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탱이 밤탱이 된 거 찍어 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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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탱이 밤탱이 된 거 찍어 모하게"
  • 김인자
  • 승인 2018.08.14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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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할머니 사진 찍어드리기


가만히 있어도 열이 펄펄 나는 뜨거운 날씨에 손님처럼 와서는 주인행세를 하며 철푸덕 눌러 앉은 몹쓸놈의 열.
이리 해보고 저리 해봐도 열이란 놈이 좀체로 떨어지지 않아 결국 병원 신세를 졌다. 병원에서 한가하게 누워있을 팔자가 못되는 처지라 열이 내리자마자 집에 가겠다고 성화를 대어 병원서 나와 서둘러 집에 가는 길.
저만치 앞에서 할머니 두 분이 걸어가신다. 그립고 보고픈건 젤 먼저 눈에 띄는가 보다. 멀리서 봐도 뒷모습만 봐도 금새 누군지 알아챌 수 있는 내가 사랑하는 할무니들, 양말할머니와 보라돌이할머니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걸어가고 계셨다.
보라돌이 할머니는 그래도 가끔이나마 아파트 단지 안에서 뵀었는데 양말할머니는 진짜 오랜만에 뵙는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다.그러다 양말할머니와 보라돌이할머니 가까이에 가서는 딱 멈춰섰다. 신호등에 걸린 자동차처럼. 갑자기 멈취서는 바람에 하마터면 앞으로 꼬꾸라질뻔 했다. 딱 멈춰 선 고 자리부터는 걸음은 조용조용 소리는 최대한 크게 '할머님들 뒤에서 누가 아는 체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할머님들 깜짝 놀라지들 마시고 누군지 얼릉 알아채셔여.' 하는 맘으로 기척을 내면서 할머니들 뒤를 따라 걸었다. 마음 같아서는 할머니들 몰래 다다다다 달려가서 할머니들 앞에 짠하고 나타나 깜짝 놀래켜드리고 싶지만 할머니들에게 그랬다가는 큰일이 난다. 기척도 없이 할머니들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깜짝 놀라게 해드리면 할머니들에게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다. 할머니들이 이제는 연로하셔서 인체의 모든 기관들이 기능이 다 떨어진터라 제 소임을 다하는 장기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이뻐졌어? 살이 점점 빠지누만. 누가 아가씨라고 해도 믿겄네"
위아래로 나를 쳐다보시며 양말할머니가 말씀하신다.
"그러게 저번에 봤을 때랑 또 다르네. 김선생 어디 아픈거 아니지? 조막만한 얼굴이 더 쪼끄매졌네."
보라돌이 할머니가 내 볼을 만지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씀하신다.
"아프긴요, 안 아파요 할머니. 걱정하지 마셔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보라돌이할머니 말씀에 양말할머니가 내 볼에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시며 말을 이어가신다.
"은제 이 더위가 가실래나? 이거야 원 밤에라도 시원해야 잠을 잘턴데 밤에도 바람 한 점 없으니 잠을 설쳐서 낮에도 정신을 못차리겠으니 살 수가 없다, 살 수가 없어."
"예, 할무니 너무 더우시죠."
"그나저나 우리 김선생은 우리 늙으이들헌테 은제부터 책을 읽어줄텐가?" 하는 양말할머니 말씀에 나는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들도 책 읽어주는 시간을 기다리셨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너무도 기뻤다.
"선선한 바람이 불면 바로 읽어드리께요, 할무니."
"그래, 근데 할무닌 아직 살아계시나?"
양말할머니가 문득 생각난 듯 물으신다.
"그 할무니요? 어떤 할머니요?"
"아 왜 그 있잖여. 백살까정 살아서 자손들과 다복하시던 냥반."
"아~~~왕할머니요?"
"그래 맞아. 김선생이 그 책 읽어주면서 울었잖여."
"아구야 울 선상님 우나?"
가수가 노래 부름서 울믄 될까요? 안 될까요?
책읽어주는 사람이 책을 읽으면서 울면 되까여? 안 되까여?

