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여성혐오!... <성희롱징계대책> 준비모임?
상태바
문학작품? 여성혐오!... <성희롱징계대책> 준비모임?
  • 신하영옥
  • 승인 2018.07.23 07:26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신하영옥/ 인천여성의전화 이사



인천 한 교사의 성희롱적인 태도와 발언이 학생 및 부모들의 항의로 해당학급의 해당수업배제라는 조치를 받았고, 교사는 여기저기 억울함을 호소하며 이를 동정하는 지인들 및 언론 등으로 인해 학생들은 ‘생각 없는 어린애들’, ‘페미충’ 등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인천의 일부지역인사들이 <성희롱 징계대책 준비모임>을 구성했다고 한다. 다음은 교사에 동정적인 온라인 글들이다.
 
“......구지가가 성희롱이면 처용가는 야설이고 처용무는 19금 공연 ...... 구지가, 처용가, 춘향전은 물론 남여상열지사가 포함된 고전은 배우지 않아도......”
“처음 문제를 제기한 학생과 학부모는 100번 양보하여 철이 없고 몰라서 ......”
“세상이 탄성을 잃고 극단으로 흐르고 있다. 수십 년 메카시즘의 광풍......”
 
이 사건은 ‘문학작품’ 해석과정에서 ‘성’적 용어가 나왔고, 이를 철부지 어린애들이 작품의 의도와 맥락이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메카시즘’에 경도된 자신들의 기분에 치우쳐 경솔하게 성희롱 교사로 매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위의 글들 어디서도 사건 ‘분석’은 없다. 자신의 위치 – 성인, 남성, 지식인, 진보주의자 - 에서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가르치’려 한다. ‘문학작품’이 ‘여성혐오’적 성격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이 사건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대책위구성은 이 사회가, 특히 지식사회가 강력한 여성혐오를 토대로 한다는 점에 대한 성찰의 부족이 만든 ‘참사’이다.
 
‘문학작품’은 ‘무오류’, ‘정당함’, 그리고 ‘성 중립적’인가? 1970년, 케이트 밀렛은 ‘성 정치학’이라는 저작에서 1960년대 자칫 성 혁명에 앞장섰다는 소설가들인 D.H 로렌스, 노만 메일러, 헨리 밀러, 장 주네 등의 소설들의 성교표현 방식을 분석하여, 이성애 남자 중심의 삽입섹스에 충실한 이 소설가들이 ‘섹스에서 가부장제의 문화적 대리인’ 이자 ‘반혁명적 성의 정치꾼’으로 결론 내렸다. 성 혁명은 당시 좌파에서 유행하는 히피, 아방가르드 문화의 핵심이었고 성의 자유는 여성의 해방과 동의어처럼 주장되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혁명은 여성의 성을 ‘개인적 착취’에서 ‘공동의 착취’로 바꾸고 남성의 성적 요구에 항시 응하라는 압력, 착취와 폭력일 뿐이었다. 이렇게 좌파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이용한 것에 격분한 미국 여성운동은 좌파에서 분리해 나옴으로써 성장하게 된다. 현재 한국의 분리주의적 여성운동을 볼 때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성’ 은 자체로 권력을 반영하고 성을 다룬 ‘문학작품’은 당연히 그 권력관계에 기반 한다. 이 관계는 남성지배, 여성종속의 배열을 이루어지며 때문에 여성을 묘사한 남성작가의 시선은 ‘인간여성’이 아닌 ‘성기로서의 여성’에게 멈춰 있다. 지난 ‘미투’운동 중, 작가 김훈의 ‘여성을 어떻게 인간으로 묘사할지 모르겠다.’는 류의 발언은 이를 증명한다. 구지가의 거북머리가 ‘들고 나는’ 방식은 ‘삽입’섹스를 정면으로 묘사하며, 삽입섹스에서 여성은 ‘삽입 당하는’ 수동적 대상으로만 묘사되기에 여성혐오가 된다. ‘남녀상열지사’를 다룬 ‘문학작품’이 위대한 것은 남성들의 관점이다. 남성연대인 ‘가부장제’는 남성의 관점을 마치 ‘가치중립적’이거나 ‘성 중립적’인 것처럼 ‘문학’, ‘작품’이라 명명하고 공공재인 ‘교과서’를 통해 유포함으로써 마치 ‘객관’인 것처럼 포장해 여성들에게 주입해왔고 그 결과 여성들은 ‘내면의 식민화’-가부장제의 내면화-를 겪었다. 모든 지식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그 가치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가치이다. 두 성별사이에서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
 
