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6곳만 남은, 야학이란 이름의 인생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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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6곳만 남은, 야학이란 이름의 인생학교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7.28 2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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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야학'에서 16년째 국어를 가르치는 김창회 선생님

김창회 선생님은 1995년도에 교사 발령을 받았다. 국어 담당이었다. 1998년, 선배가 ‘한 번 놀러 오라’고 해서 야학에 들렀다가 ‘새로 오실 선생님’으로 소개받았다. 김 선생님은 그날 들은, “아름다운 늪에 빠진 걸 환영합니다”라는 축하인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매해 ‘올해는 그만둬야지’ 마음먹지만 그러지 못하고 16년째 다니고 있다. ‘한길야학’은 생활의 일부고 행복을 주는 곳이지만 ‘늪’처럼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올해는 교무주임도 맡아 더욱 바쁘다. 

“평생 공부에 목말라하며 살다가 야학까지 오게 된 분들이에요. 한 학생에게(어머님에게) “언젠가 한번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밖으로 ‘공’자가 보이는 거야. 저기서 공부를 가르쳐준다는 건가, 하고 벌떡 일어나서 내렸지 뭐야.” 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코끝이 찡했어요.”

 

입시 위주 교육 아닌
평범한 2년제 고등학교


인천에는 6개의 야학이 있다. 초, 중, 고 과정을 다 하는 곳도 있고 ‘한길’처럼 고등학교 과정만 운영하는 곳도 있다.(기사 하단 표 참조) ‘한길 야간고’로 등록돼있는 ‘한길야학’은 1987년 설립됐다. 올해로 27년째다. 주안5동성당 내에 위치하며 현재 김성수 신부님이 명예 교장선생님으로 등록돼 있다. 신부님이 학교 운영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교무실과 교실을 무료로 대여해주고 책상 같은 교육시설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학생들의 수업료와 교재비 등은 교육청에서 지원받는다. 학생들은 40대에서 60대까지, 대부분 여성이다. 1, 2학년을 통틀어 남성은 단 한 명인데, 부부가 함께 수업을 들으러 다니는 커플이다. 현재 한길야학에는 1학년이 12명, 2학년이 6명이 재학 중이다.

한길야학은 검정고시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학교가 아니다. 김창회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검정고시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목표를 크게 잡으라고 말한다. 입학한 신입생들에게는 “여러분은 이제부터 열일곱 소녀예요. 고등학생이 되신 걸 축하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배우는 시간을 즐기고 배움을 통해 다른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2년제 학교라고 보면 된다. 1교시는 오후 7시부터 8시 반까지 2교시는 8시 반부터 10시까지다. 국어, 영어, 수학뿐 아니라 사회, 과학, 한문, 국사, 음악, 미술 등을 배운다. 1학년들은 음악 시간에 오카리나를 배운다. 2학년은 노래 부르기. 봄에는 모꼬지도 떠나고 가을에는 수학여행도 간다. 한 달에 한 번 교실 수업을 빼먹고 체험학습도 하는데 영화나 마임공연을 관람한다. 지난달에는 고양에서 오페라를 봤는데 가장 싼 A석 티켓을 끊었는데도 지출이 커서 이달에는 체험학습을 건너뛰기로 했다.

 

▲ 한길야학 1,2학년 학생들
(공개를 원치 않는 분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앞줄 김창회 선생님 뒤에 앉은 분이 음악 담당 선생님이다) / 이재은

 

현직 교사뿐만 아니라
직장인, 사업가 등이 선생님 자원


“처음 야학에 들어와 학생들을 가르치던 90년대 후반만 해도 가르치고자 하는 선생님이 많았어요. 한 번 들어오면 5, 6년씩 봉사했죠. 요즘에는 선생님 모집도 어렵고 힘들어서 몇 개월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잦아요. 대부분 현직교사들이 수업했는데 현재는 교사와 직장인 비율이 6대 4 정도예요.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사업가이기도 해서 그분에게 또 다른 인생을 배우기도 하죠. 교사들은 학교에만 있어서 사회경험이 많지 않거든요. ‘어르신 학생’들 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김창회 선생님은 인천세무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교감 선생님을 비롯, 동료 교사들도 김 선생님이 야학에서 봉사한다는 걸 안다. 마음으로 많이 도와준다. 야학 선생님들은 100% 자원봉사로 활동한다.

“저는 교과서 진도에 얽매이지 않고 쉬운 것 위주로 해요. 여고생 감성으로 시 낭송을 해보라고 하기도 하고요.”

한 달에 한 번 독서모임도 한다. 책 한 권을 정해주고 읽어오라고 한 뒤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고 살아온 얘기를 들으면서 위로하고, 또 위로받기도 하고요. 지난번에는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었는데 종교에 냉담했던 분이 다시 성당에 다니기도 하고 유니세프에 기부를 시작하신 분도 계세요. 책을 통해 변화를 느끼고 실천하게 되는 거죠.”

1년에 한 권씩 교지를 만드는 건 전통이다. 체험활동을 하거나 소풍, 수학여행 갔다 온 뒤 글을 제출하라고 한다. 잘 보관하고 있다가 연말에 교지에 싣는다.

 

▲ 남구 주안5동성당 내 지하에 있는 한길고 복도에 학생들의 미술작품이 전시돼 있다. / 이재은

 

커피는 맥심밖에 몰랐는데…
테이스터스 초이스?


신입생이 단 한 명밖에 들어오지 않아 그 학생을 1년 내내 교육하고 졸업시킨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대가 끊기면 안 되잖아요. 한 명도 학생인데 수업을 해야죠.” 졸업하고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하는 분도 있고 일반 전문대에 입학하는 분도 있다. 유아교육을 전공해서 어린이집 교사로 활동하는 졸업생도 계셨다.

“한 학생이 신나서 얘기합니다. ‘글쎄, 어제 마트에 갔는데 ‘테이스터스 초이스’가 보이는 거야. 제가 그걸 읽었다니까요.‘ 커피는 맥심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테이스터스 초이스랑 맥심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거죠. 배움이 생활에 적용되면 즐거운 일이 많이 생깁니다.”

학생들은 어떤 과목을 가장 어려워할까. 이곳 학생들도 역시(?) 영어와 수학에 약하다. “영어랑 수학 담당 선생님들이 (학생들이) 열의는 대단한데 기초는 없다고 한숨 쉬실 때가 있어요.”(웃음)

예전에는 야학에 노동하는 청(소)년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해방과 전쟁 직후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채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인생을 바친 우리네 어머니, 어버지들이 늦깎이 학생으로 공부하는 곳이 되었다. 인천에서 아직도 명맥이 끊기지 않고 운영되는 6곳의 '야학이라 불리는 인생학교'에서는 오늘 밤에도 가르침과 배움의 속삭임이 두런두런 들려올 것이다.

 

* 인천에 남아있는 야학

명칭

소재지

설립일

대표자(교장)

교육과정

동암청소년중.고

남동구 간석동 208-3

1972.06

김선덕

중.고

용마루학교

남구 주안5동 백산빌딩

202호

1974.11

김민웅

중.고

인향초.중.고

중구 송월동 3가 3-39

1962.07

김형중

초.중.고

한길야간고

남구 주안5동 천주교회 내

1987.03

김성수

신돌중.고

남구 도화2동 84-5

1987.08

고석기

중.고

성심중

부평구 부평4동 성당 내

1973.10

장중호

계(6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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