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논란, 그 허구를 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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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논란, 그 허구를 벗긴다
  • 박영일
  • 승인 2010.03.0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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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 박영일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정부의 세종시 원안 백지화 정책으로 온 나라가 싸움판이 돼 있다. 대통령의 말대로 국가백년대계를 결정하는 수정안인데 이를 관철시키려는 정부의 논리와 의견수렴절차가 졸렬하고 기만에 가득 차 있다. 정파적 이익추구와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수준 낮은 한국의 지도적 언론이 이에 추임새를 넣고 있으니 논의는 헛돌고 핵심은 실종된 듯하다.

  
  지난 1월 국무총리실과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세종시 발전안' 조감도.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의 절차적 정당성

   우선 수정안의 절차적 정당성부터 따져보자. 비록 전 정권 때의 일이지만, 세종시 원안은 2002년 행정수도 이전공약 때부터 극심한 찬반 논쟁을 거쳤으며, 결국 17대 국회에서 수많은 회의와 공청회·토론회를 거쳐 여야 합의로 통과됐었다. 그렇게 온갖 간난을 견뎌내서 어렵게 얻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국정과제인 것이다. 당시 국민적 합의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자초지종을 국민에게 당당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 원 법안을 폐기하고 모든 것을 원상회복하면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수정한다고 온갖 편법과 꼼수로 일관하고 있으니 정쟁만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입법 예고된 관련 5개 법률안이 이를 확실하게 뒷받침한다. 원래의 취지나 도시의 성격은 흔적이 없고 재벌기업이나 교육·연구기관을 유치하여 ‘또 하나의 신도시’를 만들겠다고 한다. 시장원리를 그토록 신봉하는 정부가 재벌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수십조 원에 달하는 국민의 혈세를 퍼붓고 각종 편법과 특혜를 제공하면서 ‘반시장적’, ‘관제’ 도시를 만들겠다니 황당무계할 수밖에 없다.   
  
   사실대로 말하면, 세종시 수정안은 처음부터 ‘거짓’이 지배했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 대통령의 말을 상기해 보자. 자신은 원래부터 세종시 안에 반대했으며 국가백년대계를 위해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관된 소신이었으나, 표를 얻기 위해 약속했다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말하자면, 애초부터 지킬 의사가 없었고 지켜서도 안 되지만, 표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고 실토한 것이다. 집권 후에도 계속 지키겠다고 말해 왔으나, 속으로는 뒤집을 기회만 노려왔다는 뜻이다.    
  
   이것은 정치인들이 어설프게 하는 공약(空約)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원래 말을 신뢰할 수 없는 대통령이었지만, 대통령의 의도적인 거짓말이 어디까지 허용되느냐는 참으로 중대한 문제다. 선거에 의존하는 대의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헌법 전문가나 국민 모두가 두고두고 고민할 문제로 남겨두자.

   세종시 수정안의 경제논리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주장하면서 제시하는 경제적 논리의 하나가 국가경쟁력이다. 경제활동이 수도권에 집중된 현실에서 서울로부터 행정부처를 분할하면 수도권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결국에 가서는 국가경쟁력이 잃게 된다는 논리다. 시장원리를 강조하고 수도권 규제에 반대하는 모든 주장의 논리다. 사람과 돈이 몰리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 이점이 있고 효율적이라는, 이른바 집적(clustering)의 이익 논리다. 수도권에는 일자리가 많고 살기 편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문 인력이 모이고 기술의 전파나 혁신이 용이하고 각종 부품이나 원자재의 수급체계가 잘 정비돼 있어 생산비도 절감하고 고객을 많이 유치할 수 있다. 이런 경제논리는 일정한 타당성이 있지만, 다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혼잡과 과밀로 인한 사회적 비용

   첫째, 집적의 이익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집적이 야기하는 비용과 대비해서 추산해야 한다. 한국경제의 국제경쟁력 약화의 구조적 요인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알려져 있다. 그 근본에 ‘수도권·대도시권 과밀, 지방 과소’라는 2중구조가 낳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비효율이 있다. 수도권에는 수용능력을 훨씬 초과하는 인구와 경제활동으로 혼잡과 과밀, 지방에는 과소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높다. 이 2중구조가 비단 국제경쟁력만이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해치고 있다. 전국이 하루 생활권일 정도로 협소한 국토조차도 골고루 활용하지 못하고 한편에서는 과밀, 다른 한편에서는 과소로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이런 양극화현상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한국의 선진복지사회 진입은  불가능하다.  
  
   몇 가지 통계를 살펴보자. 전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48%가 밀집하여 GDP의 49%를 생산한다. 국가공공기관의 85%, 대기업 본사의 89%, 금융 예금의 69%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반면에 도시권을 제외한 국토의 80%에 해당하는 지역은 빈껍데기로 텅 비어 있는 실정이다. 수도권의 지가나 집값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높다. 전국의 지가 총액의 58%(2003년 말), 아파트 가액의 77%(2008년)를 차지한다. 땅 값이 비싸므로 생산되는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다. 또한 젊은이들이 제 힘으로 수도권에 내 집을 마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2008년 기준으로 일반 직장인 가구주가 먹도 입도 않고 월급을 몽땅 10년 모아야 겨우 서울에 집 한 채 지닐 수 있는 실정이다. 
  
