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렸다!’ 모세의 기적, 아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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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렸다!’ 모세의 기적, 아암도
  • 유동현
  • 승인 2018.09.1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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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아암도




낡은 고교 앨범은 추억 저장소이다. 까까머리와 단발머리를 한 그대가 있고 분식집 문턱을 함께 넘나들던 그리운 친구들도 있다. 3년간 발자욱을 남긴 모교의 운동장과 교실의 모습도 아련하다. 빛바랜 사진첩에는 ‘인천’도 있다. 교정에 머무르지 않고 과감히 교문을 나서서 사진사 앞에서 졸업앨범 포즈를 취했던 그대들 덕분에 그때의 인천을 ‘추억’할 수 있다.    

 

 

그냥 사람들은 ‘똥섬’이라고 불렀다. 하잘 것 없는 작은 섬, 아니면 한 덩어리 똥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일 것이다. 정말로 섬 안에 똥이 많아서 이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다. 섬 주변 갯벌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사람들이 급할 때 이 섬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전체 면적이 6,058㎡(1,832평)으로 웬만한 동네 공원에도 미치지 못한 작은 섬이었다.


아암도(兒岩島)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 한동안 ‘바다로 통하는 유일한 출구’였다. 바다를 갈망하던 인천 사람들의 숱한 사연과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1976년도 인성여고 앨범. 자태가 또렷한 섬, 이제는 송도국제도시로 여백이 없다.>


 
이 섬은 송도유원지를 통해야 건너 갈 수 있었다. 유원지 뒤쪽에 난 작은 문부터 아암도 까지는 400여m. 사람들은 물이 빠지길 기다렸다가 줄지어 섬으로 건너갔다. 아암도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은 마치 모세의 기적으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민족의 ‘엑소더스’와 같았다.  


유원지 측에서는 아예 걸어가기 편하게 돌을 깔고 시멘트를 부었다. 낙조가 장관이어서 해질 무렵 아암도를 찾아 데이트를 즐기는 아베크족도 많았다. 송도유원지로 소풍 간 학생들은 자유 시간을 틈 타 친구들과 삼삼오오 바다를 건넜다. 똥섬에서의 자유, 짧지만 기억이 선명한 순간이다. (아암도 사진은 고교앨범에서 아주 희귀하다. 이 사진을 남긴 당시 인성여고 앨범 사진사에게 감사드린다)

 

 
<1973년도 인성여고 앨범. 시간상 역광 촬영된 사진이 ‘예술’이다.>

 

1980년대 초부터 송도(유원지) 일대 매립 공사가 시작됐다. 아암도와 그에 딸린 소아암도는 육지로 변했다. 인천시는 아암도 일대에 인공백사장을 설치해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을 꿈꿨다. 비치를 조성하기 위해 섬 주변에 인근 섬에서 퍼 온 바다모래 수십 t을 쏟아 부었다. 그런데 아침에 나가보면 모래는 조금씩 없어졌다. 모래는 조류를 따라 밤새 자신의 고향 섬을 다시 찾아 간 것이었다. 해안에 깔아 놓은 모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인천 와이키키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아암도는 주변에 있던 철책과 해안초소를 없애고 폭 10m, 길이 1.2㎞ 크기의 해양공원으로 꾸며지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송도국제도시 조성과 해안도로 건설로 인해 육지에 딸린 평범한 언덕이 되었다. 모세의 기적도, 조개 잡던 사람도 모두 사라졌다.  

 

유동현 /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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