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평과 권리, 그리고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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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평과 권리, 그리고 인문학
  • 유해숙
  • 승인 2011.11.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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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칼럼] 유해숙 교수 / 서울사회복지대학원대


"저는 남편이 장애를 입었고 아이는 넷이라 수급자가 되어 죄를 지은 것 같아 주눅이 들어 살았는데, 이제 내 마음의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은 기분입니다."

"교육을 받기 전에는 세상이 온통 어두워 보였는데, 이제는 밝아 보입니다. 이제는 저도 이 세상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에는 내 주변 사람들은 물론 나 자신이 미워 어쩔 줄 몰랐는데, 이제 모두가 좋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얼마 전 인문학과 함께 하는 2박3일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위 언급들은 지역자활지원센터 참여자들이 수학여행 중 4번의 인문학 강의를 수강한 직후 밝힌 소감이다. 자활지원센터는 빈곤층 자활촉진을 위한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고, 이곳 참여자들은 국민기초생활 수급권자나 차상위 계층이다. 

인천광역자활센터가 수학여행을 인문학 강의로 기획한 것도 놀랍지만, 짧은 강의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참여자들의 변화는 더욱 놀랍다. 인문학 강좌 주제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인문학 강의는 우선 참여자들이 기존 상식을 잠시 괄호안에 쳐두고(잊어버리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성찰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강의가 시작되었다. 기존 상식은 개인이 열심히 살지 않은 형벌이 빈곤이라는 것을 가르쳐 왔다. 하지만 빈곤은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 비정규직 제도, 저임금, 노령, 장애 등 사회적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사회와 국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서유럽 역사와 우리나라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무기력한 것은 나 개인의 특성 때문이 아니라 환경의 문제이고, 이런 환경에 순응하는 자신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그 사회적 관계와 환경을 조금씩 변화시키려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각자 주인이 되는 것이다.

참여자들의 변화는 놀라웠다. 참여자들은 강의를 매개로 서로 대화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묻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점차 참여자들은 생기를 얻기 시작했고, 마지막 날 소감 나눔 시간에 만난 이들은 더 이상 주눅 들고 억눌렸던 대상자들이 아니라, 세상 속 자신을 따뜻한 눈으로 응시하는 삶의 주체로서 변해 있었다. 이들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여행을 오기 전에는 못난 나, 무기력한 나, 그래서 매우 초라한 나였다. 여행 과정에서 사랑스런 나, 당당한 나, 폼 나는 나가 되었다. 내가 공동체 속 소중한 사람이고, 변화의 거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의미 있는 공동체의 존재로서 이 사회가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깨어서 실천하는 존재가 되겠다. 이들의 발언 하나하나가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는지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자활은 단지 경제적 지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삶과 공동체 주체로 자각할 때 완성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좀더 생각해 보면, 사회복지가 '개평'을 주는 식의 시혜로, 또는 경제적 지원만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복지는 사회적 연대와 협동에 기반을 해서 위험을 극복하려는 공적인 노력이기 때문에 시민들은 누구나 이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사회복지가 그 고유 목적을 달성하려면 시민들이 사회적 위험에 처했을 때 인간다운 삶을 사회와 국가에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우선 자각하게 해야 한다.

최근에 읽은 책은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틀렸다. 더 근본적인 것이 있다. 고기를 잡는 게 그의 권리라는 것을 가르쳐라. 이런 점에서 인문학은 교양이 아니라 권리의 정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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