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남동구 만수3동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먼 산 바라보듯 서늘한 저녁을 기다렸건만 다시 좀 지나가겠다고 여름이 추석을 대신했던 것 같다. 긴 고온다습한 날씨와 의료대란에 건강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을까 걱정했다. 비가 많이 내린 뒤로 슬며시 부는 가을바람이 너무나 반갑다. 이제부터는 가을 감성으로 생활 스타일을 바꾸어 보고자 한다.
올해 추석 명절은 내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 같다. 차례 문화가 상당히 줄고 여행 및 외식을 즐기는 문화로 바뀌는 모습인데, 상황이 어떻든 모두들 변화의 회오리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저출산이 시대적 문제인데 한편으론 과잉보호도 문제고, 어지러운 정치 형국도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청정한 장소를 찾아 만수동으로 향했다.
만월산터널 요금소 우측은 만수3동이다. 지난 2007년부터 도롱뇽마을로 알려져 있다. 만수산(201m) 아래 완만한 구릉지에 자리 잡은 마을은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도시 민초들의 보금자리다. 단독 및 다세대 주택과 빌라 등이 많고, 아파트가 낮은 집들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마을을 관통하는 540번 버스의 차고지가 마을 꼭대기 만월쉼터 앞에 있다. 홍수라도 난 것인지 기다란 가래떡 같은 마을길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아직도 아련한 지난 삶들의 흔적과 텁텁한 세월의 상상을 더할 수 있었다.
인동초에서 벽산아파트를 지나 요금소 입구를 한 번 둘러보았다. 추석 연휴 기간 동안 통행료는 무료였다. 요금소 아래 벽산아파트는 과거 부평은광에서 폐수가 모이던 장소이기도 했다. 은광의 시대는 1987년에 끝이 났고, 2000년부터 햇빛촌이 되어 빛나던 시절을 대신해 나가고 있었다. 해는 골고루 잘 비추어지고 있다.
동네 곳곳에 복지 공간들 또한 많았다. 옹벽도 자주 만나게 된다. 깎인 절개지에도 집을 짓고 생명은 넘쳐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청정지역에서만 산다는 도롱뇽의 존재가 새삼 반갑게 느껴진다.
영업은 더 이상 하지 않지만 간판격으로 남은 상호, 차고지, 도롱뇽 서식지인 개울, 고전미가 가득한 시옷자 모양의 성당, 동네 아지트일 것이 분명한 이・미용실 등이 경사지 마을의 경사각을 낮춰 주었다. 빼곡한 주택가 사이 골목은 여름날 숨 막히기도 하겠지만, 중국집의 탕수육 냄새는 답답함의 해법처럼 발걸음을 당기며 유혹한다.
만수3동은 '만삼이네'로 불리고 있었다. 마을 상부 도롱뇽 서식지로 오르는 곳에는 만월쉼터가 있어 마을 주민들의 체력 증진과 휴식의 광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마을 안에는 이렇게 '안전지대'가 많아져야 할 것이다. 이전에는 이곳이 험악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마을 옆은 향촌지구다. 오래전 철거민 투쟁이 있던 곳으로 아는데, 지금은 번듯한 아파트 도시촌이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삶의 터전도 바뀌어 가는 건 순리인 듯하다. 기존의 길과 건물이 새롭게 단장되어 간다. 전국에 빈집이 많지만 새집 또한 많은 현실은 어찌 바라봐야 할지. 땅과 자원을 향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또 무슨 이치일지 궁금한 대목이다.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인근 만수시장에도 오랜만에 들러 보았다. 추석을 앞둔 시기라 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명절 분위기를 낸다고 떡집에서 송편을 사서 먹었다. 삼색의 송편을 번갈아 먹으며 태양처럼 크고 밝은 달님에게 가족과 사회, 세상의 평화를 기원해 보기도 했다.
엉덩이 무거운 더위와 재빠르게 지나간 추석을 뒤로하고 한 해의 결실을 나누며 감사해야 할 시기다. 어지러운 정국이지만 만삼이네 동네길은 더위를 빼더라도 진국이었다. 해 잘 드는 경사지에서 빨간 벽돌이 햇볕에 잘 마르고, 질퍽했던 시절의 이야기도 이젠 잘 건조되어 추억으로 남았다. 전국 각지에서 은을 찾아온 노동자였거나 이농을 한 농부였거나 피난 온 사람이거나 철거민이었거나 서로가 다른 조건에서 한 마을을 형성해 지내 온 시간들. 만삼이네의 마을 잔치가 진짜 소문난 잔치였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공룡이 아닌 도롱뇽들이 맘껏 살아가는 만수산 아래 만삼이네 마을의 평화를 엿보며 마음이 한결 청정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