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두 개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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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두 개인 이유
  • 김정희
  • 승인 2012.01.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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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김정희 / 시인


해마다 12월 1일이면 구세군의 시종식(時鐘式)과 함께 빨간 자선냄비들이 거리 곳곳에서 24일간 모금 활동을 벌인다. 올해는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여 모금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온정의 바람이 뜨겁게 분 덕택에 한국 구세군은 목표액을 훨씬 상회하는 것은 물론,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46억 원의 기부금을 모았다. 
  
소액 현금 기부가 대부분인 자선냄비에 뜻밖에도 저금통, 금반지, 상품권, 헌혈증서, 영화표, 교통카드가 담겼다고 해서 신선한 감동을 느꼈는데, 그것과 아울러 고액 기부자들의 자선행위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12년에 걸쳐 전주 노송동 달동네에 2억 원이 넘는 돈을 남모르게 기부한 사람, 자선냄비에 1억 1천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넣고 간 사람에 이어 구세군 본영에 찾아와 2억 원을 기부한 90대 노부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 부부는 “아무도 모르게 해 달라. 정말 오늘 밤은 다리를 쭉 펴고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고 한다.

손톱만한 일을 하고도 이름 내세우려 안달하는 이들이 지천인 세상에서, 의로운 일을 하고 공치사 받으려들지 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묵묵히 실천한 ‘얼굴 없는 기부천사들’의 선행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우리 민족에게는 십시일반 정신이 유전자처럼 녹아 있어서인지 개인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일회성 기부활동이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거기에다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성숙해지고 선진국의 기부문화가 더해지면서 지금은 사회환원론적 관점에서의 지속적인 기부가 빠르게 확산되어 가는 중이다. 이로써 유니세프, 세이브 더 칠드런,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름다운재단 등 국내외 자선단체들이 성장하며 다양한 자선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유니세프는 언론매체를 이용해 날마다 동아프리카의 참상을 전하는데 나는 그걸 볼 때마다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을 생각하게 된다.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의 영화로 전 세계 영화 관객을 사로잡았던 그녀는 암으로 생을 마치기 전까지 질병과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구호활동에 전념했다.

헵번은 앙상한 검은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채 카메라 기자들 앞에 서서 간절하게 호소했다.

“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린이 백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

몸소 행동하는 사람의 살아 있는 말은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며 크나큰 반향을 일으켜 전 세계적으로 기부문화가 활성화되는 결과를 낳았고, 그로 말미암아 헵번은 ‘세월이 흘러도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각인되었다.

적극적으로 기부를 실천하며 그 숭고한 가치를 만인에게 일깨워주었던 헵번은 유언을 통해서까지 아들에게 나누는 삶을 권유했다.

“……기억해 두어라. 네가 더 나이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란다.”

나눔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신에게 백천 번 기도하고 공양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에게 기쁨으로 베푼 공덕의 1/16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 어떤 이는, 나눔이라는 것은 내 것을 남에게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들의 표현은 각기 다르지만 의미의 궤는 같다.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아름다운 덕목으로 나눔을 꼽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기부를 생활화한 사람들은 너와 내가 함께해야 하는 의미와 누구도 한 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현자들이다.

우리가 맨 마지막에 입게 될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 내 손 안에 있는 것들을 원래의 자리로 환원하는 일을 시작한다면, 누군가의 얼굴에서 눈물이 마르게 될 것이다. 유니세프는 오늘 아침 신문 광고 카피로 이 말을 내걸었다.

가장 위대한 유산은 ‘기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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