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살아갈 길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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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살아갈 길이란
  • 최종규
  • 승인 2011.10.14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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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조나단 도슨, 《지금 다시 생태마을을 읽는다》

 ‘생태마을’이나 ‘자연마을’이나 ‘환경마을’ 같은 이름이 붙어야 살 만한 터전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런 이름이 붙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살 만한 터전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그린(green)’이니 ‘초록(草綠)’이니 하는 말도 곧잘 씁니다. 그러나, 이런 낱말이든 저런 낱말이든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더욱이, 어떤 낱말을 쓰든 이 낱말들이 무엇을 뜻하거나 가리키는가를 옳게 깨우쳐야 합니다.

 먼저, ‘생태(生態)’란 “살아가는 모습”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자연(自然)’이란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이루어진 목숨과 터전”을 일컫는 한자말입니다. ‘환경(環境)’이란 “살아가는 곳 둘레 모습”을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이러한 낱말을 쓴대서 딱히 남다르다 싶은 이야기가 샘솟지 않습니다. 아니, 이러한 낱말을 쓰면서 더 살 만하거나 더 깨끗하거나 더 아름답거나 더 슬기롭거나 더 사랑스러운 터전을 나타낸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영어 ‘그린’이든 한자말 ‘초록’ 또는 ‘녹색’이든 뜻은 하나입니다. 우리 말로 이야기하자면 ‘푸름’이나 ‘풀빛’입니다.

 곰곰이 따지면, 어느 쪽이라 하든 “푸르게 살자”는 소리요, “풀과 나무를 아끼면서 살자”는 움직임입니다. 자연을 보살피든, 자연스럽게 살아가든, 삶터를 일구든, 사랑스러운 모둠마을을 돌보든, 풀과 나무를 아끼면서 살아가는 매무새가 밑바탕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간다 하더라도 ‘푸른마을’을 가꾸려 한달 수 있습니다.


.. 인류가 지구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좀더 깊이 있고 넓은 범위에서 생활양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  (16쪽)


 오늘날 한국땅 곳곳에 서는 아파트를 살피면, ‘푸른마을’ 같은 이름을 붙이는 데가 꽤 많습니다. 아파트를 잔뜩 세우고는 ‘무슨무슨 마을’이라 이름을 붙입니다.

 사람들이 퍽 많이 모여 살아가니 ‘마을’이라 이를 만합니다. 그러나, 참말 아파트덩어리를 놓고 ‘마을’이라 해도 좋은지 알쏭달쏭합니다. 아파트가 많이 모인 곳을 두고 ‘아파트숲’이라고도 합니다만, ‘숲’이라는 낱말하고 ‘아파트’라는 곳이 어울릴 수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잘 살아도 마을이요 못 살아도 마을이겠지요. 돈에 굶주려도 마을일 테고 사랑을 나누어도 마을일 테지요. 이웃하고 따사로이 어깨동무를 해도 마을이며 이웃하고 등지며 나 몰라라 할 때에도 마을입니다.

 그렇지만, 마을이라는 이름을, 숲이라는 이름을, 자연이라는 이름을, 푸름이라는 이름을 아무 데에나 쓰는 일이란, 내 삶과 네 삶과 우리 삶을 얼마나 보듬거나 보살피려는 몸짓이 될까요. 좋은 뜻을 드러낸다는 이름만 쓰면 되는 삶인가요. 멋있거나 훌륭하다는 이름을 붙이면 끝인 삶인지요.


.. 모든 생태마을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자신들의 운명이 달린 그들의 자원을 스스로 관리하기 위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남반구의 여러 나라들은 자원 관리와 관련하여 마을공동체와 기업들 사이에 뚜렷한 선을 두고 있다 …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안에 북반구의 많은 나라에서도 똑같은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도시 바깥은 대형마트 때문에 지역경제가 무너지고, 소비자들은 노동자를 업신여기고, 생태계를 파괴시킨 생산품을 사는 일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마을공동체는 노동과 환경 관련 규제를 없애려는 원거리 대기업들이 제공하는 일자리에 점차 기대게 된다. 문화는 점점 획일화·표준화되며 최소 공통분모의 하나로 지나치게 단순화된다 ..  (60∼61쪽)


