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1호 '학생 오너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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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1호 '학생 오너 드라이버'
  • 박병일
  • 승인 2012.04.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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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명장의 자동차 이야기]


세계자동차제주박물관 모습

"내가 열 살 전에 큰아버지가 영국제 자동차를 사오셨지. 운전수가 없어 상해에서 중국인 운전수를 데려왔는데, 제복을 입고 집안 어른들을 태우고 다녔어.  차가 집에 있을 때는 어른들 몰래 태워 달랬지. 집안을 도는 정도였지만 말이야."

윤보선 대통령과 차와의 인연은 이렇게 어린 시절인 구한말부터 시작되었다. 윤 대통령이 1897년생이니 처음으로 차를 탄 것은 1905년 전후다.

"당숙(尹致昊)이 미국에서 자전거를 처음 사 갖고 와서 그걸 즐겨 탄 것이 내가 바퀴를 탄 처음일거야. 어른 자전거여서 한쪽 발을 차체 사이에 넣고 페달을 밟으며 탔지."

이 시절 사람들은 자전거의 신기한 모습을 보고, "윤씨네 축지 기계"라고 불렀다.

윤치호씨는 구한말 학부협판(문교부차관)을 지낸 개화의 선각자로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에 능통한 당대 최고 지성인이었다.

명문에서 태어난 해위(윤보선 대통령 호)는 일본 동경(東京)에 건너가 자취생활을 하며 공부를 하다가 귀국해 19세 때인 1918년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중국 상해로 떠났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상해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모여들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때 어른들은 아직 어린 축에 드는 해위에게 "자네는 외국에 나가 공부를 더 한 다음 독립운동을 하라"고 충고했다.

해위는 여기서 영국으로 떠날 결심을 하고 22세 때인 1921년 중국 옷차림으로 일본 경찰 검색을 피해 가까스로 42일 만에 프랑스의 마르세이유를 거쳐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의 명문 에딘버러 대학에 입학한 지 2년 뒤 그는 이탈리아제 검은색 '피아트'를 꽤 비싼 400파운드나 주고 샀다.  앞좌석 둘에 짐을 싣도록 좁게 마련된 뒷자리에도 임시로 좌석 하나가 있는 스포츠형 오픈카였다.

해위는 8천명이나 되는 에딘버러 대학생 중 유일한 '오너 드라이버'였기 때문에 학생들의 인기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셀프스타터'가 없어 쇠막대를 손으로 돌려 시동을 걸어줘야 하는 3단 기어의 피아트를 몰고 영국 시내를 시간이 날 때마다 드라이브했다. 이 차를 샀을 때 영국에 있는 자동차 판매회사에서 기술자가 나와 1개월간 해위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었다. 

한 번은 시골로 여행을 가는 길에 기분이 좋아서 스피드를 내는데 갑자기 앞에서 8, 9세된 아이가 뛰어드는 바람에 급브레이크를 밟아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다. 또 한 번은 서둘러 시내를 빠져 나가다가 신호위반으로 교통경찰에게 잡혔다.

그 교통경찰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스티카를 떼려 했다.

"서툴러서 그러니 한 번만 봐 주시요"라고 사정을 했더니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면서 놓아주었다.

해위는 일생 동안 자동차 교통법규를 두 번밖에 위반하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생 시절 피아트를 탄 것으로 해위의 해외 '오너 드라이버' 생활은 끝을 맺는다.

전공이 선사(先史)시대 고고학이어서 스페인과 프랑스 유적을 찾을 때면 기차여행을 많이 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영국제 '오스틴'을 타다가 서울시장, 상공부장관, 국회의원을 지낼 때는 지프차를 탔다. '오스틴'을 탔던 시절이 해위의 마지막 손수운전이었다.

해위가 관직생활을 시작하던 시절에는 장관이나 국회의원 모두가 지프를 타고 다녔다.

6.25전쟁 동안 부산에 내려가 적십자사 총재로 일했을 때는 지프를 닮은 영국제 '랜드로바'를 탔다.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 만든 '시발'이 있었지만 택시로 사용되고 있었다.

신한당 총재 시절에는 '크라이슬러' 8기통 짜리를 탔는데, 기름을 너무 먹어 얼마 안 가 '폴크스바겐'으로 바꾸어 탔다.

"딱정벌레 폴크스바겐은 내가 제일 좋아한 차였지."

대통령 후보 때는 국산차인 현대의 1967년형 '포드 20M'을 타고 다녔다.

이렇게 해위는 자동차를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탔던 소년이었고, 다양한 자동차를 탔던 대통령으로도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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