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가입
  • 마이페이지
  • 로그인
  • RSS

인천in 메일링 서비스

메일링 신청
상단버튼

기획/칼럼


고조선의 변방, 강화에서 제천의식을 거행한 이유는?

(1) 정호일 <단군왕검>, 방영주 [우리들의 천국] - 이한수 / 인성여고 교사

18-07-17 06:46ㅣ 이한수 (hansu85@hanmail.net)
페이스북 트위터 이메일 인쇄 스크랩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바로 역사의 현장이다. 이를 알면 과거와의 소통, 공감이 훨신 잘 될 것이다.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청소년들이 감동적으로 우리 역사와 만날 수 있다. <인천in>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사실(fact)과 허구(fiction)가 잘 어우러진 소설과 영화를 통해 [팩션 인천사]를 연재하며 청소년과 시민들의 역사 인식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 황해 문명권의 배꼽 강화도 참성단
     - 정호일 <단군왕검>, 방영주 [우리들의 천국]


  강화도에 있는 ‘참성단’이 단군조선 때 세워진 유적이라는 역서 서술이 여럿 보이는데 정확히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는 아직 명확히 고증되지 않았다. 고려 말에 써진 [고려사]에 참성단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보이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단군왕검이 세 아들을 시켜 삼랑성(정족산성)을 쌓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근 학계에서 참성단이 고조선 초기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거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아직 정설로 자리잡지는 못하고 있다.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
 

  인하대 ‘군사고고학연구회’가 중국과 일본, 한국의 고대(古代) 산성들을 비교 연구하여 강화도 정족산성이 고조선 건국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한다. 단군조선이 건국되면서 강화도에 참성단을 만들었다고 보면 강화도 지역이 고조선의 건국과 관련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다고 봐야 한다. 단군조선이 건국된 지역이 어디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사학계의 논란거리이기는 하지만 단군조선이 백두산 부근에 도읍을 정했다면 강화도는 고조선 강역의 최남단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수도에서 먼 변방에서 제천의식을 거행한 이유가 무엇일까.

  강화도가 상고시대에는 황해를 둘러싼 해양문화권의 중심지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 지역은 고인돌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으로 특히 강화도에는 이 황해문화권의 중심지답게 고인돌이 가장 많이 분포해 있다. 고인돌은 해양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 고인돌에 별자리와 원양(遠洋) 해로가 암각화로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이 지역이 해양문화가 발달한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조선의 도읍지가 있었던 발해만 유역(랴오닝성)에서 필리핀이나 일본 오키나와 지역에서 자생하는 카우리 조개 화폐가 대량 출토되는 것을 보면 황해 연안에서 남방 해양문화와 북방 유목문화가 만나 교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황해 유역이 세계 어느 지역보다 문명 발생의 지정학적 요건을 잘 갖추고 있으며 발굴되고 있는 유물 유적들이 이런 추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역사 서술은 이런 실증사학 연구 성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우리 민족사의 왜곡 축소는 심한 것 같다. 단군조선과 배달국, 환국의 역사는 아예 지어낸 이야기 설화로 치부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다양한 상고사 연구 방법이 시도되면서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고학, 비교언어학, 천문학, 유전자학 등의 최신 연구 결과물들이 그동안 허구로 치부되었던 우리 민족 상고사가 역사적 사실임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바이칼호 알혼섬 ‘부르한’ 바위 무당 풍습
 

  단군조선을 건설한 예(濊)족과 맥(貊)족이 어느 민족을 말하는지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고조선 건국설화로 전승된 ‘곰족’과 바이칼호 주변에 살고 있는 브리야트족이 동일하게 ‘곰족’이라 불리는 점과 ‘범족’의 토템 호랑이가 페르시아어로 ‘맥’이라고 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중앙아시아 천산(카자흐스탄 톈산)에서 발원한 유목민족에서 한민족이 갈라져 나왔다는  역사 기록을 단순 허구라고 하기 어렵다. 바이칼호 브리야트족의 풍속이 우리 민족 풍속과 닮은 점이 너무 많고 특히 바이칼호 알혼섬에는 심청전과 너무 흡사한 인당수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등 여러 문화유산이 [조선상고사] 역사 서술과 일치한다. 중앙아시아와 만주, 한반도에서 발굴된 적석총 유적들도 이런 문화적 일체감을 역사적 사실로 입증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안드로노보 문화 적석총 

