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삼매경' 대 '독서 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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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삼매경' 대 '독서 삼매경'
  • 윤세민
  • 승인 2011.10.2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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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윤세민 교수 / 경인여대 교양학부(시인, 문화평론가)


하늘은 높고 푸르고, 가로수 잎은 어느새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간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절로 옷깃이 여미어지기도 한다. 가을이다. 흔히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가을의 날씨나 정취나 분위기가 그만큼 책 읽기에 좋다는 것일 테다.

그런데, 아쉽게도 요즘 가을엔 ‘책 읽는 풍경’을 보기가 매우 어렵다. 가을 공원 벤치에서도, 커피숍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거의 볼 수 없다. 대신에 너무 흔하게 보는 풍경은 ‘스마트폰 삼매경’이다. 이제 ‘독서 삼매경’이란 말은 알아듣기 힘든 무슨 고어처럼 된 지 오래다.

누구나 휴대폰을 소유하는 시대가 되었다. 휴대폰의 첨단인 스마트폰은 영상통화나 문자메시지는 물론, 디지털카메라, MP3, DMB, 게임, 인터넷, 네비게이션 등 첨단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 TV와 컴퓨터에 잔뜩 길들여진 영상세대에게 스마트폰만큼 생활의 이기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스마트폰의 애용만큼이나 독서는 저만큼 멀어져가고 있음을.

미디어 생태학(media ecology)은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들의 보급과 함께 인터넷의 단문(短文) 정보나 화보와 TV 영상물 등의 범람으로 독서환경이 오염되어 점차 독서인구가 줄어들고 출판산업이 침체되는 것을 경고해 왔다. 일찍이 Huxley는 이미 1932년에 출판된 자신의 공상소설 <아름다운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케 하고, 기술숭배가 인간의 사고력을 황폐화시키고, 언젠가는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될 미래”를 우려한 바 있다.

역시 미디어 생태학자인 Postman은 “단문장(短文章)의 인터넷과 영상에 길들여지는 영상세대가 ‘활자읽기’를 멀리함으로써 성인이 어린이화되는 ‘Peek-a-boo-World’(‘까꿍의 세계’)를 형성하게 되고, 간단하고 안이할수록 합리적이라는 오도된 가치관에 지배되는 것”을 우려해 왔다.

이런 오도된 가치관에 지배되고 있는 영상세대는 하기 싫은 걸 참고 지속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에 집중하는 인내심이 턱없이 부족하며 논리적인 사고에 몰입하는 걸 체질적으로 거부하는 ‘make-it-easy’의 단순성에 길들여져 있다.

선(先)과 후(後)가 있고 상(上)과 하(下)가 있는 활자세대의 종적인 인식방법 대신에, 영상미디어들에 길들여진 영상세대는 이것이나 저것이나 동일하다는 횡적인 인식방법을 갖고 있다. 따라서 영상세대의 풍조에는 남녀의 경계도 흐려져서 유니섹스(unisex)적 사고가 나타나게 되고, 아버지는 돈 벌어 대는 사람, 어머니는 밥 지어 주고 빨래해 주는 사람, 그리고 선생은 가르치는 나이 많은 사람일 뿐이다. 이들에게 기성세대는 더 이상 윗사람인 아닌 것이다. 따라서 위계질서나 도덕은 이들에게 거추장스러운 것으로서 저항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상미디어와 소셜미디어로 이루어진 소통의 확대와 민주성, 다양성, 자유성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그러한 민주성, 다양성, 자유성에도 나름의 품격과 책임의식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멀지 않아 ‘이기적 인간’을 양산하며 인류에게 오히려 크나큰 짐을 지울 것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TV를 보면서도 얼마든지 잡담하고 문자하며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그만큼 쉽고 편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 읽기는 어떠한가. 오로지 독서 외에 다른 일을 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왜 그런가? 그만큼 몰입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매체가 우리에게 상상과 창의력과 지식과 지성을 선사할 것인가? 영상미디어처럼 단순히 시각과 청각만을 사용하는 환경에서는 창의력은 그 자생력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문자를 바탕으로 한 출판은 창의력을 배양하는 데 지금까지 인류 역사가 개발해 낸 매체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분야이다. 왜냐하면, 문자를 통한 책 읽기는 인간에게 사고와 상상의 기회를 주며 더 나은 감각과 창조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질 것인지, ‘독서 삼매경’에 빠질 것인지는 당연히 독자의 몫이다. 그래도 강권하고 싶다. 이 가을 다하기 전에 적어도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읽어 보자고. 그래서 점점 우둔해지는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가을바람처럼 선선하게 적셔 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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