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으로 문화와 호흡한 ‘과거의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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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으로 문화와 호흡한 ‘과거의 DNA’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7.09.21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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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소재 ‘인천여관 X 루비살롱’ 프로젝트, 21일 임시오픈
‘인천여관 X 루비살롱’ 건물의 외경. 20년 넘게 비어 있던 옛 여인숙 건물을 건축재생 형식으로 부활시킨 곳이다. 향후 ‘비욘드 레코드(전시회)’, ‘사운드 바운드’ 등 다양한 문화 기획 프로그램들이 예정돼 있다. ⓒ배영수
 

도로명 주소, 중구 신포로 31번길 20. 지번주소, 관동3가 4-37. 이 주소는 최근 몇 달 전까지 장기간 사람도 전혀 없고 우체부도 들를 일이 없는 낡은 여관건물이었다. 좁디좁은 골목에 위치하다 보니 이 동네 주민들도 장기간 살지 않았으면 거의 모르는 건물이었다. 최근 이곳에 작업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21일 겉으로 보기에 카페의 형식을 띈 건물로 탈바꿈해 임시 오픈을 했다.
 
오래 전 실제 쪽방식 여관 이름이었던 ‘인천여관’의 이름을 빌려 ‘인천여관 X 루비살롱’이라는 이름의 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킨 두 인물, 이규영 루비레코드 대표와 이의중 건축재생 전문가를 <인천in>이 만났다.

 

‘인천여관 X 루비살롱’ 건물 2층 한 곳의 욕조에서 장난스럽게 앉아 있는 이규영 루비레코드 대표(왼쪽)과 이의중 건축가. 건물의 역사성을 위해 여인숙 방의 욕조 등도 그대로 살려뒀다. ⓒ배영수


 
“우연이겠지만 10년 전의 상황을 다시 기록하는 느낌이 나네요”. 이규영 루비레코드 대표의 말이다. 인천의 문화예술 관련 인사들이라면 이제 제법 아는 사실이지만, 이 대표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이었던 지난 2007년 부평지역에 ‘루비살롱’이라는 음악 클럽을 오픈했다. 물론 이 클럽은 지난 2011년 경영문제 등을 이유로 문을 닫아 인천의 많은 음악 팬들이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10년 전 루비살롱을 만들어 현재 ‘루비레코드’라는 이름의 레이블로 변화되어 온 시간을 다시 반복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10년 전 부평에 루비살롱을 오픈했는데, 이번에 문화공간을 다시 오픈하는 거예요. 그때 운영했던 루비살롱이 사실 모텔거리 안에 위치했는데, 여기도 주변에 모텔이나 여관들이 제법 있는 게 비슷하고,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게 특별한 공간을 오픈하니 주변 사람들이 신기하게 보시는 것도 있어요. 또 10년 주기로 문화공간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또 새삼스럽게 다가오기도 하고요.”
 
루비살롱을 폐업한 이후로는 ‘루비레코드’로 이름을 바꿔 서울 홍대 인근에서 음악 레이블로 활동해 왔지만, 인천이 고향인 이 대표의 의지로 이 레이블은 인천과도 ‘사운드 바운드’ 및 ‘밴드 데이’ 등 지역 프로그램을 주관 혹은 참여하기도 하면서 지역과 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이제 10주년이 된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기념을 할까 하는 고민이 컸다고 한다. 홍대 인근의 같은 레이블인 ‘일렉트릭뮤즈’, ‘파스텔뮤직’, ‘마스터플랜’ 등이 최근 각자의 방법으로 10주년을 기념했던 만큼 루비레코드 역시 1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 보고 싶어 했고, 그 대상지를 자신의 고향인 인천에 정한 것이다.

 

‘인천여관 X 루비살롱’ 건물의 1층. 사진상으로는 일반 손님들도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카페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음악 기획자가 ‘오너’로 있는 곳인 만큼 방대한 음악 콘텐츠들을 구성해 놓았다. ⓒ배영수

 
이 대표는 지난해 가을부터 이 고민을 했고, 이에 공간사업을 고민하던 이 대표는 신포동 일대를 돌아다니던 중 과거 여관 건물로 쓰였던 곳을 하나 발견했다. 그리고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의중 건축재생 전문가를 불렀다. 그리고 이 건물 이모저모를 공동취재하면서 얽혀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알게 됐다.
 
이 대표는 “오래 전 이곳에서 여관업을 하시던 할머니께서 구청 내 보호시설로 거처를 옮기시면서 공실로 비어있게 된 것이 여기에 사람이 드나들던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흥미를 갖고 건물을 매입한 이후로 70년대 명 가수인 이숙(‘눈이 내리네’의 주인공)씨가 여기서 영업을 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평생 음악업계에 몸담아온 이 대표는 이 건물이 과거 음악인과 인연이 있었던 점에 착안해 건물 이름도 ‘인천여관 X 루비살롱’이라는 프로젝트 성격으로 지었다.
 