중국 길림성 적석총 장군총

서울 석촌동 적석총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가면 거리에서 ‘단군’, ‘졸본’, ‘구려’와 같은 간판을 흔히 볼 수 있고, 터키 등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한민족 문화유산을 공유하고 있는 것에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우리 민족 문화가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널리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한반도 북방 광활한 지대에 살았던 여러 종족이 대부분 조선족 부여족의 일파이며 가깝게는 중국 대륙 동해안 지역과 일본 열도, 멀게는 몽골 터키 지역까지 우리 민족의 상고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단군조선 역사는 대부분 [삼국유사]에 근거한 서술이다. 그래서 삼국시대 역사는 왕조 계보까지 익숙할 정도로 자세하게 배우지만 단군조선 역사는 신화로 배울 뿐 왕조 계보는 대부분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고구려 왕으로 유리왕, 광개토왕, 장수왕 등은 많이 들어봤지만 단군조선의 왕으로 초대 단군왕검만 들어봤지 가륵, 구을, 달문, 아술, 노을 등 47대까지 단군 중 들어본 이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단군조선 이전의 배달국, 환국의 역사까지 자세하게 서술한 역사서도 있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 상고사는 꾸며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라면 이 유구한 역사가 어떤 연유로 다 잊히고 말았는가.

  기원전 7199년에 환국이 세워졌고 47대에 걸쳐 2096년 동안 단군이라 불렸던 왕이 조선을 다스렸다고 수치까지 명확하게 기록한 [환단고기]라는 역사책이 있는데 이 책은 위서(僞書)로 취급받아 우리 역사 교과서에 인용이 되지 않고 있다. [환단고기] 서술의 문헌 자료가 되는 [삼성기], [단군세기] 등은 고려말 공민왕 때 여진의 침략에 맞서 싸우며 조정을 이끈 행촌 이암 선생에 의해 집대성되고 그 분의 후손들이 목숨을 걸고 보존한 책이라고 한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 상고사 역사책이 조선시대에 들어 왕조가 친명 사대주의에 빠지면서 불온서적으로 몰수를 당해 불태워지고 말았다고 한다. 수난은 계속되었다. 조선말에 나라가 망하고 일제는 우리 역사를 축소 왜곡시키기 위해 역사서를 대거 강탈해 갔다. 신채호 선생은 이런 현실을 애통해 하면서 [조선상고사]로 집필하셨다. 

 우리 민족 유구한 역사가 허구적인 이야기 신화(神話)로 치부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이웃 나라 역사 기록과 세계적인 상고사 석학들의 연구 결과물이 [환단고기], [조선상고사]의 역사 서술과 일치한다는 것이 차차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 역사 교육에는 반영되고 있지 않다. 우리 상고사 교육에 좀 더 큰 변화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서술된 역사소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우리 상고사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기를 바란다.  

