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에게 사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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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에게 사랑을 받는다
  • 박병일
  • 승인 2012.01.08 14: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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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명장의 자동차 이야기] 폴크스바겐(Volkswagen)


1963년형 폴크스바겐

딱정벌레 모양의 자동차

월트 디즈니의 만화에 나오는 딱정벌레처럼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차, 폴크스바겐 비틀은 시트로엥 2CV와 피아트의 소형차 친퀘첸토와 함께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유럽의 거리를 누비고 다녔고, 1950년대가 끝나갈 무렵에는 미국에 건너가 ‘소형차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자동차 설계의 천재, 포르쉐 박사가 직접 설계한 이 차는 기름값도 다른 차에 비해 훨씬 적게 들 뿐 아니라, 모습도 아주 깜찍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인기가 치솟았다.

1972년에는 드디어 미국 시민의 발이었던 포드 T형의 세계 기록을 깨뜨리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가 되었다. 한 모델로 1,900만 대가 판매된 기록은 세계 자동차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일이었다.

세계인의 국민차 폴크스바겐 비틀의 탄생

포르쉐 하면 모두들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포르쉐를 떠올릴 것이다.

폴크스바겐 비틀을 설계한 포르쉐 박사는 ‘꿈의 스포츠카’라 불리는 포르쉐를 직접 디자인한 사람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임러 벤츠사에서 일하면서 품격 높은 메르세데스 벤츠를 설계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포르쉐 박사가 다임러 벤츠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설계 사무실을 차렸을 무렵, 한 야심만만한 사나이가 독일을 세계 최강의 나라로 만들겠다며 큰소리 치고 있었다. 바로 공포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는 독일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는 고속도로 건설계획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장장 1,600km에 이르는 최초의 아우토반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또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인기를 모으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이 아우토반 위를 달릴, 전 국민의 차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자신의 권력을 더욱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히틀러의 마음에 꼭 맞는 차를 만들 사람은 자동차 설계의 대가 포르쉐 박사밖에 없었다.

1933년 8월, 드디어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악마, 히틀러는 자동차 설계의 천재, 포르쉐 박사를 만나러 갔다

“포르쉐 박사, 우리 독일 민족을 위한 소형 국민차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실내가 좁아서는 안 됩니다. 또 차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추운 겨울에도 엔진은 얼지 않아야 합니다. 유지비가 많이 들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기름 1리터로 12km는 문제없이 달릴 수 있어야 하지요. 아, 제일 중요한 것을 빠뜨렸군요. 찻값은 천 마르크를 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모든 국민이 부담 없이 살 수 있을 테니까요.”

포르쉐는 히틀러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천오백 마르크는 될 겁니다. 그보다 더 싼 자동차를 만들기는 힘듭니다.”

“포르쉐 박사, 그건 당신이 고민할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만들기만 하시오, 찻값은 내가 정합니다.”

그 말을 들은 포르쉐는 가슴이 뛰었다. 평범한 국민들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값싼 소형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포르쉐의 오랜 꿈이 아니었던가!

그로부터 3년 후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열렸던 바로 그 해, 포르쉐의 국민차가 세상에 태어났다.

여태껏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딱정벌레 모양의 괴상한 차를 본 히틀러는 머리를 갸우뚱했으나, 70일간의 성능 시험에서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자 매우 흡족해했다. 얼마 후, 딱정벌레차를 만들 공장이 세워졌다.  딱정벌레를 닮은 조그만 차를 처음 본 국민들은 모두 만족해했다. KDF라는 히틀러가 붙인 이름대신 국민들은 이 차를 폴크스바겐 비틀이라고 불렀다. 폴크스바겐은 ‘국민의 차’라는 뜻이고, 비틀은 ‘딱정벌레’라는 뜻이다.

최초의 딱정벌레 차는 히틀러가 말했던 1천 마르크보다 100마르크가 더 싼 900마르크였다. 100km를 달리는 데 기름은 겨우 7리터밖에 들지않았으며, 다섯 사람이 탈 수 있는 조그만 세단이었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에게 이 딱정벌레차를 갖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냥 주는 것은 아니고, 폴크스바겐 우표를 발행해서 그 우표를 900마르크어치를 사 모은 사람에게 폴크스바겐 한 대를 준다는 것이었다. 

“오토바이 값으로 자동차를 가질 수 있다!”

그건 대단한 뉴스거리였다.

폴크스바겐 우표는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하지만 폴크스바겐에 걸었던 사람들의 꿈은, 1939년 히틀러가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국민들에게 우표를 팔아 긁어모은 돈은 모조리 전쟁 준비에 들어갔고, 폴크스바겐 공장은 군수 공장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은 패전국이 되었고, 독재자 히틀러는 애인 에바와 함께 자살했다. 프랑스 군은 히틀러의 지시대로 폴크스바겐을 만들어 주었다는 이유로 포르쉐 박사를 체포했다. 포르쉐는 프랑스 사람들이 내뱉는 욕설과 돌팔매질을 받으며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독일을 살린 딱정벌레 차

한편, 패전국이 된 독일은 영국, 프랑스, 미국, 구소련 등 연합국에게 전쟁 배상금을 물어 주어야했다. 하지만 나라 안의 돈은 모조리 전쟁 준비에 쏟아 부었기 때문에 배상금으로 줄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생각 끝에 독일 정부는 폴크스바겐 공장과 딱정벌레차를 내놓았다.

그러나 폴크스바겐 공장은 거의 파괴되어 있었고, 괴상하게 생긴 딱정벌레차는 연합국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독일 정부가 마지막 카드로 내놓았던 폴크스바겐은 딱지를 맞고 되돌아왔다.

폴크스바겐은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고아 신세가 되어 버렸지만, 독일 국민들은 폴크스바겐을 되살려 세계로 내보내는 길만이 그들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독일 국민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폴크스바겐을 만들기 시작했다. 1955년이 되자,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딱정벌레차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되었다.

히틀러는 독일을 망쳐 놓았으나 그가 만들어 낸 폴크스바겐은 독일을 잿더미에서 구했으니, 생각해보면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에게 병도 주고 약도 준 셈이다.

1970년대부터 자동차 회사들은 다양한 모델을 내놓았고, 디자인은 갈수록 세련되어 갔다.

딱정벌레차 하나로 세상을 휩쓸었던 폴크스바겐도 이제 새로운 차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976년, 폴크스바겐 비틀은 드디어 딱정벌레의 모양을 벗고 폴크스바겐 골프와 폴크스바겐 폴로라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비틀은 아르헨티나 공장에서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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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2012-01-30 10:10:36
남편이사랑하는차에 이런역사가있었다는것이놀랍고재미있게읽었습니다.앞으로도많은이야기들려주세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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