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영화의 개념과 탄생’
- 윤세민 / 경인여대 영상방송학과 교수. 시인, 평론가, 예술감독
최근의 극장계는 한산한 편이다. 그만큼 주목을 끄는 작품이 없다는 얘기다. 곧 추석 대목을 앞두고 몇몇 작품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예년만큼 기대작이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지난번 22회에서 소개한 영화 <파일럿> 이후 이 ‘영화 산책’ 공간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윤세민의 영화산책] 취지와 목표
[윤세민의 영화산책]은 우리 모두의 친숙한 친구이자 소중한 추억인 영화를 제대로 읽어 주고 보여 주고 나누어 주며, 영화가 주는 진짜 재미와 진짜 감동을 느끼게 해주자는 취지와 목표로 출발했다. 그래서 그동안 최신 개봉 영화를 중심으로 이런 취지와 목표를 살려 나가고자 했다. 또 당시 화제를 모으거나 딱히 추천할 만한 영화가 부재 시에는 나름의 주제와 소재를 갖춘 명작을 소개해 왔다. 이런 시도가 나름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1년 여를 독자와 함께 영화 산책을 진행해 왔다.
이제 고마운 독자들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한다.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되, 위에서 얘기했듯 딱히 화제를 모으거나 추천할 만한 영화가 부재 시에는 나름의 주제와 소재를 갖춘 명작 소개 외에 별도로 ‘영화의 이해와 감상 노하우’를 전하고자 한다.
영화는 재미있다. 때론 감동도 준다. 그렇다. 우리가 영화를 즐겨 본다는 건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에 바로 매력 포인트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 흥행몰이를 하는 영화엔 이 재미나 감동이 듬뿍 담겨 있기 마련이다. 명작으로 불리는 영화는 더욱 그렇다. 재미와 감동은, 실히 영화의 덕목인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왜 재미와 감동을 주는 걸까? 아니 영화는 어떻게 재미와 감동을 담으려 애쓸까? 또한 우리가 영화를 보며 단순히 접하는 재미와 감동 외에, 우리가 그냥 흘려보내고 또 번번이 놓치고 만 숨은 재미와 감동도 있지 않을까?
바로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한다. 가장 친근하면서도 왠지 모르는 구석도 많을 것 같은 영화라는 미디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적잖게 영화를 접하게 되는데, 이왕이면 이 영화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또 감상의 포인트와 노하우도 익힌다면, 전혀 다른 새로운 영화를 만나지 않겠는가.
결코 어려운 영화 용어나 문법을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가능한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한다. 그래서 일반 독자(관객)들이 제대로 몰랐던 영화에 대한 이해, 또 영화, 특히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감상 노하우를 차근차근 전달하고자 한다.
영화의 개념과 범위
오늘은 영화에 대한 기본 이해를 갖도록 하자. 영화는 무엇이고, 어떻게 탄생했는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영화(映畵 / Film, Movie, Cinema)란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활동하는 대상을 촬영하여 프로젝터(영사기)로 영사막(스크린)에 재현시키는 종합 매체요 종합 예술이다. 여기서 ‘일정한 의미’와 ‘활동하는 대상’이란 건, 영화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아무거나 막 찍는다는 게 아니라 한 편의 영화 작품을 만들기 위한 ‘기획과 대본(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여 주로 ‘인물(배우)’를 촬영한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촬영의 대상에는 인물을 강조하기 위한 또 영상 미학을 살리기 위한 사물과 풍경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프로젝터(영사기)로 트는 영상매체를 이른다. 따라서 광의의 영화에는 극장판,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극장에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도 모두 속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영사기로 틀 의도 하에 제작한 영상들은 이후 스크린 외의 어떤 매체를 통하더라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대신에 영사기 대신 전파로만 방영되는 방송 영상, 인터넷으로 보급되는 일반 UCC 같은 건 영화라 할 수 없다. 다만, 요즘은 굳이 극장을 가지 않더라도 유튜브,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왓챠 등 플랫폼을 이용한 영화 감상도 늘어나기에, 이에 대한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기도 하다. 굳이 구분하자면, 그 이용 형태에 따라 극장 영화와 플랫폼 영화로 나눌 수 있다.
영화의 발명과 탄생
영화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시작되고 또 어떻게 흘러 오늘에 이르렀을까?
인류는 일상에서 순간으로 접하는 인물과 사물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이미지로 재현하고픈 욕망이 컸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사진’(寫眞, photography)이다. 사진은 자연의 빛이나 인공적 발광을 이용해 감광성 물질(건판이나 필름) 위에 또는 디지털 메모리에 찍히는 대상(피사체)의 반영구적인 영상(影像)을 기록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다. 원래 사진은 회화의 복제 수단으로 그 발명의 실마리를 제공했는데, 이후 미술과 영화와 TV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류의 이미지 재현 욕망은 사진으로 그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단속의 고정(스틸, steel) 사진을 넘어 움직이는 연속적인 사진을 원하기 시작했다. 바로 ‘동영상’(動映像)이다. 사진이 영상이 움직인다, 연속으로 흐른다? 바로 ‘영화의 시작’이다.
‘발명의 아버지’ 에디슨은 1894년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라는 필름 동영상 재현 장치를 발명한다. 이어서 프랑스의 사진 기술자인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촬영기와 영사기를 발명해, 드디어 인류 최초로 (상업)영화를 만들어 상영하기에 이른다.
최초의 영화 상영과 표현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상영된 50초 분량의 흑백 무성 영화 <기차의 도착>. 영화의 내용은 상당히 단순해, 기차역에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이 오르내리는 장면의 연속일 뿐이다.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찍어 담아낸 다큐멘터리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렇지만 사실을 그대로 담아냈고 또 난생 처음 접하는 영화였기에, 시사회장의 사람들은 화면상의 기차가 실제로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걸로 착각해 혼비백산 비명을 지르고 뛰쳐나가는 소동이 나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이어서 프랑스의 마술사이자 영화 제작자인 조르주 멜리에스가 초창기 영화제작 기술과 장르 발전을 이끈다. 멜리에스는 여러 가지 특수효과 개념을 고안해 영화에 도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중에는 정지 트릭(화면 씬을 끊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 다중 노출, 타임랩스 기법, 디졸브 기법, 채색 수작업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으로 영화 제작에 스토리보드를 활용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멜리에스의 대표작으로는 <달세계 여행>(1902년), <불가능한 여행>(1904년)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쥘 베른의 소설처럼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여행을 다룬 작품들로서, 최초의 공상과학 영화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뤼미에르 형제가 있는 그대로의 재현에 치중했다면, 멜리에스는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연출에서의 역량뿐 아니라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도 꿋꿋이 개인적인 비전과 개성이 담긴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는 대표적인 작가주의적 성향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할리우드 특유의 자본주의적 성향을 이겨내며 본인만의 스타일을 잃지 않는 감독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영화의 길로 인도한 이가 바로 조르주 멜리에스임을 고백하며, 멜리에스를 기리며 만든 영화가 바로 <휴고>(2011년)이다. 스코세이지는 <휴고>에서 멜리에스 감독의 영화사적 의미를 담아내며, 영화의 탄생과 의미를 지혜롭게 전하고 있다. 그 속에서 위에서 말한 <기차의 도착>에서 사람들의 혼비백산 장면을 절묘하게 오마주하고 있기도 하다. 이를 찾아 지켜보는 것도 영화의 탄생 역사와 그 의미를 새삼 새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