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장 어귀에서
(4)쫄면은 왜 쫄깃할까?
필자가 인천에서 처음 쫄면을 접한 것은 1980년대 초부터이다. 인천 중구 인현동에 있던 ‘맛나당’이라는 분식집이었다. 당시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맵고, 질기고 그런 음식이었다. 맛나당과 같은 분식점인 만복당, 명물당, 대동학생백화점 분식 코너 등도 인현동 골목에서 나름의 단골층을 형성하면서 자리잡고 있었다.
1998년 인천여자중 · 고등학교와 2001년 축현초등학교의 연수동 이전으로 학생수가 급감하였고 1999년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건으로 인현동 분식점이 대부분 사라졌다. 더불어 인천 쫄면의 성지들도 사라졌다.
당시 쫄면에 대한 기억은 ‘맛나당’이었고 맛나당 뿐 아니라 모든 분식점마다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있어 여학생들은 쫄면과 아이스크림을 같이 즐겼다. 입안의 매움을 차가운 달콤함으로 달래는 조합이었다.
그런데 쫄면은 어떻게 등장했을까? 요즘은 누구나 자장면의 출발이 인천임을 인정하듯이 쫄면도 인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쫄면이라는 단어를 인터넷에 키워드로 검색하면 제일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광신제면’, ‘맛나당’이다.
쫄면의 유래에 대해 최근의 인터넷 자료를 보면 3가지로 정리된다.
1. 쫄면은 1970년대 인천 중구 경동 광신제면에서 시작된다. 광신제면에서 냉면 면을 뽑다가 사출 구멍을 잘못 써서 굵은 면발이 나왔는데(처음에는 ‘사출기 구멍을 잘못 조절해서’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장이 이렇게 바뀌었다) 버리긴 아까워서 이웃 분식집 맛나당에 공짜로 주었고 맛나당 주방장인 노승희가 고추장 양념에 비벼서 만든 게 쫄면이다.
2. 삼성식품 공업사를 운영하며 1970년 3월경 인천광역시 남구청에서 면류 제조업 1호로 허가를 받은 정돈시 설이다. 쫄면 면발은 실수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존재하였고 그 이름을 쫄면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밀가루 도매업을 하던 정돈시가 중국인 필의 면 가게를 인수하고 인현동에 소재한 맛나당에 면을 제공하고 주인의 고추장 양념이 더해져 팔기 시작하였다. 처음 시식해 본 학생들은 질기고 쫄깃하며 고무줄 같은 국수라고 하는 등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질기고 쫄깃한 것은 맞으니 쫄깃한 면이라는 의미를 살려 쫄면이라 이름을 붙였다.
3. 그동안 알려진 것과 달리 광신제면 직원의 실수가 아닌 쫄면은 노력과 연구의 결과다. 쫄면을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광신제면의 직원들이 뚝뚝 끊어지는 국수 면발에 ‘탄력’을 주려고 했고, 거듭된 노력 끝에 만든 것이 바로 쫄면이다.
인터넷은 다양하고 많은 정보들을 빠르고 편리하게 제공하지만 한편으로 오류의 확대 재생산의 속도와 위력은 대단하다. 왜곡의 심화를 부추긴다.
누군가 잘못 처음 기술한 내용이 사실관계의 확인이나 검증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무책임하게 퍼다 자기 것처럼 사용하다 보니 어느 것이 원본이고 사본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또 오류에 대한 고증이 없기 때문에 많이 설명되어지는 것이 사실처럼 굳어지게 된다.
쫄면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쫄면이야기를 이렇게 톱아보기를 하는 것은 쫄면이 가지고 있는 그 위상을 훼손하거나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쫄면은 이제 온 국민과 세계인들도 즐겨 찾는 맛있는 음식이다. 맛있으면 그만이지 머 그리 중요하다고 하기는 하지만...
쫄면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나름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맛을 내는 면류로 자리잡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2년 일본 신주쿠 백화점에서 열린 ‘월드컵맞이 한국문화 페스티벌’에서 인천 쫄면은 전주 비빔밥, 부산 동래파전과 더불어 한국 대표 음식으로 꼽히기도 하였다.
이제 쫄면의 유래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 광신제면의 사출기는 어떻게 조절하였을까?
어떠한 연유로 쫄면이야기에 광신제면이 먼저 등장하는지 대해서 필자는 아는 것이 없다. 다만 광신제면은 쫄면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전부터 존재하던 냉면을 만드는 제면공장이었다. 광신제면의 직원이 냉면 사출기 구멍을 잘못 조절해서 면발이 굵은 지금의 쫄면과 같은 면이 나왔다고 하지만 냉면 사출기(체)는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고정된 크기의 구멍이 뚫려져 있다. 문장의 모순을 의심하지 않고 이야기하다 제면기 사출기는 구멍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문장을 수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쫄면과 관련하여 광신제면에서 뽑은 면발의 등장 과정은 마치 ‘포스트 잇’의 서사와 같은 방식으로 그럴듯하게 포장이 되면서 전후 맥락보다는 실수가 빚은 명작이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알려졌다.
