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세월이 너무도 억울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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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세월이 너무도 억울허네."
  • 김인자
  • 승인 2019.01.07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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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할머니의 눈물


할머니가 울고 있다. 찬바람 쌩쌩 부는 한 겨울에 병원 옥상서 울고 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울고 있다. 할머니 한 분이.
'찬 바람 부는 한데서 저렇게 우시면 안되는데. 볼에 얼음드시는데...'

장염으로 며칠 입원하게 된 병원. 겨울답지않게 하늘색이 예쁘길래 조금 더 가까이에서 하늘을 보려고 병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창을 통해서 보는 하늘과 여과없이 맨 눈으로 보는 하늘은 느낌이 다르다. 입원실에서 볼 때는 그저 예쁘기만 한 하늘이 옥상에 올라와서 보니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이 각도 저 각도로 사진을 찍던 나는 하늘처럼 한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있는 할머니 한 분을 봤다. 추운데 얇은 환자복만 입으셨다. 겉옷도 걸치지 않으셨는데 발을 보니 앞이 터진 슬리퍼 차림이다.

'할머니, 발시려우시겠다. 신발이라도 바꿔신자고 말씀드려야겠다' 하는 마음에 살며시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할머니?하고 말을 붙여 보려던 나는 순간 그 자리에 멈춰섰다.

할머니가 울고 있었다.
무슨 서러운 일이 있으신지 바싹 마른 얼굴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옆에 와 서는 걸 아셨을까? 우는 모습을 들킬까봐 부끄러운 마음이 드셨을까? 할머니가 두 눈을 꼭 감으신다. 그런데 감은 두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흐른다. 우는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할머니들 왠만하면 밖에서 잘 안 우시는데. 얼마나 아프시길래 저렇게 우실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진작에 아프다고 헐걸. 힘들다고 헐걸. 참지말고 나도 헐 말 다 하구 살걸. 이럴 줄 알았으믄 가고 싶은 데 좀 가볼걸. 살아온 세월이 너무도 억울허네."
할머니가 나에겐지 하늘에겐지 넋두리하듯 말을 하신다.

"근데, 젊은 색시는 왜 울어? 색시도 어디 몸이 많이 안좋은가?"
할머니가 내쪽으로 돌아서서 물으신다.
"할머니가 우셔서요. 저도 모르게... 따라 울었어요."
"나원, 남이 운다고 따라서 우나? 맹허게 생기진 않았는데."
하늘을 보고 울던 할머니가 이번엔 나를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신다.
"애기들이 보통 그렇잖아요, 할무니. 한 애기가 울면 그 옆에 누워있는 애기가 따라서 울고 그 우는 애기 따라서 또 그 옆에 애기가 울고."
"에구, 시방 그럼 내가 말 못하는 어린애란 소린가?"
"예 할머니. 우시는 모습이 꼭 이쁜 아기같으셨어요."
"이쁜 아기? 아이구 그건 또 뭔 소리래?" 하며 할머니가 어이 없단 듯이 웃으신다.
"어? 근데 할머니? 울~다가 웃으며~언 어떻게 되는데에~"
"에그, 참내 원. 재밌는 색시네. 그나저나 젊은 사람이 어디가 안좋아서 병원에 왔어? 어디가 어떻다 그르믄 그 즉시 병원에 와서 검사받어요. 나처럼 돈 애낀다고 병 키우지말고."
"예, 할무니, 그럴께요."
"허투루 듣지말고. 건강할 때 몸 애껴요. 몸 아프믄 나만 서러워. 아퍼봐. 남편이고 자식이고 간에 다 소용없어.아프믄 싫다고만 하지."
"예."
"내가 가만 보니까 젊은 색시도 저 허구 싶은 대로 다 허구 사는 사람은 아닌거 같은데. 허구 싶은 말 있으믄 속에 담지 말고 화악 다 풀고 살아. 안 그러믄 나처럼 이 모냥 이꼴이 돼. 병원비 무서워서 진통제로만 버티고 살았는데... 참는게 능사가 아니야."
"예, 할머니 그럴께요."

