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폭력은 가라" … 학교 폭력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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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폭력은 가라" … 학교 폭력의 기억
  • 장현정
  • 승인 2012.01.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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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 상담팀장


학교폭력·청소년 자살 예방을 위한 공익광고인 '크리미널 스쿨'을 만든 박한울(18)군. 
화면은 박군이 만든 공익광고의 한 장면이다.

5,6년 전 제가 학교사회복지사로 중학교에 있었을 때입니다.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가는데 한 남자아이가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창밖을 보고 있다가 운동장에서 날아온 돌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돌에 맞아 피부가 찢어져 피를 흘리는 그 친구를 보며 같은 반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야, 걔 얼굴 다쳤대. "
"어머, 정말? 걔 이제 그럼 성형수술 해야겠네? "
"완전 장동건 되겠다. (까르르르)"
 
알고 보니 다친 아이는 학급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돌에 맞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 일부러 맞추려고 던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피를 흘리며 양호실로 가는 그 아이 등 뒤에 쏟아지던 같은 반 친구들의 무시와 조롱, 경멸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14년 전 제가 여자고등학교 2학년을 다닐 때 일입니다. "전따(전교 왕따)" 라고 불리는 아이가 우리 반에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모두에게 장난감이었고, 놀림거리였습니다. 아이들은 때리거나 욕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였습니다. 한 번은 그 아이가 앞 자리에 있던 저에게 편지를 주었습니다.
 
"현정아, 나 너무 힘들어. 아이들이 나에게 왜 그러는 걸까? 내게 무슨 문제가 있다면 얘기해주었으면 좋겠어."
 
저는 그 친구가 저에게 편지를 주었다는 사실이 다른 아이들에게 알려질까봐 두려웠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알게 된다면 "전따의 베프"라는 새 별명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약했던 저는 결국 편지를 다른 아이들에게 공개하고 아이들은 그 편지를 돌려가며 읽고 또다시 그 친구를 놀려댔습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습니다. 비겁한 내가 실망스러웠고, 그 친구 진심을 무시했다는 죄책감이 아직도 가슴 한켠에 남아 있습니다. 
 
더 이전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19년 전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입니다. 어느 날 같은 학년 아이들 30여명이 무리를 지어 달려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호기심 많은 저는 그 틈에 껴서 무슨 일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아이들은 한 동급생 여자아이를 빙 둘러싸고 서서 손가락질을 하며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야 너네 아빠가 사장인데 넌 왜 빵꾸난 운동화를 신고 다니냐!"
"니네 아빠 사장 맞냐? 거짓말하지마!"
 
아주 오래된 기억이지만 지금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느껴지는 두려움을요. 저 또한 가끔 구멍난 신발이나 양말을 신기도 했었는데, "아이들에게 발견되어 저렇게 되면 어쩌지?" 하는 공포를요.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기억하고 있는 학교폭력 기억들이었습니다. 때리지도 않았고 욕설도 없었지만 분명한 폭력입니다. 폭력의 종류에는 다음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때리고 빼앗고 물리적인 손상을 주는 신체적 폭력
2. 말이나 글, 문자, 메일 등을 활용한 언어적 폭력
3. 무시하기, 조롱하기, 말 안 걸기 등 정서적 폭력(따돌림 또는 관계적 폭력)

정서적 폭력은 증명하기 어렵고 잘 나타나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갈 수 있지만,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고 정서적 우울과 위축을 경험하게 합니다. 신체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서적 폭력 또한 폭력임을 아이들에게 알려야 할 것입니다.

폭력은 사회 분위기와 밀접하기 때문에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있는 폭력과 관련된 문화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때때로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행여나 맞거나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되어 "맞긴 왜 맞아. 차라리 때리고 와."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을 보호하는 건 당연히 중요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고, 때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가정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타인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법, 타인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가정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최근 학교폭력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의 기사를 접하면서 내 경험들이 떠올랐습니다. 인성교육이 부재한 요즘, 아이들에게는 더욱 빈번하고 잔인하게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요즘 갑자기 생겨난 요즘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학교폭력은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저 또한 가해자로서 방관자로서 피해자로서, 폭력을 지켜보며 자랐습니다. 아이들만의 문제로 볼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모든 폭력에 대해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폭력은 나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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