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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 숲 아이들 얘기도 꺼내볼까요?

[인천in이 만난 사람] 조은숙 배다리 ‘이야기 가게’ 집주인(동화구연가)

19-09-05 16:34ㅣ 송정로 기자 (inters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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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배다리 책피움 한마당축제 '책 쉼터'에서 '이야기 가게'를 연 조은숙 동화구연가


직업은 동화구연가. 인형극은 베테랑이고 가끔 연극배우로도 활약했는데, 지금 그는 인천문인협회 소속 시인으로 좋은 시를 더 쓰고 싶다.
 
엘살바도르에서 만 8년을 살다 귀국해, 2017년 5월 배다리에 집을 사서 이사 온 조은숙씨(52) 이야기다. 그가 산 집은 창영초교 부근 배다리 철길 쪽으로 위치해 있는데, 40년 된 구옥이다. 앞마당은 꽃밭으로, 옥상은 정자와 평상을 올려 휴식공간으로 텃밭을 가꾸었다. 기차가 수시로 지나가는 철길 옆에 ‘이야기 가게’를 연 것이다.
 
아이들이 찾아오면 전래동화나 인형극으로 맞이한다. 이야기로 아이들의 친구가 돼주기도 하지만, 엄마나 아빠, 어른신들이 찾기도 한다. 그는 종종 마을로 ‘출장 영업’도 감행해 이웃 아주머니에게 이야기를 청한다. 마을엔 이야기하고 싶어 목말라 하시는 어르신들도 많다. 이야기를 사고팔고, 돈이 오가는 것은 아니지만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작은 물건을 주고 받는다. 그는 그것을 ‘이야기 선물’이라고 말한다. 학용품이나 장난감, 무 또는 사과, 백일홍 꽃씨, 재단용 초크, 때론 이야기를 해달라며 술 한 상자를 들고 오는 이도 있었단다.
 
재작년 그는 인근 창영복지관에서 동화구연 교실을 열었다. 작년에는 인형극을, 올해는 어린이 문학교실(글쓰기)을 열고 있다. 화도진문화원이 진행하는 문예강좌도 올해 배다리 ‘시다락방’과 ‘스페이스빔’에서 열었는데, 그는 ‘사진에게 말을 걸다’란 제목으로 글쓰기 강좌를 맡고 있다. 풍부한 문학적 감성과 열정, 재능이 없다면 분명 어려운 일들이다.


조은숙 동화구연가의 집 앞. 배다리 철길을 앞에 두고 앞마당은 꽃밭으로 단장했다.

조은숙 동화구연가의 집 '이야기 가게' 인형들


그는 24년 경력의 동화구연가다. 그의 경력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19살 때 군산에서 상경한 그는 서울 성수동 ㈜아남반도체 본사 방송실에서 10년 근무했다. 26살 때 부평 사람과 결혼 후 맞벌이하다 몇 년 후 시어머니가 계신 부평으로 이사 왔다.
 
“인천에 오자마자 방송하던 사람으로 어떤 일을 좀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여성잡지에 동화구연가 기사가 나와 있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 후 큰 동서의 소개로 부평구가 발행하는 ‘부평사람들’ 취재기자로 10년을 일했다. 취재하다 알게 된 십정동의 장애인을 위한 ‘작은자 야학’ 초등반 국어 담임으로 4년을 봉사했고, 시각장애인들의 혜광학교 저학년 동화구연 강사로 6년을 봉사하며 동화구연 전문가의 길을 걸었다.
 
근데 왜 배다리에 왔을까?
 
“2008년 엘살바도르로 이민가기 직전 아이들(아들 둘)에게 인천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백운역 쪽 시댁 한동네에 살았는데, 그때 처음 배다리를 와봤어요. 헌책방 아벨서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산 것이 첫 인연입니다”
 
2015년 귀국 후 그는 신포동 ‘소극장 다락’에서 모노드라마 ‘하루의 축’에 배우로 출연했다. 이듬해에는 같은 곳에서 연극배우 손민목 씨와 2인극 ‘늙은 부부 이야기’에 출연했다.
 
방송실 근무경력으로 그는 2003년 김학균 연출의 뮤지컬 ‘아버지의 훈장’(극단 피어나)의 나래이션을 하러 갔다가 거기서 배우로 발탁된 것이 시작이었다. 2006년 3월 오성근 연출의 ‘울 밖에 핀 봉선화’에선 최헌철 씨와 부부로 나왔다. 인천연극제 출품작이었다. 이를 ‘소극장 다락’ 백재이 대표가 눈여겨보았는지 그가 귀국하자마자 신포동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모노드라마를 끝내고 홀가분할 때, 백재이 대표가 배다리에 박경리 추모 시낭송회를 보러 가자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배다리 밟게 되었죠.”
 
그리고 그때 청산별곡과 인연이 되어 ‘배다리 사랑방’에서 동화구연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이야기 선생님이 되어 6개월을 드나들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배다리가 좋아, 배다리에 집을 사서 아주 눌러 앉게 됐다. 그 사이 그는 숙대 대학원에서 ‘아동문화콘텐츠’를 전공했다.
 
“사실 배다리의 정서와 환경이 제게 딱 맞았어요. 고향 군산(경암동)이 바다와 가깝고 기찻길이 바로 집 앞에 있었는데, 배다리가 고향과 흡사했어요.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정겨운 데다 바다도 맘먹으면 금방 달려가 볼 수 있는 곳이죠. 여기가 바로 그렇지 않나요?”
 