   수도권 주민이 직접 부담하는 과밀비용은 어떠한가? 국토해양부가 추정한 교통 혼잡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GDP의 3%에 해당하는 23.7조원에 달했다(2005년). 오폐수, 배기가스, 쓰레기 등 환경오염으로 인한 비용도 막대할 것이다. 직접 처리에 소요되는 비용뿐만 아니라, 혼잡으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 건강 훼손으로 인한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사회적 비용만이 아니다. 학교, 공원, 녹지,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음악회, 각종 공익시설에도 수용한도를 초과하고 공급을 늘리기 위해 막대한 시설투자가 필요하다. 부지비용을 생각하시라.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여행안내서 출판사인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이 세계 10대 최악의 도시를 선정했는데 서울이 3번째로 열악한 도시로 뽑혔다. 씁쓸하지만,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명심해야 할 점은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가상승이나 이권은 1% 상위층에 불로소득으로 귀속되는 반면, 과밀로 인한 비용은 서민대중이 부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도권 거주자와 지방거주자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 내의 계층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동시에 부동산투기가 아닌 삶의 보금자리로 주택을 지닌 수도권 거주자라면 행정부처 이전으로 과밀과 혼잡이 완화돼 삶의 질이 높아져 좋지 않겠는가?

   경제발전 가로막는 정경유착 구조
  
   서울 집중이 반드시 시장요인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두 번째 요인은 한국사회에 만연된 정경유착구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권추구를 위해 수도권에 입지하는 사례다. 그 예로서  석탄회사가 정부보조금이나 이권을 챙기고자 광산지역보다는 행정도시를 선호하는 현상이다. 비자금이 상징하는 기업의 로비활동과 정치인, 관료의 부패가 경제발전과 한국사회의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 암적 요소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경제의 국제경쟁력을 망가뜨리는 고질적인 권력형 부패구조를 척결하는데 경제중심지와 정치중심지를 분리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실제로 미국, 독일, 호주, 인도, 브라질 등의 수많은 나라에서 경제수도와 정치·행정수도가 분리돼 있는 것도 참고할 일이다. 

   경제의 근본을 뒤흔드는 사회적 불신

   현 정권은 경제 살리기를 공약으로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숭금주의에 편승하고, 또 부채질하여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미 초라한 경제운영 실적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회적 ‘신뢰’가 없이는 경제도 살릴 수 없다. 시장경제는 신뢰가 없이는 작동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거래, 계약, 약속, 권리·의무관계가 신뢰를 무시하고 법적 강제력에 의해서만 유지된다면 시장경제는 물론 국가사회의 존립기반이 무너진다. 그래서 일찍이 공자도 국방이나 식량보다도 신뢰가 국정의 기본이라고 가르쳤다. 현대경제학에서도 신뢰를 경제발전의 요체로 인정하여 시장경제체제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으로 규정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신뢰의 가치는 신뢰가 결여돼 있는 사회일수록 더 필요하고 고귀한 것이다. 세종시 문제는 현 정부가 그렇게 중요시하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의 상징으로서 세종시 

   경제논리의 허구성은 충분히 벗겨졌다. 이제 세종시 문제의 본질에 들어가 보자. 그 핵심은 중앙집권구조의 재편이고 지역불균형의 시정이다. 한국의 오랜 중앙집권역사와 불균형개발전략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온갖 분야에서 권력을 서울로 집중시켰다. 바로 이런 중앙집권 하에서 종횡으로 유착구조를 형성한 기득권층이 국가의 모든 권력과 자원을 거머쥐고 민주적 권력분산과 균형발전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가 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세종시 건설계획은 10개 광역시·도에 건설되는 혁신도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기업도시와 일체를 이루어, 대한민국이 민주적 지방분권사회를 지향하고 균형 있는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하나의 처방전으로 제시된 것이다. 따라서 세종시 도시성격의 수정은 세종시만이 아니라, 그와 불가분관계에 있는 10대 혁신도시 건설과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의 백지화로 귀결되고, 기존 서울 중심 권력구조의 강화를 의미한다.     
 
   이렇기 때문에 세종시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이나 합리성으로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근본에는 정치권력의 중앙집중과 지방분산, 지역균형발전, 국토의 소유제도와 활용 등 국가발전의 기본방향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서울에 뿌리를 내리고 정치권력, 부, 사회적 영향력을 거머쥔 기득권층과 그로부터 소외돼온 서민대중 사이의 이해관계의 대립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겉으로는 수도권 거주자와 지방거주자 사이의 이해관계로 보이지만, 큰 착각이다. 바로 기득권층이 노리는 것이 이 착각이다. 수도권에의 집중과 과밀로 땅 값,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과정에서 투기와 임대료, 각종 이권으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챙기는 자는 그들이며, 그 대가를 부담하는 자는 무주택 근로소득층이다.  
  
   현 정부와 기득권층이 국민적 합의를 거쳐 현재 25% 이상의 공사가 진척되고 있는 세종시 안에 그토록 집요하게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신행정수도’ 건설에 대해서는 ‘관습헌법’이란 해괴한 논리로 좌절시켰으며, 위헌판결을 존중하여 부득이하게 중앙부처의 일부만 이전하기로 한 세종시 원안에 대해서는 ‘행정의 비효율’과 ‘자족기능의 미비’란 구실로 반대하고 있다. 경제논리의 허구성을 벗겨보면, 세종시 문제의 해결책은 자명해진다. 행정의 비효율은 오히려 모든 부처를 이전하면 해소되고 자족기능 부족은 장기적 균형발전의 안목에서 보완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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