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인물 발굴, 선양은 우리의 임무
최근 고려충신 두경승 장군에 대한 영종도 묘역이 지역주민과 인천시민들에 의해 재조명되면서 선양 여론과 함께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두경승(杜景升, ?〜1197)장군은 전주 만경현(현재의 김제시 만경읍) 출신으로, 고려 명종(明宗) 연간에 관직의 최고직위인 문하시중(門下侍中)과 중서령(中書令)까지 오른 인물이다.
『고려사』 등 사료에 의하면 두경승 장군은 1170년 무신정변 시 왕실을 지키는 친위대였던 견룡군의 대정인 초급 청년장교로 무신정변에 참여하지 않고 후덕전을 지키는 본인의 임무수행에만 매진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 후 일어난 최대의 국란인 김보당난과 서경유수 조위총의 난을 애국충절의 정신으로 맞서 무공을 세워 직접 평정하였으며, 여진족의 침입을 회유로써 물리친 충신이자 명장이었다.
두경승 장군은 『고려사』 충신전, 『고려사절요』, 『신증동국여지승람』등에 기록된 고려시대 충신이며, 훌륭한 역사적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술적인 연구가 미미한 점은 후손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앞으로 역사학자들의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역사는 이 땅에서 살아나가는 후세들이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교훈으로 삼는 거울임과 동시에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 인물의 삶과 철학은 그대로 후세가 세상을 살아 가는데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 역사에 존재했던 훌륭한 역사인물을 꾸준히 발굴, 연구하고 후세에 알리며, 선양하는 것은 우리 사회 및 국가의 발전에 필수적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향토문화유산으로 관리되어야
두경승 장군이 영종도에서 생을 마친 후 827년이 지난 지금까지 충신으로 후세인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장군의 애국충절의 정신,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 철저한 군인정신, 부패하지 않은 청렴정신이라고 필자는 생각하며 이와같은 장군에 대한 역사적 교훈과 정신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는 애국충절의 정신이다. 두경승 장군은 최충헌의 독제체제 수립과정에서 자신의 안위보다 불의에 굴하지 않고 임금에게 충의를 다 바친 위국충절의 표상이다. 또한 무신정권시대에 대표적인 문신들과 함께 유교정치 이념에 입각하여 개혁시책을 추진한 중요 인물이었다.
둘째,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이다. 조위총의 난 등 국란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백성을 사랑한 애민정신은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사료의 여러 곳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
1173년(명종 3년) 김보당의 난 평정 시, 이춘부와 함께 반란을 진압하러 갔는데, 포악한 이춘부가 지방 수령들을 많이 죽였다고 한다. 그러자 두경승은 이미 적의 기세가 꺾였으니 관대하게 처분하고, 명백하게 반역의 증거가 드러난 자들만 처형할 것을 권하였다. 이춘부는 이 말을 듣고 두경승이 비겁한 자라 여겼으나, 그 말을 따랐다. 그 후 두경승의 관용에 감화된 남부 사람들은 기꺼이 중앙 정부의 방침을 따르며 안정을 찾아갔다.
1174년 서경유수 조위총의 난 평정 시, 휘하 사졸들이 재화와 보물을 약탈하려 하자 두경승은 군령을 내려 금지시키고 가마솥을 가져가는 것만 허락했다. 두경승의 관용과 신망이 널리 알려지자, 차츰 서경 사람들 가운데 그에게 투항하는 자들이 늘어났다.
셋째, 무인의 정도를 걸은 무장이다. 장군은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발휘하며, 우직하게 무인의 길을 걸었던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무장이다. 무인의 정도를 걸은 표상은 후세에 높은 평가와 함께 귀감이 되고 있다.
넷째, 부패하지 않은 정직함과 청렴정신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는 두경승 장군의 무인으로서의 강직함과 정직한 성정(性情)을 기록하고 있다. "만경현(萬頃縣) 사람으로 성품이 질박하고 정직하며 너그럽고 후했으며 문재(文才)는 적었으나 용기와 기력이 있었다"고 하고, 정중부의 난(1170) 때에 무인들 가운데 남의 재물을 탈취하는 자가 많았는데 두경승은 홀로 후덕전 문을 떠나지 않고 털끝만큼도 범하지 않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인물인 두경승 장군의 남아있는 유적은 유배지인 영종도에 있는 묘역과 사당뿐이다. 영종도 두경승 장군의 묘는 고려 무인집권기 시대상과 그 흔적을 증언해주는 귀중한 역사유적으로 다수의 학자 및 전문가들에 의해서 평가되고 있다.
두경승 장군의 묘역은 인천광역시 및 영종도 지역사회에서도 역사성 및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적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조속히 향토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