 조나단 도슨 님이 빚은 《지금 다시 생태마을을 읽는다》(그물코,2011)라는 환경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지구별 곳곳에 자리한 돋보이는 생태마을을 살핀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곱씹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구별 곳곳에서 저마다 애쓰고 힘쓰며 땀흘립니다. 나라와 겨레를 넘어 사랑과 믿음이 어우러질 좋은 삶자락을 길어올리고 싶어서 꿈꾸고 노래하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생태마을이라 하는 곳은 어디에서나 시골마을입니다. 도시마을이면서 생태마을인 곳은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생태마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생태마을이 태어날 수 없는 도시이지만, 생태마을 비슷하게 나아갈 수는 있습니다. 길을 더는 내지 않고, 집을 더는 짓지 않으면서, 텃밭을 차츰 늘릴 때에는 생태마을 비슷하게 나아갑니다. 텃밭을 차츰 늘리다가는 조그맣게라도 논을 보듬는다면, 텃밭 가장자리에 나무를 한 그루씩 심으면서 조그마한 수풀을 이룬다면, 숲까지 이르지는 못하나 우람한 나무가 줄지어 자라도록 마음을 기울이고 빈터를 돌볼 수 있다면, 이때에는 생태마을 비슷하게 나아갑니다.

 환경이나 생태나 자연을 다룬 책을 읽는대서 생태마을이 되지 않습니다. 환경책 몇 권 읽는대서 환경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생태마을을 꿈꾸거나 환경사랑을 이루고 싶으면, 맨 먼저 자가용을 버려야지요. 조그마한 마을에서 ‘함께 쓰는 자동차’ 한 대나 두 대만 남겨야지요. 써야 할 때에만 알맞게 쓰되, 여느 때에는 쓰지 않는 자동차가 되도록 해야지요.

 사람들 맨손으로도 얼마든지 벼포기를 뜯을 수 있습니다. 다만, 품과 땀이 많이 듭니다. 낫을 쓰면 벼포기는 더 수월히 거둘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한나절 벼베기를 하는 만큼,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살붙이들 함께 먹을 나락이 나옵니다. 벼를 베는 기계를 기름을 넣어 움직이면 한 시간 만에 열 사람이나 스무 사람이 한 해 동안 먹을 나락을 거둡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시간 만에 열 사람이나 스무 사람이 한 해 동안 먹을 나락을 거두는 만큼, 기름을 써서 공해덩이 먼지를 빚는 한편, 이렇게 커다란 기계를 만드느라 물과 바람과 흙을 더럽힙니다.


.. 생태마을이 작을수록 모든 구성원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명료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러나 생태마을이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이러한 의사결정은 점차 어렵게 되어 소수가 여전히 이의를 제기하는데도 결정을 내어 버리는 간접민주주의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 위원회나 소규모 전문 집단이 의사결정 과정을 대신하는 추세가 점차 늘어가고 ..  (97쪽)


 자동차를 알맞게 써야 하듯, 기계를 쓸 때에도 알맞게 써야 합니다. 기계에 기대는 삶이 되어서는 내 삶도 네 삶도 우리 삶도 알뜰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맨 나중에는 아무런 기계조차 안 쓰는 내 삶과 네 삶과 우리 삶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풀과 나무를 아끼는 삶이란, 돈을 더 벌어들일 삶이 아니라, 나와 이웃과 살붙이와 동무 모두 조용하면서 조촐히 어우러질 웃음과 눈물을 아끼는 삶일 테니까요. 흙을 밟고 흙을 만지면서 내 몸이 태어나서 돌아갈 흙을 껴안는 삶일 때에 비로소 생태이니 자연이니 환경이니 하는 이름하고 걸맞을 테니까요.

 자가용을 탄 사람들은 자가용 바퀴가 사마귀를 밟아서 죽여도 느끼지 못합니다. 자전거를 타더라도 싱싱 내달리면 메뚜기를 밟아서 죽여도 깨닫지 못합니다. 너무 바삐 살아가는 사람은 구두나 운동신을 신은 발로 나비를 밟아서 죽여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생태마을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늘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찬찬히 되짚어야 합니다.

― 지금 다시 생태마을을 읽는다 (조나단 도슨 글,이소영 옮김,그물코 펴냄,2011.5.30./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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