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높고 쓸쓸한’ 천재 시인,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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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높고 쓸쓸한’ 천재 시인, 백석
  • 최일화
  • 승인 2018.08.10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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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수라 / 백석



 
수라(修羅)

                                                        백석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수라(修羅):싸움을 일삼는 귀신
*어니젠가:'언젠가'의 함경도 방언
*싹기도:‘흥분이 가라앉기도’ 함경도 방언
*가제:'갓' '방금'의 평안 방언

 
<감상>


이 시는 거미새끼 한 마리가 방으로 들어온 것을 바깥으로 쓸어내고 나니 다시 어미 거미가 들어온 것을 다시 새끼에게로 가라며 문밖으로 버리며 가슴이 짜릿하고 서러운 마음인데 이번엔 아주 작은 갓 좁쌀알만한 알에서 깨인 듯한 작은 새끼거미가 또 어미가 있던 곳에서 아물거려 손에라도 오르라고 손을 내어보다가 보드라운 종이에 받아 문밖에 버리며 엄마, 누나, 형이 가까이 걱정을 하고 있다가 만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전부다.
 
이 시에서 가족애의 소중함이라든가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시를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시인의 섬세한 감성이며 작은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는 예리한 시선이며 그것을 시 형식으로 옮기는 개성적인 표현의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수라(修羅)는 싸움을 일삼는 귀신이란 뜻으로 불교 용어인 아수라(阿修羅)에서 온 말이다. 아수라는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싸움을 일삼는 나쁜 귀신이란 뜻으로 불교 용어다. 아마 거미의 네 쌍 여덟 개의 다리와 험상궂은 외관을 보고 제목으로 붙여진 것 같다. 또 거미는 대체로 거미줄을 뽑는 신기한 재주를 가진 동물로, 또 음험하고 무서운 동물로 민담에서 전해져 오는 데서 이런 제목이 붙여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험상궂은 모습의 나쁜 귀신에게도 자식을 생각하는 애틋한 어미의 마음이 있고 형제자매간 서로 걱정하는 우애의 마음이 있다는 점을 부각하여 가족애에 대한 시적인 효과를 높이려는 듯 보인다. 이러한 거미 가족들의 애틋한 마음을 헤아리는 시인의 섬세함이 큰 울림으로 다가 오는데 이 한 편의 시로서도 시인의 산문적 문체와 연민과 사랑이 가득한 시 정신을 헤아릴 수 있다. 시는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어야 큰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시에 나타난 정서가 식민지 시대에 피어난 한민족의 보편적 정서라고 할 때 이 시의 가치는 더욱 빛나는 것이다.
 
백석은 일제시대에도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으나 일제 말기 외부적인 강제 요인에 의해서 작품 발표가 봉쇄되고 해방 후엔 남북 분단으로 인하여 백석이란 이름 자체가 문단에서 사라졌다. 오랫동안 백석은 한국 문단에서 잊혀진 이름이었다. 누구하나 그 이름을 떠올리지 않았고 그의 시는 도서관에서 서점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북으로 간 불온한 시인일 뿐이었다. 1988년 납북·입북·재북 작가 해금 조치에 따라 백석은 복귀하여 우리 곁으로 다시 왔다. 그의 시는 한결같이 서민적이며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이 한 편의 작품으로 어떻게 백석 시를 다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경이로운 천재 시인의 더 많은 작품을 독자들이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최일화 시인)

 

※ 백석(白石)(1912~1995): 본명은 백기행으로 평북 정주에서 출생했으며 오산중학과 일본 도쿄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졸업했다. 1935년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며 주목 받았으며 1936년 첫 시집 「사슴」을 발표하였다. <모닥불> <고향> <여우난골족> <팔원>등 토속적이고 향토색 짙은 서정시를 발표하였다.

최일화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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