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속 여성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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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속 여성은 가짜다!”
  • 윤세민 경인여자대학교 교수(시인ㆍ문화평론가)
  • 승인 2014.11.1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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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민의 영화 읽기 (3)TV 드라마의 여성다루기의 허구
 
왜 여성들은 TV 드라마를 선호하는가?
TV 드라마는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르 중 하나다. 이는 남녀간의 TV 프로그램의 선호도 차이를 보면 뚜렷이 나타나는데, 남성들은 뉴스, 다큐멘터리, 스포츠 등의 순으로 좋아하고, 반면에 여성들은 드라마, 예능 등 여성 취향의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대부분의 TV 드라마들은 여성들의 관심사를 많이 다룬다. 특히 개인적인 갈등과 감정적인 갈등을 주로 다루면서 가정적인 문제나 그 가족 성원들과 관련된 일들이 주 소재가 되고 있다. 이러한 소재와 주제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그것이 다른 장르보다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플롯이 다양하고 각 사건들이 등장인물의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되고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사실은, 드라마 텍스트 자체가 뚜렷한 주제를 수용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방송국은 인기를 먹고 사는 기구이므로 끊임없이 사회의 가치 변화나 수용자의 변화 등과 협상을 해야 하므로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알면서도 당하는 교묘하고도 음흉한 TV 드라마의 장치
그러나 드라마의 그 열린 가능성 안에는 교묘하고도 음흉한 장치가 도사리고 있다. 소위 ‘막장 코드’다. 불륜, 삼각관계, 사각관계, 출생의 비밀, 근친상간, 혼전임신, 낙태, 재벌, 우연한 사고, 기억상실, 시한부, 복수, 자살, 살인 등등이다. 이는 이미 익숙한 요소들을 관습적으로 사용한다는 영상 문법인 ‘컨벤션’으로 고상하게 환치돼 불리기도 한다. 아무튼 ‘막장 코드’든 ‘컨벤션’이든 이는 시청자와 관객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면서 시청률과 흥행을 위하여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코드와 장치들이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내용의 전개 및 전환을 위한 극적 장치로서 드라마를 더 흥미롭고 드라마틱하게 만들면서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시청자로선 알면서도 당하는 교묘하고도 음흉한 장치인 셈이다.
 
TV 드라마의 주희생자는 바로 ‘여성’
그런데 문제는 이 장치의 주희생자가 바로 ‘TV 드라마 속 여성’이요 또한 ‘TV 드라마 밖 여성’인 여성시청자들이라는 점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드라마 속 상황에 자신을 이입하게 된다. ‘자발적 동의’라는 것이다. 동의란 곧 동조요 동화다. 허구의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것이 실재하는 사실임을 믿고 싶어한다. 더 나아가 드라마라는 전제 ‘위에’ 그것은 실재처럼 존재하고 작용한다. 그것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이 그 안에 위치하는 것이다. 드라마 안으로 들어가 실제 자신이 드라마 속 인물이 되어 그 상황들을 체험해 본다. 그렇게 여긴다. ‘투사’라는 것이다. 마치 드라마 속 인물들이 바로 시청자 자신인 것처럼,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자신을 투사하여 즐기게 된다. 그래서 주로 여성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며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처럼 울고 웃고 화내고 원망하는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곤 하는 것이다.
 
TV 드라마 속 여성은 ‘가짜’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꺼이 자신을 투사한 그 ‘TV 드라마 속 여성’은 태반이 ‘가짜’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가짜’는 ‘허구의 인물’을 가리킴이 아니고, ‘오도된 거짓 여성’을 이른다. 그 실례를 보자.
우리나라 TV 드라마 속에서의 여성상을 분석해 보면, 일반적으로 순종적인 여성은 사랑받지만 자기 주장이 강한 여성은 갈등 제공자로 귀결된다. 어머니는 헌신적인 여성으로, 때로는 주책스럽고 허영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또한 결혼하지 않은 딸은 철부지로, 결혼한 여성은 효녀로 그려지며, 순종하는 며느리는 효부형으로, 순종하지 않는 며느리는 독한 여자로 그려진다. 유순한 순종형이 이상형으로 그려지고, 자아실현형의 여성은 악녀로 그려지곤 한다. 대체로 사회적인 일을 하는 여자는 부정적으로 그려지는데, 전문직 여성의 묘사는 그들의 애환보다는 성공 결과만을 강조한다.
또 여성들은 공적인 직업과 직무보다는 사적인 관계에 주로 몰두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예를 들면, 똑똑하고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형 직업여성의 경우 항상 트러블 메이커로서 이미지화 되면서 가정에서는 시부모나 남편 그리고 자녀들과 의견충돌이 잦고 자주 갈등을 빚는 것으로 등장한다. 가정은 가정대로 고통을 겪고, 직장에서는 드세다는 이유로 남성동료들에게 지탄을 받는 이중의 고통을 겪는 모습으로 고정 관념화 시키고 있다.
또한 멜로드라마는 여성이 남성에게 구속당하는 것을 사랑의 본질인 양 왜곡함으로써 여성의 인생 중 최고는 남자로부터 사랑받는 것이라는 잘못된 환상을 만들어 내거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여성 또는 남성을 그림으로써 ‘낭만적인 사랑의 신비주의 신화’에 매몰되어 있다. 더불어 어린이 만화나 드라마조차 강인한 남성을 주인공으로 부각시키는 대신 여성은 이 주인공에게 의지함으로써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약하여 보호 받아야 할 존재임을 주입시키기도 한다.
 
TV 드라마의 ‘진짜 여성’은 ‘진짜 시청자’의 몫
그리고 우리나라 TV 드라마는 흔히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능동적, 주체적, 완전한 인간으로 그리지 않고 있다. TV 드라마 속에서조차 여성의 주된 관심사를 요리, 패션, 미용, 몸매, 가족의 건강, 자녀교육 등에 한정시키고 있다. 고작 외모가꾸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대다수 여성을 남성의 사랑 없이는 살지 못하며, 자신의 일방적 희생을 통해 가족의 행복을 돌볼 때 진정 아름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은근히 ‘남성우월’을 강조하는 TV 드라마는 남성에게는 능력, 즉 권력이나 돈이 중요하고, 여자에게는 외모나 성적 매력이 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조장하곤 한다.
사실 이제는 여성 또한 남성과 마찬가지로 정치?사회?경제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온전히 가사노동만 하는 여성보다는 부업이나 시간제, 혹은 전일제로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의 비율이 더 높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TV 드라마는 ‘주시청층인 전업주부’를 주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하는 여성이 으레 겪게 되는 육아문제, 가사노동 분담의 문제, 취업문제, 정치?사회?경제 문제 등을 애써 도외시 하고 있다.
결국, TV 드라마 속의 ‘가짜 여성’은 시대 착오적으로 성차별적 이데올로기,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여전히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참으로 시대를 거스르는 안타깝고 한심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진정 TV 드라마 속에서 ‘가짜 여성’이 아닌 ‘진짜 여성’을 자주자주 발견하고 싶다. 그것은 TV 드라마 밖의 깨어 있는 ‘진짜 시청자’의 몫일 것이다.
 
 
 
윤세민 / 경인여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언론학박사).
대학에서 스토리텔링, 시나리오 작법, 커뮤니케이션 등을 강의하며,
시인이자 문화평론가로서 주로 출판, 방송, 영화 등에 대한 평론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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