그는 아파트 좋아하지 않아 구옥을 사서 개조했다. 1층 ‘동화서적’은 이달 이사 예정이다. 작은 소극장을 만들까? 그는 요즘 1층 공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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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맹그로브 숲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조은숙과 루이스가 포즈를 취했다.


그런 조은숙에게 엘살바도르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사실 구구절절 간직해놓은, 보람도 행복도 있었지만 여전히 가슴 아픈, 떨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아직 누구에게도 제대로 꺼내놓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그는 배다리 사람들과 지인들을 모시고 사진으로 엮은 그림책 ‘엘살바도르 맹그로브 숲의 아이들’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그는 2008년 1월 엘살바도르에 염색 사업을 하는 남편 따라 아들들과 이민을 떠났다가 8년 후 아이들 대학진학 문제로 몸만 그냥 빠져나왔다. 그런데 시어머니 병간호와 겹쳐 눌러있게 된 것이 벌써 4년이 되었다.
 
1월 30일 엘살바도르에 도착하고 2주 만에 그는 외교통상부 산하 현지 한글학교 교사가 됐다. 아이들 입학을 위해 찾았는데 그의 약력이 그를 바로 교사로 인도한 것이다. 주로 재외동포 학생, 다문화 가정, 우리말을 모르는 학생들에게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뿌리교육’을 시키는 일이었다. 6년을 일반교사로 마지막 2년은 교감을 맡았다. 교민회장이 당연직 교장이었으니, 그가 실제 교장이었다.
 
그런데, 그해 7월 더 큰 일거리가 생겼다. MBC 국제 시사프로그램 [W]가 엘살바도르 아동인권문제를 방영했는데, 그가 살고 있는 수도에서 차로 2시간 반가량 떨어져 있는 해안가 ‘이슬라 데 멘데스’ 섬에서 조개를 캐는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학교가 있어도 못가고, 생계를 위해 구명조끼도 없이 나룻배를 타고 20~30분씩 노 저어 가는 섬이 맹그로브 군락지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맹그로브 깊은 뿌리에 있는 쿠릴조개를 캐는데, 군락지에는 독충과 뱀이 있어 위험하다.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은 맨손으로 이 모든 작업을 한다. 몇 시간 30~40개를 캐면 3달러 정도를 번다. 그 돈으로 팥이나 옥수수가루 등 생필품을 사는 것이다.
 
7월에 방영이 됐는데, 이를 시청한 한국 여성 3명이 울고불고 아이를 돕겠다며 어찌어찌 현지 교민을 수배한 것이 블로그를 하던 한글학교 교사 조은숙이었다. 조은숙은 다시 당시 방송 코디로 등장했던, 스페인어 잘하는 한국 교민여성을 찾아 그와 함께 3명의 한국 여성이 모아준 13만원을 들고 그 해안가를 찾았다. 맹그로브 숲 아이들을 위한 긴 봉사활동의 시작이었다.
 
먼저 도움을 준 아이는 MBC 방송 조명을 받은 9살 가장 마누엘. 여동생과 함께 산다. 마지막 밥숟가락을 동생에게 떠먹이는 모습이 시청자들을 많이 울렸단다. 그해 8월31일 한국의 독지가(김은경, 김미정 외)들은 다음 까페 ‘마누엘 사랑’을 개설하고 조은숙이 까페지기가 되어 엘살바도르의 상황을 글과 사진으로 전하기 시작했다. 한국인과 엘살바도르인, 그리고 남편의 사업과 연결된 현지 한인업체 사람들과 대만인 등 외국 사람들도 후원에 참여했다. 학교에 장학금을 보내고 생필품 지원사업이 시작됐다. 10월에 라파엘, 11월 호세, 그다음 조나딴을... 그들의 동생들까지 합하니 모두 39명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과 10년 동안 도와주겠다고 서약했다. 아이들에게는 공부에 충실하고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서약서에는 조은숙, 최정순(방송 코디 교민)을 비롯해 한국 여성 3명이 대표로 서명했다. 39명의 아이들과 그 가족들의 굴곡진 사연은 지금도 진행형이기에 그는 배다리에서도 가슴에 안고 산다. 깽단에 잡혀 협박당해 일하다 살해된 아이들도 있고, 깽단의 여자가 되어버린 아이도 있다.
 
10년 약속은 작년 8월30일에 끝났다. 남은 후원금은 39명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한 아이, 라몬 우리엘의 장학금으로 쓰이고 있다. 그는 남편의 도움으로 그 마을에 공부방도 지어주었다. 마을 커뮤니티와도 같은 공간이었다. 마을 주민이 지어준 공부방 이름은 ‘로사의 집’. 조은숙의 그곳 이름이 로사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비효과의 작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놀랍기도 하고 가슴이 벅차올라 지금까지 이야기도 제대로 꺼내놓지 못했습니다... 이제 슬슬 그 이야기도 꺼내놓을까요?”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까르멘과. 까르멘은 경찰이 되고 싶어했지만, 치안상태가 너무 안좋아 꿈을 포기했다.
 

조은숙씨는 기회있을 때마다 한국내 소녀상들을 찾고 있다. 지난 5월2일 조은숙 등 '노랑춤 퍼포먼스 팀'은 부천 안중근공원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배다리 '스페이스 빔'에서 화도진문화원의 글쓰기 강좌 '사진에게 말을 걸다' 강의 중인 조은숙 시인. 9월3일 2학기 개강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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