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 녹아든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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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에 녹아든 페미니즘
  • 박지수
  • 승인 2019.01.1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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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지수 / 여성주의 평론가



여성을 향한 무분별한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페미니즘이 등장하고 권력에 맞선 여성들이 거리로 나온 2018년이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친 페미니즘이 삶에 녹아 원래 있던 문화처럼 당연시되고 있는 가운데, 페미니즘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많은 발전을 하는 시장이 있다. 바로 '미디어'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고 먼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작품을 볼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미디어'의 발전은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런 미디어에도 어두운 면이 존재하기 마련, 사람들에게 잘못된 상식을 전해주며 일반화를 하게 세뇌시키기도 한다. 미디어의 문제를 풍자한 <블랙 미러>를 제작한 '찰리 브루커'에 따르면, 우리를 불안함에 떨게 만들고 마약과 같은 위험한 중독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 바로 '미디어'라는 것이다. 그는 이 드라마를 통해 미디어를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여성혐오'가 미디어의 어두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을 가부장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활동 중인 '페미니스트'들이다. 그들에 따르면 여성은 오랜 기간 동안 사회, 문화적으로 억압을 받아왔다.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에서 '미디어'라는 장소가 등장하게 되고, 여성 해방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터라 자연스럽게 '여성혐오'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는 것이다.
 
<코미디 빅 리그> '신과 함께' 코너는 여성혐오를 개그 소재로 사용하여 논란이 됐다. 해당 프로그램은 여성을 때려 방통위로부터 주의를 받은 적도 있다. 드라마와 영화도 다르지 않았다. <너도 인간이니?>에서는 불법 촬영을 한 여성을 폭행하는 장면이 등장했고, <안투라지>에서는 자극적이고 혐오적인 남성 위주의 대사로 인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불한당>에서는 출소한 남성에게 일행이 두부 대신 백인 여성을 먹으라며 성적으로 소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여성을 촬영하여 공유하고 '초대남'이라는 사람들을 불러 성적인 만족을 얻는 <소라넷> 사이트가 존재했다. 여성혐오 사이트인 <일간 베스트>에서는 '사촌 동생 인증'이라는 제목으로 불법 촬영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페미니즘을 조롱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혐오하는 무리까지도 생겨났는데, 이들은 성범죄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한국보다 페미니즘이 먼저 상륙한 외국은 어떨까. 페미니즘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이 많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여성혐오 범죄를 중점으로 수사하는 전담반의 이야기를 그린 <로 앤 오더 : 성범죄 수사대>와 <스토커>,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자살한 주인공이 당사자들에게 테이프를 남기면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여성이 받는 차별과 남성이라는 이유로 존재하는 면죄부, 피해자를 지켜보는 시선과 그들이 받는 고통을 여러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여러 장르에서 여성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마블'과 'DC'에서는 여성을 주연으로 한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마블은 2019년에 개봉 예정인 <캡틴 마블>, <엑스맨 : 다크 피닉스>가 있으며 '블랙 위도우'의 단독 영화가 제작 예정이다. DC에서는 <원더우먼>의 영화의 후속 작품이 제작 중이며 여성 주연으로 구성되고 감독, 각본 등 주요 스태프가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버즈 오브 프레이>가 촬영을 시작했다.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백래시'가 등장하게 된다. 기득권층이 약해질 때 페미니즘의 모습을 하고 여성혐오를 유지하게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너의 모든 것>에서는 서점에서 일하는 남성이 손님을 보고 첫눈에 반하여 일상을 훔쳐보고, 모든 행동이 자신을 유혹하기 위함이라고 착각한다. 히어로 장르에서는 원작을 지켜야 한다며 여성혐오 설정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중 한 가지가 '냉장고 속의 여자'다. DC 코믹스 <그린 랜턴>에서 여성이 악당에 의해 살해당해 냉장고에서 발견된 모습을 본 주인공이 각성하여 악당을 물리친다는 스토리가 등장하고, 논란이 되자 남성을 위해 여성을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소비 당하는 여성들을 기록한 웹사이트가 만들어졌다. 페미니즘을 상업적,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페미니즘 워싱' 현상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남성 감독과 작가들이 여성을 공략하기 위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고, 기자들은 <일간 베스트>보다 <워마드>의 소식을, 페미니즘의 본질을 흐리기 위해 거짓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는 남성이 페미니스트인 척 하며 남성을 혐오하는 글을 올리고, 탈코르셋을 한 여성들을 촬영하여 인터넷에 올려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한국의 페미니즘이 발전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에 페미니스트들은 오랜 기간 쌓인 여성혐오로 이루어진 미디어를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으며 해결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미 많은 것을 바꿨고 백래시는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라고도 덧붙였다.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많은 벽이 생길 것이다. 커지는 백래시에 맞서려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 12월에 막을 내린 <불편한 용기> 같은 활동이 필요하다. 36만 명의 여성들은 남성들의 혐오와 범죄를 방관하는 국가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긴 여정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를 알게 되고 여성들에게만 강요되어왔던 여성성, 미디어의 성 상품화 등에 예민해지고 지적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여성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36만명이 모였다는 자체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 그들의 용기에 힘을 모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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