"그런데 원래 승격이 그렇게 애살맞은가?"
"예?"
"색시말이야. 원래 남헌테 그렇게 살갑게 구냐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 무슨 말이긴? 남이 운다고 따라서 우냐고?"
"아, 예?"
"숭보는건 아니고. 하두 잇속 빠른 사람들만 보다가 요즘 세상에 색시같은 사람두 있나? 내 하두 신기해서 허는 소리야. 어쨋든지간에 고마워요. 덕분에 좀 답답헌 속이 풀리는거 같기두 허네. 사는게 힘들 때는 말이야. 정말 힘들어 죽겠을 때는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한결 낫지. 허긴 울고 싶어도 눈물이 메마른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서도 말이야.
그런데 오늘은 하두 기가 멕혀서 그냥 눈물이 지절로 나오네. 그래봤자 바뀌는 건 없지만서도. 안그런가 색시?"

할머니가 나 한번 보고 이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신다. 나도 할머니 따라 하늘을 올려다본다. 맑고 깨끗한 하늘이 아닌 잔뜩 찌푸린 하늘이 걱정스레 할머니와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좀 전까지만해도 말간 하늘이었는데

"너 괜찮아?"
"내가 뭘.."
"너 울었잖아."
"아닌데.나 안 울었는데."
"내가 다 봤는데. 너 울었는데?"
"너, 나 우는거 봤어?"
"응."
"할머니가 우시는 것도?"
"응."

"울어도 괜찮아."
"고마와."
"나도 울고 싶어."
"하늘, 너도?"
"응, 나도."
"너는 왜 울고 싶어?"
"미세먼지 때문에 나도 자꾸만 눈물이 나."
"미세먼지 때문에?"
"응,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나봐."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응"
"왜 그렇게 생각해?"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까 자꾸만 환경을 오염시키지."
하늘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요즘 내 몸이 많이 안좋아."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울어서.내가 울어서 너도 따라 울고 싶어진건 아닌가 해서."
"우는 너보다 웃는 널 보는게 더 좋긴하지. 그런데 말이야. 울어야 할 때 우는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우는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응, 어른들도 울거든."

"어른들도 운다고?"
"응, 어른들도 잘 울어."
"어른들은 어떤 때 울어?"
"너도 어른이잖아. 너는 어떨때 울어?"
"슬픈 영화를 봤을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
가족처럼 지내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 그리고 지금처럼 많이 아플때?
어른들도 울어."

사람은 누구나 운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울든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대로 방법대로 운다.
울고 싶을 때 엉엉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것도 용기다.
그럼 울고 있는 사람 옆에서 함께 울어주는 것은 무얼까?

조용히 할머니 뒤로 가서 섰다. 그리고  두 손바닥을 따뜻하게 비벼서 할머니를 꼬옥 안아주었다.
"에구, 왜?"
할머니가 당황하시며 웃는다.
"아기니까요. 아기는 원래 이렇게 많이 안아줘야돼요.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이렇게 뒤에서 안아주던데요?"
"아이구, 고맙기도 해라. 아프다고 천지 신명님이 나헌테 천사를 보내주셨나? 누가 아픈 늙으이를 이렇게 따뜻하게 안아주나? 죽은 영감한테도 못 받아본 호사구만. 그나저나 내가 뚱뚱해서 안을 수나 있나?"
"뚱뚱하시긴요. 제 팔이 길지도 않은데 한 팔로 안았는데도 이렇게나 많이 남는데요."
"고마와요. 울고 있는 늙은이 주책이라고 숭보지 않아서. 따뜻하게 안아줘서 참 고맙네. 복 많이 받아요.아프지 말고."

언제 다녀갔을까? 겨울 바람이 할머니 볼에 뽀뽀를 하고 갔나보다. 힘내시라고. 할머니의 볼이 빠알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하늘색과 똑같이. 바알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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