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에 묻힌 보석, 갈산동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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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에 묻힌 보석, 갈산동 샘터
  • 박병상
  • 승인 2012.01.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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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150년 전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 지은 오두막에서 2년 동안 살며 깊이 있는 사유를 남겼다. 그가 한 바퀴 걸은 호숫가는 희한하게 상류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는데 깨끗했다. 150년 전이니 상류 지점에 오염원은 물론 없었을 테지만, 월든 호수는 어디선가 용출돼 올라오는 물이 고이며 흘러넘쳤던 모양이다. 그런 호수에서 깊은 사색을 즐겼던 소로는 수필집 《월든》을 남겼고, 세계적 스테디셀러로 우리 서가에 장식돼 있다. 한데, 크던 작던, 그런 호수는 우리나라에도 많았다.

국토의 65퍼센트가 경사가 급한 산지이고 내리는 빗물의 60퍼센트 이상이 여름 한 철에 집중되는 우리나라에 크고 작은 강과 시내가 많고, 그런 하천에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렀다. 비가 적었던 계절이라고 해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하천마다 물고기들이 돌아다녔고 바위와 자갈을 들추면 메기나 자가사리들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백두대간에 이은 한남정맥을 타고 빗물이 흘러드는 인천도 마찬가지였다. 서쪽으로 서서히 낮아지면서 넓게 펼쳐지는 농경지에 마련한 많은 방죽과 작은 웅덩이는 샘에 의존했다. 흘러드는 물이 없어도 항시 맑게 고였다. 가까운 하천과 지하로 이어지는 물줄기가 만든 샘을 이용했던 거였다.

마을의 우물, 논밭의 방죽, 천수답의 물웅덩이가 되어 우리네 삶을 지탱해주던 크고 작은 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서울 강동구 길동에는 ‘길동생태공원’이 마련돼 있다. 중대형 아파트가 십여 동 들어설 규모의 묵정논이 있던 대지였다. 묵은 논은 넓은 습지로 변해 온갖 식물과 곤충이 모여드는 생태공간으로 변했고, 갖은 새들이 찾아와 대도시 속 보기 드문 자연 학습장이 되었는데, 아파트단지라니. 그 소식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던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강력하게 보전을 요구했고, 습지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한 서울시도 시민의 뜻을 적극 반영해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그곳의 습지도 용출되는 샘이 만들었다.

‘두꺼비 마을’로 더 유명해진 청주 산남동의 생태마을은 개발되기 전까지 완만하게 이어지는 넓은 논이었다. 그 논에 댈 물을 저장해둔 방죽에 두꺼비들이 알을 낳았는데,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개발했고, 그 과정에서 시민과 청주의 환경단체는 어렵게 방죽 일원을 생태공원으로 보전할 수 있었다. 덕분에 두꺼비도 어느 정도 알을 낳을 수 있게 되었어도 전과 비교할 수 없게 위축되었다. 하지만 그 아파트단지에 사는 주민들은 ‘두꺼비 마을’이 가까이에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사람이 두꺼비를 살리자, 이번엔 두꺼비가 사람을 살려준 셈이 되었다고 많은 이들이 평가하게 되었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이 된 인천에도 샘터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자연 습지가 전혀 보이지 않던 부평구 갈산동에 100년 이상 된 것으로 짐작되는 지름 1.5m 깊이 2m 규모의 샘터가 발견돼 주민들의 관심이 모인다고 한 언론이 밝힌 것이다. 1970년대에 주거용 건물을 짓느라 덮은 콘크리트를 철거하자 모습이 드러났다고 언론은 덧붙였는데, 지금이야 아파트단지 일색이지만 갈산동 역시 머지 않았던 과거, 너른 농경지였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때 풍부하게 용출되던 지하수를 받은 방죽이 있어 농사에 사용했고 아이들은 방죽에서 첨벙댔다고 오래 산 주민들은 기억하는데, 그 방죽에 물을 공급하던 샘터가 온전히 발견되었다는 건 학술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생태적으로 환영할 만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습지가 발견되자 공원으로 보전한 서울 둔촌동처럼, 갈산동의 샘터 역시 보전하자는 목소리가 대세라니 더욱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습지가 없는 도시는 빗물을 완충하지 못하는 만큼 풍수해에 취약하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공원에 습지를 조성해 놓고 빗물을 완충시키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에 내리는 빗물은 한꺼번에 낮은 곳으로 향하는데, 배수장치에 이상이 생기면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집중시킨다. 작년 서울 광화문 일대에 발생한 침수가 그 좋은 예다. 디자인을 위해 도로 가장자리 배수구를 좁힌 상태에서 국지성호우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빗물을 돌연 떨어뜨리니 광화문 일대가 순식간에 빗물로 차오른 것이다. 가까이 청계천이 근사하게 치장된 모습으로 배수를 담당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웠다.

도시의 빗물은 지하수로 이어지지 못한다. 지하로 스며들 공간을 막았기 때문인데, 갈산동의 샘터는 다를 것이다. 주변에 다양한 수변식물이 찾아와 뿌리를 내렸고 곤충이 찾아와준다고 하니, 생태를 잘 살피며 가꾸면 요즘 회색도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훌륭한 학습장으로 변모할 수 있다. 빗물을 완충하면서 지하로 온전하게 연결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기왕 습지로 복원할 거라면, 예산과 시간을 충분히 모아 재해까지 완충할 습지와 공원으로, 그리고 삭막한 콘크리트에서 지친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남을 인천의 대표적 생태학습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하게 복원하길 희망한다.

최근 들면서 중국에서 황사만 쏟아져 들어오는 게 아니라 미세먼지까지 한반도 하늘을 뒤덮는다는 뉴스가 거푸 보도된다. 현재 중국이 추진하려는 핵발전소 계획까지 미루어, 유연탄을 사용하는 중국의 공장지대를 거치며 앞으로 방사성물질까지 날아올지 모른다. 중국에서 알아서 막지 못하거나 안 하는 한, 우리가 그런 물질을 진작 차단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피해를 감당하고 말아야 하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 최대한 방어해야 한다. 좋은 방법은 습지다. 우리 자연은 물론이고 많은 시민들이 거주하는 공간 여기저기에 녹지를 잘 갖춘 습지를 조성한다면 내려온 먼지들을 다시 사람들의 호흡기로 날아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콘크리트에 감춰졌던 갈산동 샘터는 보석이다. 100년 만에, 그것도 흑룡의 해에 다시 인천 부평의 보석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데 새삼 의미를 두고 싶다. 샘터에 오래 안겼던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를 것을 꿈꾸며, 기왕 발견된 샘터가 멋진 자연습지로 거듭날 것을 인천시민들과 한껏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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