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브로콜리?
상태바
도 넘은 브로콜리?
  • 유광식
  • 승인 2018.10.19 02: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 유광식 / 사진작가
부평구 부평동(동아A 입구), 2018 ⓒ유광식


조경수목이 이 아파트의 세월을 암시하듯 살포시 화단을 넘었다. 보도의 경계가 우스운 듯 아예 자리를 깔고 진을 쳤다. 관리인들은 때마다 이발도 시켜주고 말이다. 가끔 이곳을 지나가면서 보게 되는 브로콜리다. 바라보며 흐뭇하게 속웃음을 짓게 된다. 한편으론 언제 반쪽이 날는지 싶은 염려가 든다. 태양이 바다 속으로 미끄럼을 타는 오후 5시 이후부터는 은은한 황금빛살이 이들을 어루만지게 된다.

그리고 중간의 이정표가 재미있다. 한 이정표에 두 개의 시설이 있다. 1942년 영국 ‘베버리지 보고서’에 언급된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문구가 떠오른다. 사실 이 유치원의 이름에서는 사과나 하얀집(감옥)이 우선 연상된다. 그러나 아래에 있는 경로당 표시가 무릎을 탁!치며 방향을 선회시킨다. 이 아파트 단지가 듣기로는 부평의 오래된 대규모 단지이자 중심이라고 했다. 유치원은 단지의 아침이고 경로당은 단지의 저녁이 될 것이다. 항간에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스치면서도 모든 세대가 우거져 보듬고 살피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복지가 아닌가 싶다.

브로콜리는 요상한 생김새로 처음엔 멈칫했다가 그 맛과 효능에 놀랐던 채소였다. 거대한 모양의 브로콜리를 맛보는 것이 아닌 본다는 것으로 맛을 대신하는 거리의 모양새, 도시를 조물락거리는 재미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늘 금기로 치는 화단을 넘은 수상한 낌새의 이유가 궁금하지만 실제 물어볼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브로콜리에서 촉발되는 기묘한 상상이 지나다니는 튼튼한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파트단지 입구에 자리 잡은 브로콜리는 늘 녹색의 싱싱함과 볕의 온 맛 그리고 뼈 속까지 깃드는 감성의 효능까지 풍성하다. 자신은 숨었다고 자부하는데 나는 술래가 되어 찾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