 
작년 이맘때쯤 그림책벤치에서 할머니들께 읽어드롔던 <왕할머니는 100살> 그림책.
100살 생일날 아침, 연분홍 저고리에 진빨강 치마를 입으신 왕할머니.
연분홍 저고리에 진빨강 치마? 이쁜가? 하는 내말에 "이뿌지 그럼. 연분홍에 진빨강으로 치마저고리 해 입으면 때깔이 아주 곱다. 나도 한 벌 가지고 있다." 하셨던 윙크할무니.
그날은 꽃할머니도 함께 해주셔서 넘 좋았는데. 그러고 보니 요즘은 꽃할머니를 뵐 수가 없다. 지금은 자주 못뵈지만 나는 꽃할머니를 아침에 자주 뵈었다. 심계옥엄니 사랑터 가시는 차를 태워드리고 집에 가려고 엘리베이터앞에 서 있으면 꽃할머니가 예쁘게 꽃단장을 하시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셨다. 향긋하게 풍겨오는 할무니 분냄새.
"할머니, 어디 가세요? 하고 여쭈면 어디 간다대신 항상 조~오기 하셨던 꽃할머니.
할머니들은 하루 하루가 눈에 띄게 모습이 달라지신다. 기력도 점점 없어지시고 기분도 다운되시고. 그래서 난 할머니들을 만나면 꼭 사진을 찍어드린다. 할머니들 한테는 지금 이 순간이 앞으로 맞이하는 그 어느 때보다 기운도 많으시고 젊은 날이시기 때문에 나는 내일보다 오늘 할머니들의 사진을 예쁘게 찍어드린다.
 

"할무니, 예쁘게 김치~하고 웃어보세요."
"왜? 또 사진 찍을라고?"
"예, 할무니 울할무니 한창 이뿌실때 사진 한 장 찍어 드리께요."
"나 사진 안찍는다. 쭈글쭈글 쭈구렁밤탱이 못나 빠진 얼굴 맨날 찍어 뭣하게."
꽃할머니는 처음 뵈었을 때도 유독 사진 찍는걸 싫어하셨다. 나하고 얘기를 재밌게 나누시다가도 사진 찍자는 얘기만 하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저짝으로 도망을 가셨다.
미장원에도 자주 가서 빠마도 하시고 슈퍼 가실 때나 은행가실 때도 늘 이뿌게 화장하고 예쁜 옷을 입고 나오셨던 꽃할머니. 그런 꽃할머니가 어느 순간 부터 화장도 안하시고 심지어 틀니도 빼놓고 나오셨다. 절대 흐트러진 모습으로 집 밖에 나오시는 할머니가 아니셔서 깜짝놀라 "할머니, 틀니 왜 빼놓으셨어요?" 하고 여쭈어 보면 어떤 날은 "구찮아서" 어떤 날은 "잇몸이 아파서." 그러더니 그 어떤 날에도 역시나 틀니를 안하고 맨입으로 나오셨기에 "할머니, 틀니 왜 안하셨어요?"하고 여쭈니
"안하긴, 나 했는데." 하셔서 걱정하고 있던 차에 꽃할머니가 요즘은 도통 안보이신다.

 
"할무니,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사진 한 장 박으까요?"
하고 내가 장난스레 말하니
"눈탱이 밤탱이 된 거 찍어 모하게. 됐다" 하시며 양말할머니가 저짝으로 황급히 걸어가신다.
"할무니, 눈탱이 밤팅이 되도 할무니 무지무지 이쁘세요. 할무니 사진 한 장 찍어요, 네? 할무니이."
"그래도 못들은 척 앞으로 휘휘 당신 가는 길 가시는 양말할머니. 그런데 한 참을 앞만 보고 걸어가시던 양말할머니가 뒤도 안 돌아보고 대뜸 이러시는거다.
"거 못나빠진 늙은 얼굴만 노상 박지말고 궁뎅이나 찍어라. 다리는 점점 젓가락처럼 가늘어지는데 이눔의 궁뎅이는 왜 천근만근 돌뗑이처럼 무거워지는 모르겠다. 먹는건 안 먹는거 못 먹는거 없이 죄다 먹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기운은 없어지니."
뒤도 안 돌아보고 약한 말씀하시며 걸어가시는 양말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 점점 멀어져가는 양말할머니에게 손나팔을 만들어 큰 소리로 외쳤다.
"할무니, 사진 예쁘게 찍게 김치 해보세요 김치~ 할무이 궁댕이 김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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