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인욕 존천리'(遏人欲 尊天理) 사상과 초심, 열린 사회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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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인욕 존천리'(遏人欲 尊天理) 사상과 초심, 열린 사회의 필요성
  • 윤대기
  • 승인 2024.08.22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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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윤대기 / 변호사
'알인욕 존천리'(遏人欲 尊天理). 사진 출처 - 옥산(玉山) 강선구 서예가 블로그
遏人欲 尊天理(사진 출처 - 옥산(玉山) 강선구 서예가 블로그)

 

인류의 역사에서 수많은 사상, 종교, 정치 체제가 등장해 왔다. 각기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출현한 이들은 모두 인간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 시도였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공통된 목표가 있다. 바로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고,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기초는 동양의 유교에서 강조된 "알인욕 존천리(遏人欲 尊天理)" 사상에 잘 드러나 있다. 알인욕 존천리란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절제하고, 하늘의 이치(천리)를 존중하며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도덕적 완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질서 유지에도 중요한 원리로 작용해 왔다.

인간의 욕망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이다. 인간의 욕망은 때로는 발전의 동력이 되어왔으며, 이를 통해 인류는 많은 혁신과 발전을 이루었다. 개인의 욕망은 더 나은 삶을 향한 추동력이 되었고,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적, 기술적, 문화적 성장을 이끌어냈다. 예를 들어, 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이나 자동차를 대중화한 헨리 포드의 경우, 개인적 욕망이 사회적 혁신과 발전으로 전환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렇듯 욕망은 인간의 진보와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욕망은 그 자체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욕망이 과도하게 기득권화될 경우, 그것은 더 이상 발전의 원동력이 아닌 발전의 걸림돌로 변할 수 있다. 기득권화된 욕망은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나 변화를 억압하려 한다.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영역에서 나타나며, 이는 사회의 정체와 혼란을 야기한다. 부부 사이에서도 각자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듯, 사회 내에서도 개인이나 집단 간의 욕망이 충돌할 때, 기득권화된 욕망은 변화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인욕 존천리 사상은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초월하여 더 높은 도덕적 이치와 사회적 질서를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철학적 사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원리다. 예를 들어, 서양 철학에서 플라톤은 인간의 욕망이 감각적 세계에 대한 집착을 불러일으키며, 이로 인해 진정한 지혜를 추구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욕망을 극복하고 이상적 세계인 이데아로 나아가는 것을 강조했다. 반면 동양의 유교에서는 인간이 욕망을 절제하고 하늘의 도리를 따르는 것이 군자(君子)의 삶이라고 가르쳤다. 이처럼 모든 철학적 사상은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고,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종교 또한 알인욕 존천리 사상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불교는 인간의 고통이 탐욕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행을 강조한다. 탐욕은 인간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인간은 계속해서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 역시 욕망을 절제하고 신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구원의 길로 제시한다.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죄를 짓게 되며, 이를 통해 신과의 관계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슬람교에서도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고,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중요한 신앙의 실천으로 강조된다. 이러한 종교적 가르침들은 모두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초월적 존재에 복종함으로써 더 높은 질서를 추구하는 삶을 살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정치에서도 알인욕 존천리 사상은 중요한 덕목으로 작용한다. 정치란 본질적으로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고,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활동이다.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사적 욕망을 절제하지 못할 때, 그 결과는 항상 사회적 혼란과 부패로 이어진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더 높은 공적 질서를 존중하는 지도자는 사회를 안정시키고 발전으로 이끌 수 있다. 이는 고대 중국의 왕도정치(王道政治)에서부터 현대 민주정치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정치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이상은 자주 망각되기 쉬우며, 권력 남용과 부패로 인해 초심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초심을 되돌아보고, 권력의 본질적 목적을 되새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열린 사회가 필요하다. 열린 사회란 다양한 아이디어와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닌 사회를 의미한다. 기득권층의 욕망이 지나치게 강하게 자리 잡으면, 혁신이나 개혁은 어려워지며 사회 발전은 정체된다. 열린 사회는 이러한 기득권화를 방지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열린 사회에서는 개인과 집단의 욕망이 서로 충돌하더라도,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는 사회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정한 경쟁, 법적 보호, 평등한 기회 제공 등은 열린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들이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은 비단 정치 지도자들에게만 중요한 과제가 아니다. 사상가나 종교 지도자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이 처음 가졌던 순수한 목적을 망각하고, 개인적 욕망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초심을 지키는 것은 모든 인간 활동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작용한다. 초심이란, 처음 가졌던 순수한 마음과 목적을 뜻한다. 정치, 종교, 사상의 모든 시작점에서 그들은 초심을 통해 알인욕 존천리의 이상을 따르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과 명성, 물질적 유혹 앞에서 초심을 잃을 위험이 커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초심을 되돌아보고, 그 출발점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초심은 결국, 알인욕 존천리 사상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정신적 기반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많은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문제들은 결국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난 경우가 많다. 기득권층의 욕망이 사회적 변화를 가로막고, 발전을 저해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과 지도자들이 초심을 되돌아보고, 알인욕 존천리의 가르침을 다시금 성찰할 필요가 있다. 열린 사회를 만들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것, 이것이야말로 보다 조화롭고 도덕적인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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