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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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정치학
  • 정민나
  • 승인 2012.04.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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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정민나 / 시인


1년 동안 주민들이 먹을 양식이 단 한 번의 로켓 발사로 날아가 버린 북한은 우리에게 다수성의 배제에서 출발하는 소수성의 담론을 읽게 한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의 전 지구적 확산은 세계적인 이동/이주라는 새로운 현실을 불러 왔다.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라는 그 와중에도 세계의 '마이너리티'라 불리는 가난한 노동자와 어린이가 생겨났다.    

이들이 모두 주변인이라는 사실에 직면하여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그것의 부재함을 제시하는 것이 타자로서의 작가인식이라고 한다면, 공동체의 소중함과 타인의 삶을 배려하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할 때 그 어떤 병리적 현상도 해소될 것이다.

필자의 다음 시는 힘의 논리에 의해 유기된 타자들에 대한 항변을 시화한다
 

정다운 도서관 앞 튤립 공원 한가운데
동그란 원탁이 하나
오늘 아침 무슨 회의를 하는지
새하얀 눈들 빙 둘러 앉아 있다

유엔아동권리규약을 앞에 펼쳐 놓은 채
바람 한 점 햇빛 한 점 버찌나무의 그림자도 한 점
조금은 엄숙한 표정으로
하얀 고봉밥 아직 한 술도 뜨지 않고 있다

눈 속을 삐죽이 뚫고 나오는 자주 빛 튤립도
눈 무더기를 밀치며 새순을 내미는 연산홍도
실은 원탁의 회의장을 향한 것
원탁의 차가운 눈을 향해 발언을 하고 싶은 것

당사국은 모든 아동이 생명에 관한 고유의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가
엄연한 봄날의 기습 한판에
어떤 눈은 고개를 숙이고
어떤 눈은 숨을 죽이고

햇살의 꿈틀이 물방울의 꿈틀이 은행나무 뿌리 속 실뿌리들
어둠 쪽에서 고물거리며 걸어 나올 때

정다운 도서관 원탁 옆 목발 짚은 감나무도
신경 혈액 근육 피부 털 위에 내린 뾰족한 서리를 밟고서
아동 권리규약 제 6조 생존과 성장편을 읖조린다

버려진 새끼 까마귀
흑인종 구름을 따라 다니며 비정상적으로 배가 불뚝해진 그림자

어린이를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이름과 국적이 적힌 팻말도 없이
꽃과 나무들 차디찬 눈 위를 무작정 뚫고 올라 오는데

                                                — 「원탁의 화원」


현실이 주는 고통으로부터, 혹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상황으로부터 꿈틀대는 작은 것들은 겨울을 밀치고 나오는 새싹들이다. 원탁의 차가운 눈앞에 이미 와 있는 봄을 바라보며 '문학은 굶는 아이들에게 빵을 주지는 못하지만 그 불행한 현실을 추문으로 만듦'으로서 문학의 윤리를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봄날의 기습 한파에 눈 무더기 속의 그것들은 추방과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소수자들이다. 튤립이나 연산홍, 새끼 까마귀와 같은 소소한 존재들은 그러나 현실이 주는 고통에 좌절하지 않고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저항한다.  

억압적 현실에 대한 재현으로 과거의 문학이 정치적인 것에 접근했다면 지금은 새로운 감수성과 시적 문법으로 타자와의 관계를 논의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때까지 무시했던 아름다움의 존재를, 어둠 속에서 고물거리며 걸어 나오는 햇살이나 물방울, 실뿌리와 같은 일상의 작은 사물이나 사건들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 사회의 이기심이나 개인주의를 자연의 형식과 같은 약자들의 존재로 드러내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삶을 추구할 때 '문학의 정치'는 가능할 것이다.


정민나는 누구?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2003년 꿈꾸는 애벌레 출간
2012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수료
2011년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교실 (편저) 출간
2011년 점자용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교실 (편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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