  정호일의 단편소설 <단군왕검>은 신화로만 배웠던 단군조선을 여러 사료를 종합하여 역사적 사실로 재구성해 내었고, 대중적인 형식과 문체로 서술되어 청소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나반’과 ‘아만’의 후손들이 번성하면서 인간계는 욕심으로 혼탁해지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으면서(오미의 변) 마고성에서 쫓겨나는 이야기는 아담과 이브, 선악과 설화와 너무 닮아 인류 문명의 기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농경문명를 발전시킨 천신족이 유목민족인 곰족, 범족을 교화시켜 국가 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으며 천부인(칼, 거울, 방울)은 청동기 문명을, 홍수 피해를 극복하도록 도운 ‘하백녀’는 농경 치수(治水) 문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인류문명사의 보편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단군왕검은 새로운 인간세상 개척의 뜻이 영원히 이어지도록 천지인 일체를 천명하고, 하늘(환웅)과 땅(웅녀)의 결합으로 단군(천지인 일체)이 그 계통을 이어받고 있음을 명확히 한다. 그러면서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만나는 자리 강화도 마리산에 참성단을 세우는 것으로 그려, 북방 유목문명과 남방 해양문명이 만나는 자리로서 강화도의 지정학적 의미를 환기시키고 있다.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의 유래를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는 방영주의 장편소설 [우리들의 천국]을 꼽을 수 있다. 단군왕검 재위 50년, 서기전 2284년에 홍수로 큰 피해를 입고 수해 대책을 세우면서 지신(地神)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천단을 짓기로 하는데 지신(地神)을 모시는 곳으로 백두산의 정기가 솟아나는 강화도 마리산을 지목하는 대목이다. 


  단군왕검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땅은 하늘과 반대로 양을 좋아해요. 그렇다면 태양의 기를 모두 끌어들일 수 있는, 물 가운데 우뚝 솟은 산의 정상이 좋을 터이오. 짐이 사해(四海)를 순방할 때 눈여겨봐 둔 곳이 있소. 혈구(穴口;강화도)의 마리산(摩璃山)이오. 마리산은 마치 한밝산의 한 줄기가 바다 속으로 잦아들다, 서해의 물길을 헤치고, 한반도의 배꼽께에 불쑥 솟아오른 형상이 아니오."
  "폐하, 하오면 마리산이 좋겠사옵니다."
  "경은 성조의 도움을 받아 혈구 정족산에 삼랑성(三郞城)을 짓도록 하오. 또한 마리산 정상에는 석재를 이용하여 네모(□), 원(○), 삼각(△) 형태의 단을 만들도록 하오. 짐은 그를 참성단(塹城壇)이라 이름할 것이오."
  "알겠사옵니다."

  성조는, 한강 이남에 살고 있는 장정 800명을 동원하여, 삼랑성을 건축하고 참성단을 완성하였다. 제를 지낼 모든 준비가 끝나자, 단군왕검은 몸소 백관을 인솔하여 정족산 삼랑성을 거쳐,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지신을 위로하고 이제 더 큰 홍수가 없기를 기원했다. 그때부터, 조선국 도읍지 아사달과 한반도에는 홍수로 인한 피해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다.
- 방영주의 장편소설 [우리들의 천국] 중에서 -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 평야와 갯벌은 인간이 집단 정착 생활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었다. 하류의 평야지대는 땅이 비옥하여 농업 생산성이 높고 소금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갯벌에서 채취할 수 있는 어패류도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페르시아만의 수메르 지역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유적이 발견된 것도 문명 갯벌 발생설에 부합된다. 수메르 지역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드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황해 유역은 수메르 지역보다 문명 발생의 조건을 더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두 강이 바다와 만나지만 황해 유역에는 한반도의 압록강, 한강, 만주의 요하, 난하, 중국대륙의 황하, 양자강 등이 모여들어 만나는 광대한 하구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때에는 황해 유역 전체가 엄청난 규모의 넓은 갯벌이 형성된 곳이었을 것이다. 유라시아 중위도지역에 걸쳐 있는 스텝지역과 가까우며 세계에서 가장 넓은 갯벌이 형성된 황해에서 가장 먼저 문명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황해 해저 유적지 발굴이 머지않을 것이라고 본다. 




 



목록보기
이 기자의 다른 뉴스보기
이전 페이지로 가기 맨위로

인천민주평화인권센터선학종합사회복지관강화뉴스중구자원봉사센터i신포니에타연수종합사회복지관인천교통방송(주)미추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