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끈 놓느냐, 잡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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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 놓느냐, 잡고 있느냐
  • 최원영
  • 승인 2019.10.14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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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우리를 ‘살리기’ 위한 고통




 
풍경 #125.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바람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바람은 새가 나는데 장애물이기도 합니다. 바람이 거셀수록 비행 역시 더 힘겨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람이 전혀 없다면 새는 날지 못합니다. 가장 필요한 것이 장애물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기뻤던 일보다 고통스러웠던 일들이 더 많이 떠오릅니다. 그때의 그 아팠던 이야기를 할 때면 대개가 웃음을 짓습니다. 중년의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할 때가 좋은 예입니다. 젊은 혈기들로 가득 찬 청년들이 군대라는 갇힌 곳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중년이 된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그렇게도 견디기 힘들었던 기억들이 웃음을 자아낼 만큼 재미있는 추억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의미는 그때 견뎌낸 고통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어 작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순간적으로 ‘그 시절 그것도 견뎌낸 나인데.’ 라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래서 주저앉은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곤 합니다. 마치 거센 바람을 가르는 고단함으로 인해 오히려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는 새들처럼 말입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읽었던 백로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한 조류연구가가 백로들이 많이 모여 사는 충청도의 어느 섬에서 수년간 기거하며 백로의 삶을 연구해 발표한 글이었는데요. 그분의 글에서 큰 지혜를 얻었습니다.
어미 백로는 새끼를 정성껏 사랑으로 기릅니다. 소낙비가 오면 새끼들이 비를 맞지 않도록 자기 날개를 펴서 비가 그칠 때까지 날개를 접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키우다가도 일단 성장하고 나면 3일가량을 굶깁니다. 새끼들이 배가 고파서 둥지를 뛰쳐나가려고 하면 어미는 새끼들이 나가지 못하게 부리로 쪼아댑니다.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챌 때도 새끼의 몸을 심하게 쫍니다.
새끼들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또 얼마나 배고팠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힘들어하는 새끼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요?
그렇게 3일을 굶긴 다음에야 어미는 새끼들을 둥지에서 떨어뜨립니다. 만일 굶기지 않고 둥지 아래로 떨어뜨리면 날개에 기름기가 많아서 날 수가 없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어미는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굶주림의 고통과 부리로 쪼아대는 아픔을 준 것입니다. ‘살리기 위한 고통’이었던 겁니다.
 
살면서 우리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를 ‘죽이기’ 위한 고통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한 고통입니다. 고통 받는 당시에는 한 줄기 희망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 고통에 주저앉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3일간의 고통이 비상하는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새들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고통 속에서 절망하고 울면서 사느냐, 아니면 비상하느냐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어쩌면 손에서 희망의 끈을 놓느냐, 아니면 잡고 있느냐의 차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희망, 즉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은 일을 결코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그 고통의 시간들을 견딜 수 있습니다.
 

《긍정의 생각》이라는 책에 소개된 베토벤의 일화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는 한, 고통은 축복으로 화답한다는 멋진 지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혹독한 가난에 시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숙집 주인은 매일 밀린 하숙비를 내라고 종용했습니다. 주인이 목조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릴 때면 베토벤은 늘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이봐, 밀린 하숙비는 안 줄 거야?”
“돈이 없으면 방을 빼고 나가!”
사정을 해서 주인이 돌아간 다음, 베토벤은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문득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솟구쳤습니다.

‘쾅쾅쾅 콰~앙!’
이 소리는 하숙집 주인이 밀린 하숙비를 받기 위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였습니다. 이 소리에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바로 운명 교향곡 제1주제라고 합니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만이 불행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힘겨움을 ‘불행’이라고 여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축복의 씨앗’이라고 믿고 버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 모두가 꼭 하고 싶어 하는 일, 즉 ‘꿈’만큼은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날 3일을 굶고 드디어 파란 하늘을 날아가는 백로처럼 우리 모두도 그렇게 비상할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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