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서 농어촌으로 '유학'… 강화·옹진의 실험
상태바
도시서 농어촌으로 '유학'… 강화·옹진의 실험
  • 연합뉴스
  • 승인 2024.09.14 1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박 6일 '말랑갯티학교'…말 타고 활 쏘고 갯벌 체험까지
강화·옹진군 잇단 폐교 적신호…'소멸 고위험' 극복 대안 관심

지난 2일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삼산초등학교.

전교생이 11명에 불과한 학교에 '농촌 유학생' 7명이 옹기종기 모습을 드러내자 교정은 한층 활기를 띠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던 아이들은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웃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인천만의 가족 체류형 농촌 유학인 '말랑갯티학교'가 첫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강화군 삼산초 승마 체험 [인천시교육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표정부터 밝아져"…'학원 뺑뺑이' 벗어난 아이들

인천시교육청이 운영하는 말랑갯티학교는 도시 학생이 가족과 함께 농어촌 마을에 머물고 현지 학교에 다니면서 생태 친화적 교육을 지원받는 농촌 유학 제도다.

이달 초 강화군 삼산초를 시작으로 하점초와 옹진군 영흥초 등지에서 학교별 상황에 맞춰 5박 6일간의 말랑갯티학교가 열렸다.

이 기간 학교 수업은 승마·활쏘기·갯벌 체험과 고인돌유적·평화전망대 견학 등 도시에서 접하기 힘든 교육 활동으로 알차게 채워졌다.

학생들은 농작물을 직접 수확하거나 서해 갯벌에서 뛰놀며 자연과 함께 어우러졌고 짧은 시간에 깊은 친밀감을 쌓았다.

가족 체류형 농촌 유학답게 교육 당국의 숙소비 지원으로 온 가족이 함께 생활할 수 있고 방과 후에는 자유로운 관광도 가능하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평소 '학원 뺑뺑이'를 마치고 귀가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검단에 사는 학부모 박경희(41)씨는 "아이가 포도를 따고 고구마도 캐면서 무엇보다 흙과 가까운 곳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점이 좋았다"며 "기회가 있다면 자비를 들여서라도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초등생 자녀 2명을 키우는 허미란(38)씨는 "그동안 시댁과 친정이 모두 인천 도심에 있어 농어촌 생활을 겪기 어려웠다"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소중한 체험을 하며 아이들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고 말했다.

인천시교육청은 지난 6월 강화군 9개교, 옹진군 3개교 등 12곳을 말랑갯티 중심 학교로 선정했다.

참여 가족 선발 과정에서 80가족 모집에 181가족이 몰리며 시작 전부터 학부모와 학생들에게서 큰 관심을 끌었다.

 

옹진군 영흥초 갯벌 체험[인천시교육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옹진군 영흥초 갯벌 체험[인천시교육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위기를 기회로…작은 학교 살리는 '농촌 유학' 실험

말랑갯티학교는 인천의 농어촌 학교들이 처한 위기를 극복할 해법으로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다.

강화·옹진군은 학령 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받아 매년 초등학교 입학생이 줄고 폐교 위기가 지속되는 지역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강화군과 옹진군의 소멸위험지수는 각각 0.163과 0.194로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지방 소멸 위험 신호는 최근 5년간 두 지역의 초등학생 현황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강화군의 경우 전체 초등생 수가 2019년 2천431명이었으나 2023년 2천84명으로 14.2% 줄었고 옹진군은 2019년 616명에서 2023년 486명으로 21.1% 감소했다.

인천 전체 초등생 수가 같은 기간 불과 3.5% 감소한 점을 고려할 때 같은 지역 안에서도 도시와 농어촌이 처한 상황이 달랐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인천의 농어촌 학교 5곳이 폐교했고 2곳이 신입생을 받지 못해 휴교 중이다.

인천시교육청은 도시와 농어촌이 공존하며 학령인구 과밀과 부족의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는 인천의 특성을 활용해 농촌 유학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농촌 유학 체계를 확립하면 행정상 갈등이나 비용 부담 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강화군과 서해 갯벌 등 천혜 자연을 품은 옹진군 일대는 역사·문화·생태 기반 교육에 최적화된 장소였다.

 

강화군 삼산초 포도 따기 체험[인천시교육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강화군 삼산초 포도 따기 체험[인천시교육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장기 체류도 확대…"지방 소멸 극복 구심점 되겠다"

인천시교육청이 지난해 학부모·학생·교직원 2천2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농촌 유학 인식 조사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조사 결과 도시에 사는 학부모 77.6%와 교직원 69.6%가 가족 체류형 농촌 유학 운영에 동의했다.

농어촌에 거주 중인 학부모 78.8%와 교직원 70.2%도 가족 체류형 농촌 유학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또 신규 학생이 유입될 경우 폐교 위기에 놓인 소규모 학교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인천시교육청은 설문조사와 함께 정책연구용역 등을 토대로 인천형 농촌 유학 프로그램 '말랑갯티학교'를 기획했다.

말랑말랑한 갯벌의 감촉이 지닌 유연함과 넓은 해안선 둘레의 갯벌 공간을 뜻하는 인천의 방언 '갯티'를 접목한 이름이다.

인천시교육청은 내년부터 농촌 유학 모집 인원과 체류 기간을 확대해 도시와 농어촌 간 교육 교류의 폭을 넓혀가기로 했다.

또 신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동시에 강화·옹진군과 정주 여건을 개선 방안을 마련해 안정적인 농촌 유학 체계를 확립할 계획이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14일 "농촌 유학을 위한 안정적인 체류 여건이 마련되면 소규모 학교는 물론 지역 활성화에도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지방 소멸 극복의 구심점이 되도록 말랑갯티학교를 정착시키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갯벌 생태 교육(사진=연합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