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불신은 여전이 꼬리를 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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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불신은 여전이 꼬리를 물고
  • 송정로
  • 승인 2018.01.2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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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송정로 / 인천in 대표

<양승태 대법원장의 전원합의체>

 

지난 2016년 12월 탄핵 정국에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이 공개돼 큰 파문이 일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대목은 노골적인 사법부 장악 시도였다. 청와대 비서실이 사법부에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는 메모는 40여차례나 등장한다. 청와대가 3권분립이라는 국가의 근본을 마구 흔드는 일을 태연자약 수행한 것이다.

 

업무수첩에는 ‘비위법관 직무배제 방안(김동진 부장)’이라는 메모도 등장한다. 김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에 ‘국정원 댓글사건’ 재판(1심)에 피고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선거법 무죄판결을 받은 데 대해 비판의 글을 올렸는데, 그는 실제 업무수첩이 지시하는 대로 2개월 정직처분을 받았다. 업무수첩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선고 전에 재판 결과를 포함해 재판관들의 세부적인 논의 내용까지 미리 알고 있었던 사실도 드러낸다.

 

중대한 사건임에도 그간 체감해온 '사법 불신'이었는지, 국민들은 크게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청와대와 사법부간 불의하고 위험한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그 양태에 주목하며 많은 국민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사법 불신의 대표적 사례로 1992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의 확정판결을 내린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2015년 10월 재심에서 무죄 확정)을 들 수 있다. 1992년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김기춘이 2016년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1992년 청와대와 법무부가 사법부를 그냥 두었을까? 사법부는 독립성을 지켰을까?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원의 판결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다. 한 나라의 정의, 인권, 양심의 최후 보루다. 모든 공적, 사적 갈등의 종착지다. 모든 국민은 판결에 아무리 불만이 있거나 승복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를 거슬러 행동하여 무효화할 수 없다. 어찌 해볼 도리 없이 수용할 수 밖에 없으니, 판결은 그 국가와 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중심추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면 당연히 사회정의는 죽고 사회 불안과 갈등은 고조될 수 밖에 없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 엄격하게 규정한 입법, 사법, 행정 3권 분리의 대원칙도 그래서 유효하다. 모두 삼척동자도 알 만한 상식적인 내용이다. 단지 지켜지지 않을 경우가 종종 있었을 뿐이다.

 

대법원 판결은 말 그대로 최후의 보루여서 종종 국민적 관심을 모은다. 2017년 8월30일, 원세훈의 댓글사건에 대한 국가정보원법 위반 및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파기환송심(항소심)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은 국가정보원법 위반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모두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4년을 선고하면서 원세훈을 법정구속했다.

 

주목할 것은 ‘파기환송심’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7월 2심의 증거능력 인정부분에 위법이 있다고 하면서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며 원세훈을 보석으로 풀어주었다. 원세훈 등의 무도한 국가적 범행이 법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기막힌 위기였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사유는 정당한 것일까?

대법원에서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넘어온 파기환송심이 다시 뒤집어 수 있을까, 설왕설래했다. 그러나 파기 환송된지 2년만에 열린 환송심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판결의 기속력에 따라 지목한 증거능력은 인정하지 않았으나 별도의 찬반클릭, 게시글, 댓글 등을 증거능력으로 인정했다. 대법원의 권위는 추락했다. 그런데 국정원은 당시 어떠한 집단이었나? 공문서를 위조해 서울시 공무원도 간첩으로 몰아간 집단이다. 그 ‘유오성 간첩조작 사건’이 법원 판결로 드러나 국정원 직원들에게 유죄 선고한 것이 2014년 10월의 일이다. 국정원 댓글사건은 더욱 엄정했어야 했다. 그게 상식이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던 박근혜 정권 시기였다고? 
이에 앞선 1심 선고도 한심했다. 공직선거법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국가정보원법위반에 대해서는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이 특정후보나 정당을 비방하는 사이버활동을 조직적으로 벌여왔는데, 국정원법을 위반한 것이기는 하지만, 선거운동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은 상식적이지 않다.






지난 22일 양승태 대법원장 때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의 요구로 원세훈의 2심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해 청와대에 알려주려 한 정황 등이 담긴 문건이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로 공개됐다. 또 그 문건에는 2심 판결 뒤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이 '사법부에 대한 큰 불만을 표시하며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줄 것을 희망'했다고 나와있다. 그 자체로 3권분립의 틀, 사법부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지키는 국가의 기본틀을 허무는 중대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대법관 13명 명의의 입장문을 내어 '외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언론 보도에 대해 우려와 유감을 표시했다. 대법관 13명중 6명은 이미 퇴임한 재판관의 후임이어서 당시 재판에 관여도 안했는데 어찌 전모를 알고 '대법관 전체'에 이름을 올렸을까? 법원행정처와 청와대와의 ‘매우 불의’한 사태가 전 국민에게 알려져 또 다시 허탈해하고 있는데, 최고위 법관들이 왜 반성은 없는 것일까?
그런데, 원세훈 재판에 과연 외부의 영향이 절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번 추가조사에서도 확인하지 못한 760여개의 암호 파일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 등에 대해 조사도 못하는 것이 타당할까? 사법 불신은 지금도 여전이 길게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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