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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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 홍새라
  • 승인 2012.02.0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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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홍새라 / 소설가


장마가 졌다든지 눈이 왔다든지 하는 등 날씨의 변화를 느낄 때면 동네를 산보한다. 한 곳에 오래 살고 이런 산보가 지속되면서 지역에 대한 애착은 물론 도시의 아름다움에 관해 생각하곤 한다.

그날도 햇살에 이끌려 거리를 걸었다. 집 근방을 벗어나 도로가로 나서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둘러보니 건물 간판이 모두 작은 것으로 바뀌었다. 창문을 제외하면 틈 하나 없이 커다란 간판으로 덮였던 건물들이 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미용실 건물은 옅은 하늘색이었구나. 슈퍼마켓은 적색 벽돌이고. 원룸 건물 유리창은 중세 교회의 것 같네? 정육점은 한국식 지붕이고. 옷가게 건물은 청색 다이아몬드를 넣었구나. 바탕은 흰색이고. 맥주집은 벽에다 동그란 유리창을 낸 게 특징이네? 저 개성 있는 원룸 건물을 지은 건축가는 어떤 이였을까. 옷가게를 설계한 디자이너는? 어떤 생각으로 저런 디자인을 떠올린 거지?

누가 들려주지 않아도 거리에는 이 도시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그와 어울린 경찰서와 소방서도 눈에 잘 띠었다. 오랜 도시 생활을 하며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에 가슴이 떨렸다.

기분이 좋아져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중앙도로에 이르니 그곳 역시 간판을 전부 교체했다. 5층 이상 건물들이 꽤 되는 곳이었는데 거리 자체가 깔끔해진 느낌이었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격조까지 더해주었다.

하지만 이곳은 조금 전에 본 1,2층처럼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층마다 입주한 여러 개의 상가 간판이 하나 같이 똑같은 디자인과 글씨체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든지 개성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밋밋한 빌딩도 살려주고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을 텐데 싶어서 실망스러웠다.

실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음식점이 주로 있는 단층 상가에서는 이마에 붙인 작은 팻말이 성에 차지 않는지 옆머리에 또 돌출간판을 하나씩 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건물 본래의 자태를 가리는 역할을 했다. 큰 간판으로 도배한 것을 볼 때보다 더 천박해 보였다. 손님, 즉 돈을 향한 손짓이 노골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망감에 젖어 걸음을 옮겼다. 몇 미터 걷지도 않았는데 예의 유리창만 내놓은 건물들이 하나둘 나왔다. 그것들을 지나 걷다가 전자제품 매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건물을 덮은 커다란 간판은 물론이려니와 유리창마저도 유명인을 동원한 광고지로 알뜰하게 붙여져 있었다. 안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본말전도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실제로 물건이 보이지 않아서 사람 마음을 유혹하지도 못하는데 누가 저기에 들어갈 것인가?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천박하다는 표현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눈을 내리뜨는 순간, 그 가게의 광고지는 길바닥에도 붙어 있었다. 행인들이 밟으면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망가질 테니 비닐과 테이프로 싸는 정성까지 동원했다. 돈, 돈, 돈! 그것만을 외쳐대는 모습이었다.

창창한 햇살을 올려다보며 중앙도로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뒷골목은 그래서 뒷골목이련가. 거리는 그동안 익히 보아왔던 커다란 간판들의 홍수였다. 무언가를 사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건물이 아니라 간판들이 서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거리에 사람이 아니라 돈이 흥청거리며 다니고 있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지금껏 도시라는 곳을 꿰고 있던 간판문화의 최고봉이었다.

휘황한 간판들을 다 떼어내고 아주 작은 간판으로 교체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도시의 꽃인 건물들이 얼굴을 드러낼 테니 그곳이 노래방이거나 맥주집, 고깃집이거나 댄스교습소 등 그 어떤 것이 든다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분위기가 묻어나고 사람 냄새가 나리라 여겨졌다.  

다양한 건물들이 있는 도시는 간판 하나만 바꿔도 매우 달라진다. 길을 걷다가 잠시 앉아 쉬어가고 싶은, 멈춰 서서 건물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그 매혹들에 끌려 이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우리가 너무 오래 익숙해져 있는 ‘커다란 간판’부터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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