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림동엔 소나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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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동엔 소나무가 없다
  • 양진채
  • 승인 2018.05.25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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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단편소설 <부처산 똥8번지> /조혁신

<송림동 @김성환>


조혁신 소설가의 단편소설 <부처산 똥8번지>를 읽으며 이번 주 연재 제목을 생각했다. <송림동엔 소나무가 없다>, <송림동엔 소나무가 있다>. ‘없다’와 ‘있다’. 별 특별한 제목은 아니지만 제목 마지막을 무엇으로 할까 조금 망설였다. ‘없다’가 현실이라면 ‘있다’는 희망 같은 것일 수 있겠다. 결국에는 ‘없다’로 쓴다.
 
인천에 오래 산 사람들은 송림동이 어떤 동네인지 잘 안다. 특히 송림동 산8번지에는 한국전쟁 때 황해도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언덕 중턱에서부터 꼭대기까지 가건물의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면 북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집은 몸만 누일 수 있는 공간이면 되었다. 또 그 이후에는 지방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공장 일자리가 많은 이곳으로 오게 되면서 송림동에 몰려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네 아버지가 처음 부처산에 들어왔을 땐데 사실 이곳은 딱히 땅임자가 없었거든. 솥단지 걸고 흙바닥에 이부자리 먼저 깐 놈이 임자였지. 근데 그래도 먼저 자릴 틀고 앉은 사람들에게 텃새란 게 있었어.(…)”
 
“(…)똥8번지 인간들이 가방 줄이 기냐 아니면 푼돈이라도 밑천이라고 가진 게 있냐. 그저 가죽만 남은 제 몸뚱이 하나에 주렁주렁 뒤웅박 매달 듯 애새끼만 내질렀지. 변변한 벌이도 없는 집구석들만 다닥다닥 처마를 맞대서 집집마다 서로 쌀 꾸러 가기도 어려웠어. 애새끼들은 제비새끼처럼 주둥이를 짝짝 벌리고 먹이 달라고 목소리를 쥐어짜지 사내들이라곤 대낮부터 막걸리나 깡소주에 취해 빈둥거리지. 그런 인간들이 동인천이나 송림시장 모퉁이에 나가 노점이라도 할라치면 건달들이 엉겨 붙었지.(…)”

 

똥8번지. 산 아랫동네는 모든 생활공간이 공동이었다. 식수와 분뇨처리가 가장 큰 문제였다. 물이야 집집마다 길어다 먹었다지만 분뇨는 소위 똥지게로 져 날라야 했는데, 제때 처리를 해 주지 않은 날이 많아 변소가 차고 넘쳐 똥냄새가 온 동네를 진동했다고 한다. 그래서 똥8번지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소설로 들어가 보자. 이 부처산 아래에 사는 어린 나는 우리 고장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아오고 그와 관련된 흔적이나 증거를 찾아오라는 학교숙제가 난감하다.

 
송림동 산8번지. 동네 어른들은 이곳을 부처산 8번지라 부른다. 푸지게 살찐 부처가 낮잠을 자듯 드러누운 산동네라 부처산이라 일컫는다.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을 때부터 공부와 출세와는 만리장성을 쌓은 동네 형들은 제 입맛대로 아망스런 허풍을 떨며 ‘똥번지’ 또는 ‘똥8번지’라 부른다.
어쨌든 동네 이름이야 그럴 듯하게 송림이지만 이 동네엔 소나무는커녕 썩어빠진 쇠말뚝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비록 가난뱅이들이 모여 사는 똥8번지 동네지만 그럴듯한 전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예컨대 요즘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처럼 과거 농장이 있던 자리라 ‘포도마
을’, 기름진 논이 있던 자리라 ‘당곡마을’, ‘라일락 마을‘, ‘신비 마을’처럼 말이다.



    
<송림동 @김성환>


송림동. 그러니 솔숲마을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갖고 싶지만 사람들은 여기를 모두 똥8번지라고 불렀다. 나는 찾고 싶었다. 울창한 소나무 군락은 아니더라도 소나무가 있어 이 동네가 송림동이 되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민둥산에 가깝고, 그 산에 온통 따개비가 붙은 것처럼 누덕이진 집뿐이니 어쩌랴.
결국 나와 친구, 동네의 태호 아저씨는 언덕 위의 하얀집 정원에 있는 소나무를 파서 개구멍으로 빠져 나오고, 축대 위 비탈면에 소나무를 옮겨 심는다. 나무의 고향이 원래 산동네였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송림동의 고달픈 삶은 비단 송림동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 당시의 생활풍습이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에 박제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지나왔고, 어디선가 아직도 그 길을 배회하는 사람들이 있다.


 
멀리 반대편 언덕 정상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바람을 타고 매캐한 냄새가 밀려들었다. 우리는 그 불길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안다. 불길이 치솟은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언덕의 집들은 허물어져 사라지곤 했으니까.

 
삶이 척박하니 교육이니, 문화니 하는 말들은 다 배부른 소리였다. 그러나 그런 삶 속에서도 의리가 있고 사랑이 있다. 소설은 송림동 똥8번지가 아니라 솔숲마을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가지고 싶었던 아이가 그 동네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겪는 여러 일화를 이야기 하고 있어, 삶이 소설에 그대로 녹아 있다.

 
대낮에 보면 그렇게 지저분하고 우스워 보이던 산동네의 슬레이트 지붕들이 놀이 지는 저녁에는 동화 속 나라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황혼은 천대받고 가난살이에 찌든 부처산 사람들의 치부를 낱낱이 숨겨주었다. 붉은 일몰은 깨진 장독과 냄새나는 변소간, 마구 자란 잡목 같은 텔레비전 안테나, 빨랫줄에 엉성하게 걸린 누더기들을 수채화 속 풍경으로 채색하는 것이었다.

 
노을이 산동네의 슬레이트 지붕을 가려주고 동화 속 나라처럼 아름답게 보여준다. 그 아름다운 동네를 꿈꾸는 아이에게는 ‘송림동에는 소나무가 있다’가 될 수 있을까. 노을이 만든 허상임을 알기에, 삶이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알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아이는 커서 지금은 무얼 하고 있을까. 훔친 소나무가 축대 옆에서 비스듬하게라도 자리를 잡았으면 좋으련만.



 
<송림동. 똥8번지에 있던 이 동네는 지금은 헐리고 없다. @유동현>


<송림동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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