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물이 시작되는 시천천, 물길로 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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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이 시작되는 시천천, 물길로 잘리다
  • 장정구
  • 승인 2018.11.27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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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시천천 - 장정구 /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논에 미꾸라지가 있어요. 개울에는 참게가 살고요”
“어제는 아이들이 미꾸라지를 잡으려고 했는데 어찌나 미끄러운지 몇 마리 못 잡았대요”

일명 계양산 군부대 ‘뒤쪽’ 습지 조사를 마치고 내려오자 탁트인 논과 함께 저만치 아파트 단지가 들어온다. 계곡에서 시작된 물길은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는 도로를 따라 이어진 콘크리트 제방 아래를 흐른다. 가을볕에 빨래를 널던 주민이 커피를 대접하겠다며 집으로 서둘러 들어가며 이야기한다. 장성한 자식들은 모두 외국에 있단다. 얼마 전에도 외국을 다녀왔다며 큼지막한 초콜릿 상자를 건넨다.  

인천 내륙에서 가장 높은 계양산에서 시작되는 지방하천(광역지방자치단체장이 지정관리하는 하천)이 여럿 있다. 계산천, 귤현천, 계양천, 시천천, 공촌천. 그 중에서 시천천은 계양산 서북쪽 피고개산과 꽃뫼산으로 이어지는 산기슭에서 시작된다. 시천동과 검암동, 백석동을 유역권으로 염전밭을 지나 갯벌로 이어지던 제법 근사한 시냇물이었다. 시냇물이 시작된 곳이라 시시내, 시천천이라 불렸고 마을이름도 시천동이다. 수도권쓰레기매립지로 갯골로 이어진 물길이 이리저리 바뀌더니 굴포천방수로(지금은 아라뱃길)가 만들어지면서 시천천의 하류는 없어졌다. 지금의 시천천은 종점이 아라뱃길 합수지점(시천교 동쪽 약 800미터 지점)으로 유로연장 1.32km, 유역면적1.58㎢로 인천의 30개 지방하천 중 제일 작은 하천이다.

지금 시천동은 남북으로 나뉘어 있다. 굴포천방수로로 시작된 경인운하, 아라뱃길이 동서로 만들어지면서 100미터 폭의 물길이 생겼고 인천공항고속도로와 인천공항철도로 또 그만큼 남북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시천동에서는 하늘을 나는 새가 아니면 남북을 오가기 어렵다. 승용차와 사람이 건널 수 있는 시천교라는 다리가 있지만 배가 다니는 운하를 만들다보니 다리를 높게 만들었다. 그래서 고속도로와 철도 아래 굴다리를 간신히 지났다 하더라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거나 한참을 되돌아와야 시천교를 이용해 아라뱃길을 건널 수 있다. 아라뱃길은 시천동 마을과는 전혀 상관없이 만들어졌다. 1987년 산 너머 부평과 부천에 큰 홍수가 나자 굴포천 수위조절을 목적으로 1992년부터 계양구 동양동의 굴포천에서 서쪽으로 방수로를 팠다. 계양산에서 둑실동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은 싹둑 잘렸고 방수로는 시천동 마을을 남과 북으로 나누어 버렸다. 그 후 서울과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인천공항고속도로와 인천공항철도가 생겼고 북쪽마을은 섬이 되었다.

이런 시천동 마을은 하마터면 또다시 잘릴 뻔했다. 2008년 인천시는 검단신도시개발과 2014아시안게임을 위해 인천에 남북을 연결하는 도로가 필요하다며 일명 검단장수간민자도로를 추진하였다. 검단장수간도로는 서구의 검단동에서 남동구의 장수동를 연결하는 4차선 도로로 민간 제안으로 한남정맥을 따라 20km 길이 도로를 건설하는 계획이었다. 교량 17개소, 터널 8개소, 요금소 6개소인데 이 도로의 시작점과 첫 번째 요금소가 시천동이었다. 상대적으로 땅값이 싸고 민원 발생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인천의 마지막 자연녹지인 한남정맥을 따라 도로를 설계했다고 당시 인천시 관계자가 언론 인터뷰까지 했다. 계양산~천마산~원적산~만월산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에 도로건설이 추진되자 녹지와 경관훼손, 산림파괴, 대기오염, 소음과 진동 등을 이유로 지역주민들의 문제제기가 시작되었다. 사전환경성검토서(초안)이 제출되면서 계양산 롯데골프장과 함께 인천의 중요한 환경현안이 되었다. 민선 6기 들어 검단신도시 개발을 추진하는 인천도시공사의 제안으로 다시 추진되다가 ‘어묵꼬치 꿰듯 녹지축을 도로로 훼손해서는 안된다’며 환경단체 뿐 아니라 지역주민과 종교계 등 지역사회가 반대활동에 나섰고 인천시는 2015년 도로계획을 철회했다.

11월 시천천은 겨울준비가 한창이다. 물속에는 회색으로 변한 물이끼가 가득하고 물가에는 위쪽의 마을에서 떠내려온 듯한 은행과 은행잎들이 노랗게 걸려 있다. 제방 아래 둔치에는 정성들여 키운 쑥갓과 무, 쪽파가 행여나 얼까 자그마한 비닐하우스가 생겼다. 제방 위 길 옆으로는 김장용인 듯한 배추가 정성들인 꽃다발처럼 가지런히 지푸라기로 묶여 있다. 베벼기가 끝난 논 옆 밭에는 이미 털이가 끝난 참깨더미가 수북하다. 참깨더미를 들추자 일찌감치 겨울잠을 청하던 산개구리가 놀라서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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