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족은 괜찮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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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족은 괜찮나요?
  • 공주형
  • 승인 2011.12.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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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공주형 / 미술평론가

얼마 전 부산에 사는 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이팟을 함께 묻어 주세요." 어린 학생의 극단적 선택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짧은 생애를 마감하며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엄마도 아빠도 아닌, 다운받은 음악을 들려주는 기계였습니다. 무엇이 이런 비극을 만든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왜곡된 가족 관계를 그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엄마도, 아빠도, 아이들도 참 바쁜 세상입니다. 그러니 함께할 시간도, 마음을 터놓을 기회도, 나눌 이야깃거리도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겠지요. 어긋나 버린 가족 관계에 대한 문제는〈가족 이야기〉를 그려 온 임만혁(1968년~ )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전, 그는 오랜 무명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에, 그림을 맘껏 그리는 것도 쉽지 않았지요. 미술 학원 강의, 건설 현장노동, 길거리 장사 등은 그 뒤로도 오래 이어졌습니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라 여전히 강릉에 살고 있는 그는 취미가 관찰입니다. 살림을 살아 나갈 방법을 고민하고, 화가의 길을 찾는 과정에서 집에 있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이 무렵 그가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그리기 시작한 것이 가족과 그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의 그림에는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등장합니다. 엄마와 아빠와 아이들, 할머니와 엄마와 딸, 할아버지와 손자들 ……. 그림 속 등장인물의 조합은 다양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하나입니다. '우울함'과 '쓸쓸함'입니다.

임만혁, 가족이야기 07-11, 180x120, 한지에 목탄 채색, 2007 

우울하고 쓸쓸한 이 느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일렬로 길게 늘어앉은 가족을 그린 〈가족이야기07―11〉에도 어두운 표정이 새겨져 있습니다. 커다란 눈은 서로를 외면하고, 입술은 굳게 닫혀 버렸습니다. 하나의 공간 안에 있지만 저마다 다른 생각 중인 것 같습니다. 긴 식탁에 늘어놓은 다양한 종류의 음료와 다채로운 크기의 컵들은 이들 사이에 가로막힌 보이지 않는 담,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림 속 풍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본 것만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 가족들끼리 외식 장면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일행인 가족들은 점원에게 좌석을 지정받고, 쏜살같이 주문을 하고, 침묵 속에서 식사를 이어가지요. 대개 그런 풍경 속에서 엄마와 아빠는 만난 지 몇 시간 안 된 이들처럼 공통의 화제를 쉽게 찾지 못해 허둥대고, 아이들은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엄마와 아빠가 아닌,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와 분주히 문자를 주고받습니다. 어색한 상황과 문자 도착을 알리는 진동 사이에서 간간이 내뱉는 말들은 대화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임만혁, 실내풍경 09-4  72x91, 한지에 목탄채색, 2009

가족들 사이의 대화의 단절은 〈실내 풍경〉에서도 반복됩니다. 텔레비전이 놓인 거실에 가족들이 한데 모였지만, 서로 마주 볼 기회는 없습니다. 리모컨을 소중한 보물인 냥 가슴에 품은 엄마 시선은 텔레비전 화면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아빠는 채널 선택권을 쥔 엄마가 텔레비전에 혼자 빠져드는 상황이 못내 마땅치 않은 듯합니다. 엄마도, 텔레비전도 마주치기를 꺼리어 고개를 돌려 버렸지요. 상황이 애매합니다. 섣불리 끼어들 수 없는 아이는 소파 뒤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요.

집 밖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가족을 하나로 이어 줄 흥미로운 연결 고리는 짙푸른 바다에도 없습니다. 낚싯대를 드리운 아빠가 오늘 이곳에 오자고 제안한 것일까요. 아빠 이외에 다른 식구들은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보입니다. 엄마의 긴 통화는 바다 속에서도 계속되고, 아이들은 집에서 그랬듯 형제, 자매가 아닌 스마트 폰, 엠피쓰리와 더 많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냅니다.

이제 다시 아이팟을 함께 묻어 달라던 그 소년을 떠올립니다. 소년의 행동이 이해가 갈 법도 합니다. 외로울 때나 힘들 때 자신에게 위안을 주었던 것은 가족이 아닌 기계였으니, 마지막 동반자도 아이팟이 되고 말았나 봅니다. 36.5℃의 온기를 간직한 가족이 아닌, 차가운 기계가 더 따뜻해 보이는 세상. 그 속에서 가족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최소한의 대화조차 끊어진 채 우리는 무늬만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 가족의 미래는 장담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홧김에 부모를 해치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요즘입니다. 이들에게 자살과 살해 동기는 단순히 부진한 학교 성적과 지나친 잔소리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가족들 사이 무너진 신뢰입니다. 부모와 자식을 이어 줄 관심과 애정의 끈이 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점점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엄마가 아니라 술병이, 아빠 대신 촛대가, 아이 대신 반쪽짜리 레몬이 있다고 한들 별로 이상할 것 없는 〈정물 07-6〉정물화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요.


임만혁, 정물 07-6 한지에 목탄채색 105x74 2007

 

"혹시 우리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식탁 모서리에 덩그러니 홀로 놓인 사과처럼, 단절된 채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임만혁 작가의 그림을 찬찬히 바라봅니다. 저 또한 우리 가족의 현재를 시간을 갖고, 거리를 두고 살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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