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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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사생활
  • 장현정
  • 승인 2018.02.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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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아이를 '존중하는 것'의 의미
 

<인천in>은 지난 2016년 6월부터 '공감미술치료센터' 은옥주 소장과 미술치료의 길을 함께 걷고있는 딸(장현정), 아들(장재영)과 [미술치료사 가족의 세상살이]를 격주 연재합니다. 은옥주 소장은 지난 2000년 남동구 구월동에 ‘미술심리연구소’를 개소하면서 불모지였던 미술치료에 투신, 새 길을 개척해왔습니다. 현재는 송도국제도시에 '공감미술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어린이집 친구들이 놀러왔다. 네 살짜리 꼬마 네 명이서 왁자지껄 시끌벅적 놀다가 어느 순간 자기들끼리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나온다. 엄마들이 뭐하나 들여다보려고 해도 나가라고 몰아낸다. 낯가림이 심하고 엄마아빠랑 딱 붙어있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아들에게서는 낯선 모습이었다. 내 아이가 크고 있구나. 머지않아 방문을 굳게 닫고 방문에 ‘노크’라고 적힌 메모지를 써 붙이며 비밀일기를 쓰겠구나.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내가 모르는 모습이 점점 많아 지겠구나’하고 생각하니 괜시리 아쉽고 섭섭했다.
 
가끔 생각한다. 아이가 커서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직업을 갖겠다고 하면 어쩌나. 아이의 비밀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면, 내가 지금 만나는 내담자들의 어려움이 내 아이의 문제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많은 부모님들이 고민과 어려움으로 심리치료센터의 문을 두드린다. 때때로 아이의 생각을 되돌리기를 원해서 어떻게든 설득해달라고 오시는 경우도, 상할 대로 상한 부모-자녀 관계를 어떻게든 회복하고자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면 아이를 자신의 일부이거나 마치 소유한 것처럼 생각하는 부모님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같은 부모로서 그 마음은 정말 백번 공감하지만 과도함이 아이에게 큰 족쇄가 되고 짐이 되는 모습을 본다. 아이를 위한다고 하는 부모님들의 행동이 때때로는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아이의 결정, 이성관계, 태도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어떻게든 아이를 길들이려고 좋아하는 것을 빼앗거나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며 복수심을 키우는 경우도 자주 본다.
 
많은 부모님들이 “나중에 더 크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마”라고 말한다. “어른이 되면 네 마음대로 하거라”라는 말도 참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아이에게 작은 선택도 허용하지 않는 부모가 큰 결정을 앞두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둘 수 있을까? 부모들이 원하는 것, 그들의 욕구에 맞는 결정과 선택만이 존중받을 수 있다면 아이들이 자신 있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러한 케이스들을 살펴보다보면 내 아이가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고 이를 곱씹는다. 자신이나 누군가를 위험하게 하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자녀들을 존중해야 한다. 도움을 주거나 조언을 줄 수 있겠지만 그 끝에도 아이의 판단을 믿어야 할 때가 있다.
 
상담자인 나에게 “대체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부모님께 다시 질문을 해보게 된다. “아이는 뭐라고 하는데요? 아이와는 이야기 해보셨어요?” 그런데 이외로 아이와는 대화를 나누어 보지도 않고 혼자서 만리장성을 쌓다가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더 큰 갈등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음에 놀라기도 한다. 한번이라도 진솔하게 대화하는 것, 그것이 어려운 것이다. 부모로서 내가 아이를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고 쥐락펴락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너무나 강력해서 말이다. 아이의 일기장을 몰래 살펴보고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고군분투할 시간에 한 마디라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기 어렵다. 부모님들 대부분은 바쁜 삶에 치여 제대로 자신을 성찰하고 되돌아볼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들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도록 비추고 조언하는 것은 아동들과 청소년들을 만나는 심리치료사로 매우 중요한 직무이다. 진솔한 조언을 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신뢰를 쌓아올리고, 그들을 제대로 비춰주기 위해 내 모습을 먼저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 또한 중요한 직무이다. 그 덕분에 나는 내 아이의 사생활과 그 아이 자체를 존중하는 것의 의미를 깨닫고 순간순간 노력하게 된다.
 
내 아이는 자신을 주황색과 파란색을 좋아하고 딸기와 파인애플을 즐겨 먹으며 놀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다. 아침마다 체크남방과 청바지를 챙겨 입고 그날의 신발을 골라 신으며 등원 길에 킥보드를 타고 갈지 걸어서 갈지를 스스로 결정한다. 이때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하고 그 결정을 지지해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가끔 합리적이지 않은 것을 선택하더라도 미리 겁을 주기보다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고 싶다. 참 어렵지만 말이다.
 
아이가 내 또래의 어른이라고 생각해 보자. 어른을 대하듯, 그저 한 명의 어른을 대하듯 내 아이를 생각해 보면 한결 의미를 깨닫게 된다.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도 더 명료해질 것이다. 호기심 많은 나를 닮았고 숫자를 좋아하는 내 남편을 닮았지만 다른 생각과 경험과 취향을 갖고 성장하고 있는 내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내가 모르는 너의 부분들도 모두 사랑한다. 그냥 너답게 고유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 상담팀장


 

사진 : 지나가는 기차를 구경하는 너와 30분째 기다리는 나(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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