학생들의 인터뷰를 분석하면 해당교사는 명백한 성희롱 가해자임에도 ‘교권’ 운운하며 물타기 및 피해자성을 연출하고 있다. 과연 교권주장은 정당한가? ‘인권’은 국가=책임의 주체, 국민=권리의 주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다. 학생 대 교사, 주민 대 공무원 및 경찰, 재소자 대 교도관 이라는 인권의 대립구도는 틀렸다. 후자집단은 곧 국가/기구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육의 권리는 학습할 권리와 가르칠 권리 둘 다를 포함하고, 이 둘은 권리의 주체인 학생들에게 더 많이 의존해야 한다. 교사의 일방적, 지시적인 태도는 권력자의 태도로서 교권 운운은 권리를 권력의 행사와 혼동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천의 자칭 진보라는 지역인사들은 ‘교권침해당한 자’라는 코스프레를 ‘분석’없이 ‘진짜’라고 ‘해석’함으로써 대책위구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세상은 고민하고 성찰하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전진한다. 안타깝지만 고민하는 이들은 피억압집단들이고 여성들이 여기에 속한다. 지금 여성들은 내면의 식민화가 남성을 위한 남성에 의한 남성의 여성억압의 핵심이고, 여성의 경험과 역사가 반영된 해방된 영토가 필요하다는 각성과 분노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해방은 식민역사를 청산할 때 가능하다. 일제잔재의 미 청산이 남긴 질곡이 그 증거다. 여성운동이 메카시즘처럼 보이는 것은 남성 식민지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노력 –남성중심의 가치 및 문화와의 결별- 때문이다. 정치란 권력으로 구조화된 관계, 즉 일군의 사람들이 다른 집단에게 지배받는 형태의 배치(밀렛)라고 할 때 가부장제는 남성 집단이 여성 집단을 지배하는 정치이다. 여성들이 남성들과의 경험이 불쾌함을 넘어 범죄행위였다고 말하는 것은 ‘성 지배관계’를 ‘성 평등’한 관계로 만들려는 민주주의적 실천이다. 여기에 무릇 진보라 자처하는 집단이 가해자를 위한 대책위를 꾸린다는 것은 지배 권력을 잃지 않겠다는 무의식적 저항이다. 진보란 무소불위의 가치도, 무오류적 존재도, 천부적 정당성도 아니다. 자신을 진보라 칭하려면 ‘진보’가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부터 해야할 것이다. 남성노동운동과 남성민주화운동이 사회운동의 전부가 아니며 남성노동자와 남성민주시민이 사회구성원의 전부가 아니다. 여성운동은 “여성이 해방되더라도 다른 피억압자들이 곁에 있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른 사회운동과 그 구성원들은 이 말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교사 성희롱징계대책 준비모임은 역사의 어디쯤에 발 딛고 서 있는지 성찰하길 바라며 대책위 구성 또한 전면 백지화할 것을 요구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분서갱유 2018-07-24 10:06:10
과거의 책들을 교과서에서 다룰 수 없다면 이에 대한 지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게 먼저 선행되어야 교사가 피해보는 일이 없겠죠. 그런 의도로 쓰여진 것을 그런 의도로 쓰여졌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아니라면 아예 교과서에서 이러한 작품들을 빼던가 아니면 동성애의 성애에 대한 표현과 양성애자의 성애 등을 같은 비율로 다루든가 기준이 있어야 하겠지요. 학생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것은 당연히 성희롱에 해당된다고 보여지고 여기에서 가해자는 교사가 아니라 국가여야 한다고 봅니다. 교과서를 만들고 검정한 주체가 국가이기에 가해자는 국가가 되어야지 그러한 내용을 다룬 책을 그대로 해석한 사람이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조심스럽지만 교사의 평소 언행이나 행태가 성희롱범의 범주에 들어있다면 그와 연장된 선에서 교과서의 해석이 분명한 성희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정하게 2018-07-23 13:10:25
교육청과 국가인권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는 해당교사입니다.
공정하고 올바른 판결을 촉구하고 지켜봐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도 충분히 경청해야 겠지요.
그러나 가해자로 판정하는 권한이 학생은 물론이고 신하영옥님에게는 없습니다.
학생이 억울할지 교사가 억울할지 충분히 신중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해당교사의 소명을 듣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징계를 결정한 것이 부당하다는 겁니다.
당신은 어디에 발을 딛고 있습니까?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