혹이 선명하게 보인다. 꼬리지느러미 끝이 거친 게 이 고래의 특징이다.>


지구상 가장 거대한 포유류의 긴 숨소리는 웅장했다. 육중했다. 광활했다. 깊고 넓었다. 세고 무거웠다. 방대하고 심대하고 웅대했다. 벽력같았다. 쉬운 말로 으리으리했다. 어마어마했다. 인간의 어떤 단어가 그 느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 앞에서 하나같이 말을 잃었다. 우리는 무방비 상태가 되어 침묵으로 감탄을 드러냈다. 얼마쯤 후에야 정신이 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서로 물었다.

-와우, 대단하지 않아?
-너 그 숨소리 들었어?
-어! 정말 어마어마했어!
-쿠우우우우어어어~. 숨소리가 어쩌면 그렇게 장관이지?
-정말 큰 놈 인가봐!

고래를 직접 본다는 것은 고래의 숨소리를 듣는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전율은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고래를 봤다’고 말하기보다 ‘고래의 깊은 숨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었다’고 말한다. 영하의 북극에도 생명의 장대한 숨소리가 있었다.


# 북극의 쓰레기 해변

시각 외의 감각이 주는 실감은 바다코끼리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스발바르 제도의 여러 해변을 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했다. 북극 일대 해변은 트롤어선이 내다버린 어구와 어망, 쓰레기로 오염되어 있었다. 코가 촘촘한 그물, 플라스틱 로프, 고무 완충제, 폐타이어, 선원들의 장갑과 헬멧, 플라스틱 세제통, 음식물 봉투, 물병, 페트병 등 갖가지 쓰레기가 모여 있었다. 그 장면은 쓰레기로 덮인 우리나라 서해안의 어느 해변과 다르지 않았다. 여기 북극의 바다 역시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해변으로 떠밀려간 트롤어선의 어구들. 북극 일대의 해안이 쓰레기로 뒤덮이고 있다.>


<모래밭에 깊이 박힌 어망을 그린피스 대원들이 보트로 끌어내고 있다.>


선원들과 활동가들이 해변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데 어디선가 ‘크엉크엉’하는 육중한 소리가 들렸다. 곡면을 돌아 작은 언덕 너머를 보니 바다코끼리들이 한데 모여 태양을 즐기고 있었다. 커다란 육체들은 서로 부대끼며 오후의 햇살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특유의 냄새와 함께 말이다. 바다코끼리의 비릿한 냄새. 그건 전날 들은 고래의 숨소리와는 다른 새로운 경험이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이 동물을 직접 보다니. 놀랍고 신비했다.
허나 감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동물들이 쓰레기가 떠밀려 온 해변에 있는 모습은 썩 유쾌한 장면은 아닐 것이다.





<쓰레기로 오염된 해변에 바다코끼리들이 모여 있었다.>


여기 북극 바다는 트롤어업이 성행하고 있다. 노르웨이 해양환경부(우리나라의 해양수산부)의 홈페이지에 가면 현재 허가받은 트롤어선의 현황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북극에 있는 동안에도 매일 서른 척 정도가 주변에서 어업하고 있었다. 어선들은 주로 러시아, 영국, 스페인, 노르웨이 국적이었다.

트롤 어선들은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어망을 쇠줄에 매달아 해저에 늘어뜨린다. 배로 쇠줄을 끌면 어망이 해저를 긁으며 따라오는데, 한번 어망을 내리면 수십 킬로미터를 긁고 다닌다. 당연히 해저 생태계가 견뎌낼 수 없다.
이를 막기 위해 그린피스는 지난 6월 20일 스페인 테네리페(Tenerife)에서 열린 오스파 위원회(OSPAR commission)에 북극을 특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무분별한 어업과 오일시추를 금하는 새 법안을 제청했다. 하지만 이 안은 끝내 부결되었다.

어업이 다른 산업과 다른 점은 고갈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돼지나 소를 기르는 사람은 가축을 전부 도축하지 않는다. 정부와 시장이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있기에 그럴 수가 없다. 너무 많이 도축하면 어느 날엔가 남은 가축 수가 적은 걸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시장의 손이 작용해 값이 오르거나 정부가 통제할 것이다.

어업은 환경이 다르다. 아무도 바다 상황을 알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물고기의 개체를 늘릴 수 없다. 게다가 바다에 주인이 없으니 너도나도 어획량을 늘리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다. 시장보다 정부의 간섭이 필요한 까닭이다.

생선은 분명 맛있다. 몸에 좋다. 사람들에게 생선을 공급하기 위해 어업은 필요하다. 그러나 트롤어업은 그 반대다. 트롤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트롤을 하면 할수록 바다의 미래는 어두워진다. 그린피스가 꼽은 <트롤이 나쁜 이유>는 이렇다.



< 트롤어선의 어업현장>


먼저 남획(濫獲)과 오획(誤獲)이다. 매년 수백만 톤의 해양생물들이 트롤어선의 어망에 마구잡이로 걸려들고 있다. 트롤은 원치 않은 물고기들마저 잡아들인다. 트롤어선이 잡아들인 해양생물은 절반 이상이 시장성이 없어 내다버린다. 새우조업의 경우가 최악이다. 새우는 코가 작은 그물로 잡는데, 이 때 작은 물고기나 치어가 같이 잡힌다. 새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다른 물고기 10마리가 오획 된다.

해저파괴 문제도 심각하다. 트롤은 쟁기처럼 무거운 어구를 바닥에 놓고 배에서 쇠줄로 끌고 가는 방식이다. 심해의 차가운 바다에는 수천 년간 자란 산호초가 있다. 어망이 지나는 곳은 산호지대도 포함된다. 대양의 해저는 안정된 온도와 해류 등이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해면동물과 바다조름, 산호 같은 해양생물들은 한번 파괴되면 복구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수만 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온 해양생태계는 최근 몇 십 년 사이 급격히 파괴되고 있다. 트롤은 지구의 긴 시간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그 거만하고 통제되지 않은 손길이 여기 북극에까지 미치고 있다.




<수중 로봇 카메라. 프로펠러와 조명, 카메라가 달려있다. 수심 1천 미터까지 내려갈 수 있다.>


<그린피스 연구원이 수중 로봇 카메라를 작동해 해저 생태계를 관찰하고 있다.>


내가 승선한 아틱 썬라이즈 호는 북극 일대를 항해하며 트롤어업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어선이 지나간 곳을 기록했다가 해저에 수중 카메라를 내려 생태계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조사하기도 했다. 또 해변으로 떠밀려간 트롤어선의 어구들을 청소했다.

그린피스는 시민들이 모여 운영하는 비정부 민간단체다. 힘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이것뿐이다. 이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이것이 작은 변화의 시작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명히 보여주는 것, 그리고 이야기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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