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가 저를 되짚어볼 수 있는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글의 내용이 마치 저를 보는 듯해 마음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전해드리겠습니다.
“학생, 저 지갑 좀 주워줄래?”
신호 아버지는 나이가 많은 노인을 부축하며 육교를 내려가다가 지갑을 떨어뜨렸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학생이 있길래 부탁했는데, 아니, 그 학생은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요?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아니었더라면 지갑을 주우려고 하다가 노인과 함께 넘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아이고, 요즘 학생들은 왜 이렇게 예절이 없는지 원!”
신호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노인을 부축해 그의 집에 모셔다드렸습니다. 마침 오늘이 신호의 생일이라서 급히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까 육교에서 그냥 지나친 그 학생이 신호 옆에 앉아있는 게 아닌가요? 지금 말하면 그 학생이 창피해할까 봐 괘씸한 생각을 참고 신호를 조용히 안방에 부른 다음에 물었습니다.
“저기 있는 친구들 다 좋은 친구라고 네가 말했었지? 신호야, 네 옆에 앉아있는 녀석은 어떠니? 착하니?”
“네. 정말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데요, 좀 안타까워요. 듣질 못하거든요.”
그제야 신호 아버지는 아까 그 학생이 그냥 지나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모른 채 그를 의심해서 너무도 미안했습니다. 신호 아버지는 방 틈으로 아이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있는 그 학생을 쳐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습니다.
“얘야, 의심해서 미안하구나.”
그래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하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알고 나면 과거에 했던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상대를 알게 되면 그를 이해하게 되고, 이해한다는 것은 곧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인정하는 것이 곧 그를 ‘배려’하는 것이고, 배려를 통해 상대는 마음을 열고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는 더욱더 돈독해질 겁니다. 그러면 소통도 잘 되겠지요.
《성공하는 사람들의 유머 테크》(이상근)에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얼마나 상대를 배려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사례가 나옵니다.
1854년, 유명한 소설가 디킨즈의 집 앞에 마차 한 대가 멈추더니 온화하게 생긴 40대 외국인이 내렸습니다.
“선생님, 먼 길 오시느라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손님보다 일곱 살이나 아래인 주인과 온 가족은 그를 진심으로 환영했습니다. 그 손님은 바로 유명한 덴마크의 동화작가인 안데르센이었습니다.
안데르센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장화를 벗더니, 그 속에 깊이 감춰둔 시계와 지갑을 꺼냈습니다. 그것을 보고 디킨즈가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안데르센이 말했습니다.
“요즘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려면 ‘날쌘돌이 다저’를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소문이 들리더군요. 그래서 제가 목숨처럼 아끼는 물건들을 장화 속에 숨겨서 갖고 왔지요.”
‘날쌘돌이 다저’는 자신을 초청해준 디킨즈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 나오는 소매치기의 이름입니다. 디킨즈로부터 초대받은 안데르센은 그 소설 주인공 이름을 이용하여 자기도 당신의 애독자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이런 재밌는 연극을 꾸몄던 겁니다.
안데르센의 행동이 사소하고 엉뚱한 것 같지만 상대를 헤아리는 배려가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을 오래도록 꽃피우게 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