부차적이기는 하지만, 공간상의 문제로 광신제면에서 이웃에 있던 맛나당에 잘못 나온 면을 주었다고 하는데 광신제면(인천 중구 참외전로158번길 5)은 경동에 있고 맛나당은 인현동에 위치하고 있다. 과장된 표현을 한다 하더라도 맛나당은 앞집에 있던 분식집일까? 게다가 현재의 광신제면 주인도 쫄면이야기에 나오는 당시의 주인이 아니다.
* 쫄면은 왜 쫄깃할까?
쫄면은 냉면과 마찬가지로 쫄깃한 이유가 숙면으로 사출기를 통하여 나오는 과정에서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탄성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냉면은 만드는 과정에서 메밀과 다른 원료를 섞어서 만들지만 쫄면은 원료가 밀가루 그 자체뿐이다. 그럼에도 쫄깃한 이유는 반죽을 할 때 뜨거운 물을 사용하고 사출기를 통해 나오면서 열이 가해져 숙면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어머니들이 집에서 떡을 빚어 먹던 시절 쌀이나 찹쌀가루 반죽을 할 때 뜨거운 물을 넣어 익반죽을 하면 쫄깃해지는 원리를 생각하면 된다.
인천역사문화총서 74 『한국최초 인천 최고 100선』의 ‘매콤 달콤한 쫄면’ 서술에서 ‘냉면을 만들다 사출기의 체(구멍)를 잘못 끼워 우연히 불거져 나온 굵은 국수가락을 이용해 만들었고, 일반 면발에 비해 녹말가루를 더 넣는 바람에 냉면보다 덜 질기면서도 더욱 쫄깃한 면발이 만들어졌다고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출기 문제는 조절의 문제가 아닌 것은 앞서 이야기 했고 반죽상의 실수로 녹말가루를 더 넣는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쫄면은 태생 자체가 밀가루만이 원료로 사용되고 다른 재료를 첨가하지 않는다.
이은정 CJ식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쫄면은 떡으로 치면 가래떡과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재료에 상관 없이 반죽 단계의 가열 여부와 사출 과정에서 압력을 가하는 강도에 따라 쫄깃한 정도가 결정된다”고 이야기한다. 반죽 단계부터 섭씨 130~150도의 뜨거운 열로 익히면 밀가루나 전분의 차지고 끈끈한 성질(점성도)이 높아지고, 사출기로 강한 압력을 가해 뽑아내면 면이 조밀해져 질겨지게 된다.
실제로 삼성식품 대표 정돈시는 “밀가루에 다른 원료를 섞으면 단가 높아지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쫄깃해 지는데, 단가를 높이는 원료를 첨가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 ‘쫄면’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필자는 삼성식품 공업사 대표였던 정돈시와의 구술작업을 통해 2014년부터 쫄면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고, 기존의 쫄면 이해와 관련한 주변인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몇 가지 사실들을 확인하면서 기존의 쫄면유래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쫄면은 그 유래의 진실유무와 관계없이 이제는 전국민에게 사랑받는 국수의 한 종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조리법도 다양하게 변하면서 전국 곳곳에 유명한 쫄면집 도장깨기 하는 식도락가들도 늘고 있다.
정돈시가 주장하는 쫄면은 이런 내용이다.
인천에서 쫄면은 그 이름은 없었지만 그 면발은 존재하고 있었다. 정돈시는 처음부터 쫄면 면을 판매한 것이 아니라 밀가루 원재료를 공급하는 도매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중국인 필과 거래를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필이 죽으면서 밀린 외상값을 받지 못해 필이 운영하던 가게를 인수하였다. 필은 정돈시로부터 공급받은 밀가루로 지금의 쫄면과 같은 면발을 만들어 공화춘 등 중국집에 면을 납품했다. 필이 공화춘 등에 면발을 납품한 이유는 수타면을 뽑는 일손이 달려 면 전부를 수타면으로 뽑지 못하고 일부를 필이 납품한 면발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필의 가게를 인수한 정돈시는 한정된 중국집에 면발을 공급하는데 영업상의 한계를 느끼고, 맛나당에 실험적으로 면을 제공했다. 이때 맛나당 주인은 고추장 양념을 하여 비빔면 형태로 학생들에게 시식을 하도록 한다. 학생들의 반응은 질기고 쫄깃한 고무줄 같은 국수라 하였고 이에 착안하여 쫄깃한 면이란 의미에서 ‘쫄면’이라 이름을 붙여 차림표에 올렸다.
