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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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소
  • 신언섭
  • 승인 2024.05.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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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의 글마당]
신언섭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 반

 

초여름 모내기 때 일이다. 이모작으로 보리 수확한 논에 벼를 심는 일은 하루 햇살이 금쪽같다․ 하루만 늦어도 가을 수확이 완연히 다르다‚ 삼백 평 두 다랑이 우리 집 모내기에 식구들 모두 일손을 모았다․ 어린 우리도 못단 옮겨주고 못줄 잡아준다‚ 이웃집 아저씨 일소를 데리고 와 쟁기질하고 써래질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오전 반나절에 어머니께서 새참을 내 오셨다‚ 하던 일 멈추고 모두 논두렁에 자리 잡았다․ 걸쭉한 막걸리와 며칠 전 수확한 햇감자를 삶아 오셨다․ 하얗게 속살을 내보인 감자가 포근포근하여 입맛을 돋운다․

모두가 즐기는 참 시간에 송아지 새끼 낳는다고. 누군가 소리친다․ 조금 전까지 일하던 소가 논두렁에 서 있고‚ 꽁무니에 송아지 앞발 두 개와 머리가 보인다 힘을 주던 어미 소가 음무~~~ 소리를 한다. 산통이 힘들고 겁이 나는가 보다‚ 연이어 힘을 준다. 툭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어린 송아지 다치지나 않았나 걱정이다. 어미소 뒤돌아 새끼를 보고 뒤집어쓰고 나온 너울을 꼼꼼히 핥는다‚ 반질반질 수송아지 금시에 일어나 잘도 걷는다․ 어미소 저 홀로 산후 정리를 한다․ 안쓰럽게 지켜보던 어머니 설익은 풋보리 한 아름 주시며 “말도 못 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냐”며 위로를 한다․

알고 보면 어머니 삶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그 흔한 산부인과나 조산원은 알지도 못 했다. 어머니는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열 살 연상의 광부였던 아버지를 만나 열 번의 임신을 하였다․ 넷째로 태어난 딸아이는 두 살 때 홍역으로 단명했고‚ 아홉 번째 임신한 태아는 어머니의 과로로 여덟 달 반 만에 사산을 했다․ 임신과 출산의 경험이 많은 어머니는 해산의 고통을 말도 못하고 주인께 순종한 우직한 일소가 불쌍했다․

음력 정월 초 닷샛날 마을에서 당산제 모시는 이박이일 기간 중 둘째 날이다‚ 어머니는 오늘도 베틀에 앉아 무명베 짜느라 마음 바쁘다‚ 농사철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한다‚ 만삭된 태아도 출산 때가 되었다․

오후의 반나절 배에 뻐근한 통증을 느낀다‚ ‘점심 식사를 잘못 먹었나’ 문득 생각이 스친다‚ 일손을 멈추고 보름달 같은 배를 쓰다듬는다‚ “아가야 부탁한다 하룻밤만 참아라” 뱃속의 아기 알아들었나. 해가 저물기까지 미동도 없다‚ 식구들 모두 저녁 식사를 마치는데 진통이 온다. 어머니는 당신의 신발을 앞부리가 나가는 방향으로 돌려놓고 들어온다. 무사히 해산하고 그 신발 신고 살아 나가길 소원한다‚ 삼신할머니께 기도를 한다. 당산제 끝나는 ‘내일 새벽 세 시 이후에‚ 출산하게 도와주세요.’ 주문을 외우듯 간절히 빈다‚

마을의 당산제는 정월 초하루부터 정성스레 준비를 한다. 윗마을에 있는 아버지 당산나무와 아랫마을에 있는 어머니 당산나무에 부정 출입을 막는 금줄을 한다. 행사에 참여하는 제주와 농악대는 매일 아침 목욕을 한다. 의복도 정갈하게 한복을 차려입는다.

어제 시작한 행사는 내일 새벽 첫닭이 울기 전 축시(丑時;01~03시)까지 계속된다‚ 기간 중에는 마을 사람 모두가 가축 살생도 금하고‚ 신생아 출산도 아니 된단다‚ 부정 시 마을에 흉년이 들고 액운이 든다 하니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이다. 닥쳐올 일에 준비를 한다‚ 네 명의 자녀들에게 작은 방에 잠자리 잡아준다. ‘오늘 밤은 너희끼리 일찍 자라․’ 하신다‚

산통이 심해진다‚ 태아가 움직이고 있다‚ 당산제 모시는 농악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온다. 아랫마을 당산나무에서 어머니 신을 모셔다 윗마을 당산나무 아버지 신과 합방하는 축시까지 오가며 공들이고 있다. 당산나무로 올라간 농악대 다시 내려온다. 농악소리 가까워진다. 아기가 세상에 나올 채비를 한다‚ “아가야 아직은 안 돼.” 산모는 태아를 가두려 힘을 거꾸로 써 본다‚ 아기와 엄마는 태어날 시간을 두고 줄다리기를 한다‚ 깊은 밤 농악소리가 온 마을을 덮는다. 산모는 진땀으로 미역을 감는다‚ 당산제가 빨리 끝나기를 애태우고 있다‚

산모 머리맡에 앉아서 두 손을 잡아주던 아기 아빠도‚ 산모의 진통에 덩달아 힘을 쓴다‚ 밤늦은 농악대‚ 아버지 신께로 올라가는 듯 소리 점점 멀어진다․ 농악이 그치고 마을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마음 놓인 산모 갑자기 졸고 있다. 꾸뻑꾸뻑 졸음에 취하는 순간 아기가 힘을 쓴다․ 산모도 이를 악 물었다․ 아기와 엄마가 마음이 통했다.

세상에 나온 아기 엄마 손에 볼기짝 맞고‚ 대차게 울어댄다. “아들이네” 아버지 말씀 들으며 어머니는 와중에도 아기 탯줄 묶어 자르고 몸을 깨끗이 닦아준다․ 진통 중에도 후산을 정리한다 사경을 헤맨 진통은 이젠 다 잊었다. 닭장의 수탉이 새벽을 알린다. 아기도 힘들었나 꽃잠이 든다.

세상에 날 낳으신 어머니 새근새근 잠든 아기 모습이 천사 같았다고‚ 다음날이면 국민학교에 입학할 나를 앞에 두고 식구들 마주 앉은 호롱불 밑에서 무용담처럼 이야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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