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방직 노조탄압 국가배상 판결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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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 노조탄압 국가배상 판결 의미
  • 김재용
  • 승인 2011.10.2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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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김재용 / 변호사


지난 2월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여 8개월 가까이 진행되어온 동일방직노조 사건에 대해 10월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합의 제34부가 동일방직노조 해고 조합원 17명(원고들)에게 각 2천만원씩 배상하라는 원고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2천만원(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은 그동안 부당해고와 관련하여 법원이 인정한 금액 중 가정 많은 금액에 해당한다. 물론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서울중앙지법 민사 합의 제17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지난해 12월 국가를 상대로 배상청구를 제기한 동일방직노조 해고자 22명(원고들)에게 각 1천만원씩 배상하라는 원고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먼저 이 같이 제1심에서 두 재판부가 원고측 손을 들어준 것은 무엇보다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지난 1978년 4월 1일. 동일방직에서 해고된 이래 무려 33년 동안 고통을 받아온 동일방직노조 해고 조합원 124명에게는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판결이라 할 것이다.

물론 같은 사건에 대해 두 재판부가 각자 다르게 배상금액을 인정한 것은 동일방직 사건을 바라보는 재판부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80년대 대표적인 노동조합 탄압인 동일방직 노동조합 와해 사건에 대해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은 지금도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1970~80년대 노조탄압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지난 1970년대는 박정희 유신정권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 위험한 작업환경 등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설립을 통해 노동조건 향상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국가는 이를 경제발전에 저해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노동조합 설립과 활동을 방해하였으며 나아가 노동조합 와해에 개입하기도 한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동일방직 노동조합은 지난 1972년 당시 소위 어용노조를 이기고 민주적인 집행부(주길자)를 세우면서 국가권력기관인 중앙정보부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계속된 민주 집행부(1975년 이영숙, 1978년 이총각)에 대해 중앙정보부가 개입하여 노조 와해공작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1976년 7월 26일 회사와 중앙정보부 사주를 받은 노조 반대파의 노조 와해에 맞서 항의 농성하던 중 경찰의 강제해산에 대해 여성 조합원들이 옷을 벗어 저항한 '알몸시위 사건'이 벌어졌고, 이어 1978년 2월 21일 노조 대의원 선거일에는 새벽에 밤샘작업을 마치고 투표를 하려고 줄을 지어 나오고 있는 조합원을 향해 반대파 조합원들이 똥물을 투척한 소위 '똥물 사건'까지 벌어졌다.

결국 이후 중앙정보부 지시에 의해 1978년 4월 1일자로 동일방직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 124명이 강제해고되었고, 노동조합은 반대파들에 의해 장악되어 민주집행부가 와해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국가권력기관은 전국섬유노동조합(어용노조) 부산지부 지부장 명의로 전국 사업장에 공문을 보내 동일방직 해고자 124명을 소위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시켜 이후부터 전국 어떤 사업장에도 취업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였다. 이로 인해 동일방직 해고 조합원들은 재취업을 할 수 없었고, 설령 취업을 하더라도 다시 블랙리스트로 인해 해고되는 등 생존권까지 박탈당하는 고통을 받았다.   

이후 지난 2006년 4월부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동일방직노조를 비롯해 청계피복노조, 반도상사노조, 원풍모방노조, 콘트롤데이타노조, 서통노조, 한일도루코노조, 무궁화메리야스노조, 태창메리야스노조, 남화전자노조 등 10개 노조에 대한 인권침해사건 조사를 개시하였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2010년 6월 30일 동일방직노조 등에  대해 국가가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하여 당시 노조원들의 노동기본권, 직업선택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을 침해하였고 이는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결정하였다. 

이번 동일방직노조 사건에 대해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지난해 6월 23일 원풍모방노조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제46부가 원고들에게 1천만~750만원을 지급하라고 인정한 판결에 이어 원고들 손을 들어준 판결로서 앞으로 남은 다른 노동사건들에 미칠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다.

그 동안 국가배상청구 사건에서는 국가측에서 주장한 소멸시효항변이 받아들여져 1심, 항소심 과정에서 원고측이 패소하였다가 대법원에서 국가의 소멸시효항변이 권리남용이라는 이유로 배척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이번 동일방직노조 등 사건에서는 1심에서부터 지난해 6월 30일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 결정을 할 때까지는 해고 조합원인 원고들로서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손해배상을 받아낼 것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으로서 객관적 장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면서 국가의 소멸시효항변을 배척하였다. 또 한편으로 노동권과 직업선택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오히려 공권력을 동원하여 국민(해고 조합원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서 손해배상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다고 판단하였는데, 이 같은 재판부의 적극적 판단은 고무적이라 할 것이다.     
         
올해 들어 1950년 6.25 전쟁 당시 발생한 문경 민간인 학살사건과 울산 보도연맹 사건 등이 대법원에서 인정받은 것을 비롯해 1970~80년대 대표적 노동운동 탄압사건인 동일방직 노조탄압 사건과 원풍모방 노조탄압 사건이 1심에서 승소함으로써 과거 반민주·반민중적인 사건들에 대해 새로운 조명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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