쫄면이라는 이름은 없었지만, 쫄면과 같은 면발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그 사용처가 중국집 수타면을 일부 대신하는 것이었다.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중국집을 벗어난 다양한 공급처를 물색하던 중 분식집으로 확대된 것이다.
2024년 6월 필자는 차이나타운에 거주하고 계시는 지역사회를 잘 알고 있는 화교분들을 만났다. 쫄면과는 상관없는 작업을 진행중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쫄면 이야기가 나왔다. 진작부터 관심이 많던 주제라 기존의 쫄면 이해와는 다른 중국인 필씨 이야기를 꺼내며 쫄면 이야기를 하였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정돈시가 구술했던 것이었다. 화교들은 어떻게 당신이 그렇게 상세한 내용을 알고 있냐고 반문을 하였다. 그러면서 정돈시의 이야기는 사실이며 정돈시가 가게를 인수받을 때 필이 사용하던 쫄면기계도 함께 받았는데 그 기계는 대만에서 들여온 것이라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화교들사이에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쫄면이라는 이름의 면발이 이름도 없이 중국집들의 수타면 대용으로 사용된 것도 필이라는 사람이 그러한 면발을 공급한 것도 다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름도 없던 면발은 맛나당 시식 이후 학생들의 질기고 쫄깃하고 고무줄 같은 국수라는 반응에서 착안하여 ‘쫄면’이라는 정식 명칭을 얻게 되었다. 쫄면에 대한 반응이 점차 나아지면서 맛나당 주변 골목 분식점들이 모두 쫄면을 취급하게 된다. 물론 쫄면의 맛은 분식점마다 조금씩 다르다. 주인만의 비법을 사용하는 비빔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매운 쫄면 때문에 모든 분식점들은 실내에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들여 놓고 쫄면과 아이스크림 두 가지를 동시에 파는 특수를 누렸다. 기본적으로 쫄면의 매운맛과 풍부한 채소가 곁들여지면서 인천에서 학생들 특히 예민한 여학생들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하나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등장한 쫄면이 전국적으로 보급된 데에는 박기남의 신포우리만두 역할이 크다. 1971년 개업한 신포우리만두는 우동과 만두로 전국체인점을 두었고 이 과정에서 쫄면도 하나의 주 메뉴로 자리 잡고 쫄면의 전국화가 이루어졌다.
밀가루 음식이 우리에게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전통시대 밀가루는 굉장히 귀한 재료였기에 잔치국수가 귀한 대접을 받았다. 1950년 6·25전쟁이후 밀가루 원조로 인하여 칼국수나 수제비와 같은 음식을 흔하게 먹게 되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한 생존의 방편이었다. 그런 밀가루가 더욱더 진화하면서 다양한 면요리를 만들어내게 된다.
정돈시의 쫄면 면발은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혼분식 정책과 맞물려 호황을 맞이하였다. 정부는 쌀과 보리의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을 극복하기 위하여 1969년 미곡 소비 억제를 위한 행정 명령 고시를 시행하였다. 첫째 모든 음식 판매 업소는 25% 이상 보리쌀을 혼식을 하고, 둘째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쌀을 원료로 한 음식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수요일 토요일 쌀을 원료로 한 음식 판매 금지로 식당이나 단체급식을 하는 곳에서는 국수를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점심식사를 위해 국수를 미리 삶아 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삶은 국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탱탱불어 먹기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쫄면 면발은 아침에 삶아 놓으면 점심에 자연스럽게 풀어져 먹기가 좋아 인기가 많았다.
정돈시가 생산하는 쫄면 면발은 전국에서 주문이 폭주하였다. 지금과 같은 택배업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택배는 주로 고속버스 짐칸에 실어 보내는 것이었다. 생산자는 주문자와 전화 연락을 통해 몇 날 몇 시 어떤 고속버스에 싣겠다는 약속을 하는 방식이었다.
3번째 이야기는 2015년 이후에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유래설이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1번째 이야기보다 사실관계와는 거리가 먼 스토리텔링을 위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야기가 장황하지만 스토리텔링도 사실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1990년대 유행했던 유머 책자에 나온 이야기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미술 시험에 ‘생각하는 사람을 만든 조각가는?’ 문제가 나왔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로뎅’이라 썼는데, 이 학생 옆자리에서 잘못 훔쳐본 학생은 ‘오뎅’이라 썼다. 오답을 훔쳐본 학생은 오뎅이라고 쓰면 훔쳐본 것 티날까봐 ‘덴뿌라’라고 썼다.
쫄면이야기도 로뎅-오뎅-덴뿌라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