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장의 명소, 본정통 은행가의 대불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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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장의 명소, 본정통 은행가의 대불호텔
  • 김광성
  • 승인 2024.06.1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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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시대 - 김광성의 개항장 이야기]
(10) 1900년대 대불호텔

 

1900년대 은행가가 형성된 개항장의 중심, 본정통(중앙동)의 모습이다.

대불호텔 입구에는 인력거를 타고 오거나 호텔을 드나드는 서양인이 눈에 띈다.

초기 일본식 2층 목조 건물에서 영업을 시작한 대불호텔은

호황을 누리자 지상 3층의 벽돌 건물로 건립한 것으로

외국인을 맞이하기 위한 서양식 호텔로 설계했다고 전해진다.

이 호텔은 선박을 상대로 물자 공급업자로 돈을 번 일본인 호리 리키타로가 세웠다.

호리는 몸이 뚱뚱하여 ‘대불(大佛)’이라 불렸는데

그 별명을 따서 지은 이름이 ‘다이부츠’ 즉, 대불호텔이 되었다고 한다.

 

초기의 2층 목조 건물의 대불호텔을 이용한 서양인들 중

선교사 아펜젤러는 비망록을 남긴다.

‘끝없이 지껄이고 고함치는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들

한복판에 짐들이 옮겨지고 있었다.‘

‘헐렁한 바지에 테가 넓은 모자(갓)을 쓰고

긴 담뱃대 물고, 아이들은 꾀죄죄하고...‘

하나같이 흰옷을 입고 있었다.‘

‘서울 가는 길은 좁고 험난해서...

여자는 가마 타고 남자는 조랑말 타고...‘

미션의 땅에서 선교의 길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아무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과 일반 숙박업계는

초기 호황을 누렸으나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되자

사양길로 들고 말았다.

대불호텔은 1919년 중화루란 이름으로 유명세를 날리다가

1978년 철거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2018년 인천시 중구는 문화재청과 함께 복원,

대불호텔 전시관으로 재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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