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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무구(無垢)한 믿음의 힘

(10) 다시 태어나도 우리 / 문창용 감독

17-12-04 10:12ㅣ 송수연 (songsooy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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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수연의 영화 읽기’는 남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송수연 평론가의 협약하에 <인천in>에 개봉영화를 리뷰하는 기획입니다. 매월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예술적 가치 및 의미를 되새기며, 특히 영화와 아동청소년 문학의 접점을 독자와 함께 읽고자 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 (문창용 감독, 2017)는 인도 라다크에 사는 9살 앙뚜와 노승 우르갼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처음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앙뚜는 라다크 전통의술을 펼치는 의사이자 스님인 우르갼의 동자승이었다. 그런데 말도 잘 못하던 어린 아이가 입을 떼고 말을 하면서 상황이 역전된다. 앙뚜가 티베트 캄 사원의 고승이었던 자신의 전생을 기억해낸 것이다. 이후 앙뚜가 ‘린포체’,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으면서 우르갼은 앙뚜를 보필하는 자가 된다.


만약 여기까지였다면, 혹은 앙뚜가 순탄하게 린포체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는데 그쳤다면, 영화는 범상한 우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종교의 위대함을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그저 그런 종교영화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앙뚜가 라다크 사원에서 추방되면서 영화는 통상적인 종교영화와 다른 길을 걷는다. 린포체의 완성은 린포체가 전생에 몸담았던 사원의 제자들이 환생한 스승을 찾아와 본래 있었던 곳으로 모시고 가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앙뚜가 온전한 린포체가 되려면 캄 사원의 제자들이 찾아와 그를 모시고 티베트로 가야만 한다. 그러나 중국과 복잡하게 얽힌 티베트는 고립되어 들고나는 것이 불가능한 곳이다. 제자들이 찾아오지 않는 린포체는 결국 사원에서 쫓겨난다.

 




사원에서 쫓겨난 앙뚜는 우르갼과 함께 작고 초라한 암자에서 생활한다.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썰매를 타고 눈싸움도 하는 평범한 어린이로 살지만 때로 앙뚜는 불안하다. 전생의 기억이 점점 흐려지고 있고 이제 꿈에서도 티베트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조차 그를 ‘사기꾼’ 혹은 ‘먼지 구덩이에서 뒹구는 린포체’라고 부른다. 오직 스승 우르갼만이 시종일관 앙뚜를 온전한 린포체로 대한다. 우르갼은 앙뚜를 위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린포체를 보필하기 위해 그만둔 의사 노릇을 간혹 다시 하지만 진료 여행 이후 우르갼은 앓아눕는다. 앙뚜가 잊고 간 학교 준비물을 가져다주는 그의 호흡은 거칠고, 장작을 준비하다 힘에 부쳐 넘어질 만큼 그는 늙고 지쳤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앙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무구(無垢)한 사랑 그 자체이다.

 

간혹 눈으로 보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 우르갼의 눈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 눈빛은 어떻게 가능해지는 것일까. 우르갼의 종교나 그의 영성이 그런 눈을 가능하게 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종교에 대해서, 그러니까 불교나 린포체에 대해서 나는 할 말도, 할 수 있는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다. 나는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그것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 영화 역시 그러한 것들을 말하고 싶어 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그 모든 ‘위대함’을 그저 배경으로 만들어버리는 두 사람, 앙뚜와 우르갼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 특히 앙뚜를 바라보는 늙은 스승 우르갼의 눈빛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앙뚜의 눈이 순진무구(純眞無垢)라면 우르갼의 눈은 무구(無垢)이다. 한없이 맑은, 서로를 신뢰하는 두 사람의 눈이지만 차이는 분명하다. 아직 잘 모르는 눈빛과 그 모든 것을 아는 눈빛의 차이. 그러니까 이를테면 우르갼의 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앙뚜를 향한 연민과 사랑. 그것이 우르갼을 살게 했으니, 최소한 앙뚜는 우르갼에게는 완전한 린포체이다. 또 흔들리는 앙뚜를 린포체로 살게 한 것은 우르갼의 믿음이었으니 앙뚜에게도 우르갼은 린포체이다. “스승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에요.” “정말요? 그게 제 일이죠” 티베트를 향한 3000킬로 행군의 마지막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린포체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린포체’는 유명한 사원에 있는 고매한 특정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 둘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다른 한 사람의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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