그런가 하면 이의중 건축가는 이 건물의 특수성에 많은 주목을 했다고 한다. 처음 이곳에 작업을 하러 왔을 때는 그저 어둡고 습한 느낌만 받았으나, 막상 건물 구석구석을 파보니 또다른 세대가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여관 혹은 모텔의 구조와는 전혀 다른, 당시 숙박업 건물의 모습을 거의 원형 그대로 갖고 있는 부분에 매력을 느꼈고, 쓰인 소재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었음에 놀라웠다는 것이다.
 
“이 건물은 인천의 근대 이후 현대사회까지의 흐름을 갖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단단한 벽돌들이 이 동네에서 재사용되면서 예전 흔적 일부도 갖고 있고, 지역이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거나 구성됐던 요모조모를 갖고 있었던 걸, 정작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몰랐던 거죠. 60년대 지어진 건물이 비록 현 시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말을 하기엔 이릅니다만, 충분히 역사성과 지역 차원의 의미는 보여주는 건물이라고 생각해서 흥미롭게 작업에 참여하게 된 거죠”

 

인천여관 X 루비살롱의 건물에 쓰인 벽돌. 최근 중구청이 일방적으로 철거한 애경사 건물에 쓰인 벽돌과 같은 것이라는 이의중 건축가의 설명이 있었다. ⓒ배영수


 
21일 임시 오픈을 하기까지엔 경제적 문제 혹은 재생방향의 고민 등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일부러 목표를 잡지 않고 방향만 잡고 나가자’는 신념이 기간을 더 오래 걸리게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참여했다가 빠져나간 사람들도 있었고, 시행착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들이 있더라도 방향성을 제외한 모든 가능성을 한 번 열어보는 시도를 하고 싶었다는 게 두 인물의 이야기다. “오래 걸려도 그렇게 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보자”는 것이다.
 
이규영 대표와 이의중 건축가는 지금도 그 부분을 계속 인지하고 있는 중이다. 둘 다 스스로 “회사의 개념보다는 커뮤니티 혹은 무브먼트(Movement)의 개념이고 싶다”는 이들은 이곳을 단순하게는 잠시 쉬다 가는 카페서부터 전시기획자 및 예술가, 팟캐스트 등 방송 관련 제작자들이 참여해 결과를 함께 만들고 알리는 부분에서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인천여관 2층 건물. 향후 문화예술 기획자 고경표씨가 구성하는 인천지역 음악역사 전시회 성격의 ‘비욘드 레코드’가 열릴 예정인 공간이기도 하다. ⓒ배영수

 

이규영 대표는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 예를 들면 카페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를 비롯해 입주해 있는 문화계 관계자와 이미 전시를 계획 중인 기획자 등을 모아 놓고 내 스스로는 계획을 잡지 않고 지켜보는 것을 이 건물의 프로젝트 작업을 통해 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미 회사의 대표로서 자신이 판단하고 책임지는 것은 많이 해봤지만, 여기에서만큼은 참여한 사람들에게 주체의 자리를 내주고 자신이 판단하지 않는 형식의 것이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큰 틀은 있어요. 여관이 힘든 사람들이 몸을 쉬는 공간이었잖아요. 여기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내는 공간이고 싶어요. 단순한 쉼터의 역할부터 좀 더 깊숙이 머물렀다 가는 사람들이 새로운 미션을 할 수 있는 계기였으면 좋겠고요.”
 
이의중 건축가 역시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가로서 한번 살펴보고자 했던 것은 지역성과 오래된 건물 등의 역사적 가치 등을 과연 동네에 어디까지 확산하고 공유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그러한 고민이 지역의 베이스가 되는 부분을 부동산시장에게 휩쓸림 당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할 텐데 그런 구조들을 어떻게 만드느냐를 이 건물을 통해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 취재 후 : 현재 임시오픈 상태인 ‘인천여관 X 루비살롱’은 통상적인 ‘카페’로서는 그렇게 친절하다고 할 수 있는 공간은 아직 못 되고, 음료 등의 메뉴도 아직은 많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이곳이 엄연히 카페 공간의 의미보다,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담아내는 ‘문화 공간’ 및 ‘아카이빙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들렀을 때 좀 더 다른 세계와 마주하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의중 건축가(왼쪽)과 이규영 대표. 사진 중앙의 공간에서는 향후 간단한 어쿠스틱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로 꾸며놓을 생각이 있다고 한다. 아직 ‘확정된 내용’은 아니다. ⓒ배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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