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내쫓는 근린공원의 살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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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내쫓는 근린공원의 살충제
  • 박병상
  • 승인 2012.04.25 18: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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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만개한 벚나무의 꽃잎이 주말에 내린 비에 젖어 우수수 떨어지자, 근린공원은 불현듯 연초록으로 물들었다. 노란 산수유와 개나리로 열었던 봄이 하얀 목련과 진달래로 화사하게 이어지더니, 꽃잎이 떨어지면서 연초록으로 어느새 무르익었다. 머지않아 연초록의 작은 잎은 초록색으로 넓게 펼쳐질 테고, 여름이 완연해지면서 진학 녹색으로 질겨질 것이다. 이맘때 태어난 삼라만상의 생명은 도약을 준비할 것이다.

초록색 잎은 연하다. 구청 녹지과 직원이 겨울 전에 짚으로 나무 둘레를 싸는 건 추위 때문이 아니라 해를 주는 곤충이 나무에 알을 낳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하지만 본능에 충실한 곤충들은 어떻게 해서든 알을 낳았고, 잎사귀가 연할 때 애벌레들이 알에서 깨어나 잎사귀를 탐할 것이다. 잎사귀를 갉아먹으며 탈피를 서너 번 하면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에서 나방이나 나비로 변태할 텐데, 그 무렵 무럭무럭 자라나는 새끼들을 부지런히 먹여야 하는 새들은 애벌레가 나방이나 나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줄기에서 사방으로 펼친 가는 가지마다 나무가 잎사귀를 활짝 펼치면 나무 아래에는 그늘이 생긴다. 사람들은 나무 그물 아래 모여 휴식을 취하는데, 나무는 모든 잎사귀에서 탄소동화작용을 해야 살아남아 씨를 퍼뜨리는 건 아니다. 나무는 곤충 애벌레들에게 뜯길 여분의 잎사귀를 충분히 달았다. 다만 애벌레들이 극성을 부리기 전에 새들이 날아온다는 걸 잘 알 것이다. 만일 새들이 날아오지 못한다면, 나무는 질겨지기 전에 잎사귀를 모두 잃을 수 있다. 도마뱀이나 개구리들이 근린공원에 자취를 감췄으므로 녹지를 따라 새들이 날아와야 근린공원은 건강할 수 있다.

작년 늦은 봄 새벽녘 근린공원을 지나 지하철로 향하는데, 눈앞의 나무 가지로 온몸이 파란 삼광조 암컷 한 마리가 살며시 날아와 앉았다. 따뜻한 제주도 곶자왈에 둥지를 치고 여름을 나는 철새로, 파란 꼬리가 몸보다 길어 더욱 아름다운 삼광조는 암수가 같이 다닌다. 그래서 두리번거리다 놓치고 말았는데, 다음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구청에서 근린공원에 살충제를 흥건히 뿌린 것이다. 살충제를 뿌리면 곤충과 그 애벌레는 근린공원과 나뭇잎에서 사라진다. 근린공원 터줏대감이 된 직박구리도 살충제의 독한 냄새를 피해 자리를 떠나는데, 예민한 삼광조가 다시 찾을 리 만무하다.

삼광조는 왜 인천의 한 아파트단지 근린공원으로 왔을까. 생각해볼 이유는 많겠지만, 여름철새가 겨울에 남고 감나무의 북방한계선이 북상하듯, 지구온난화로 인천이 전에 없이 따뜻해진 까닭이 포함될 것이다. 전문가는 요즘 포천의 숲에서 삼광조가 둥지를 쳤다고 보고한다. 한데 제주도 곶자왈이 골프장이나 생수공장으로 거듭 황폐화하지 않았다면, 사람과 자동차들로 시끄럽고 오염된 인천을 방문할 리 없다. 오죽하면 숲이 신통치 않은 근린공원을 탐색했을까. 안쓰럽건만 사람은 살충제로 삼광조를 내쫓고 말았다.

작년 이맘때 근린공원을 쪼르르 걷던 꼬마가 나무그늘에서 보도블록을 꽁꽁 밟아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연초록색의 작은 애벌레게 게 있었다. 그런데 산책을 나온 젊은 엄마가 그 모습을 보더니, "아이 더러워!" 하며 아이의 팔목을 얼른 낚아채는 게 아닌가. 그 애벌레가 더럽다고? 밟아 터뜨리면 신발바닥이 더러워진다는 겐가? 만일 꼬마의 엄마가 "애벌레가 불쌍하게 나뭇잎에서 떨어졌네. 예쁜 나비가 될 테니, 나무 위로 올려주자!"라고 다정하게 이야기했다면, 아이의 심성은 그만큼 고아지지 않았을까? 살충제 세례로 떨어진 애벌레를 밟으려던 꼬마와 그 꼬마 엄마는 근린공원에 스멀거리는 독한 냄새는 눈치 챘을까.

아교를 섞었는지, 요즘 근린공원에 뿌리는 살충제는 끈적끈적하다. 잎사귀에 묻으면 웬만한 빗물로 씻겨나가지 않는다. 햇볕에 뜨거운 상태에 바람이 불면 바싹 마른 살충제는 근린공원을 이리저리 날아다닐 게 틀림없다. 휴일마다 배드민턴에 열중인 가족들, 저녁 무렵 씩씩하게 걷는 아주머니와 노인들, 학교 파하면 자전거 타다 농구에 열중하는 학생들, 그리고 엄마 손잡고 나온 꼬마들이 살충제 가루를 들어 마시게 될 것이다. 살충제를 뿌리면 당장 사람 눈에서 사라지는 애벌레들은 이듬해 내성을 갖추고 다시 나타날 것이다. 더 강력한 살충제를 갱신하며 뿌려야하는데, 애벌레들도 내성을 키울 것이다. 더 독한 살충제를 뿌려야 하나. 그러게 하면 우리 아이들의 아토피는 심화되기만 할 것이다.

울창한 숲에서 녹지축이 온전하게 이어지지 않은 근린공원에 습지가 없으니 개구리나 도마뱀 종류를 다시 들어오게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새들은 찾아오게 배려할 수 있다. 녹지축이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먹을거리와 쉴 공간이 있으면 더욱 좋다. 새들도 이젠 어느 정도 사람들 등쌀을 견뎌낸다. 사람도 예전처럼 귀찮게 하지 않으니 생존을 위해 조금씩 다가온다. 작은 습지를 만들어 놓고 땅콩이나 곡식을 담은 먹이통과 쇠기름을 숲에 걸어두면 박새와 곤줄박이를 비롯한 다양한 새들이 모여드는데, 살충제를 뿌리면 즉각 떠난다. 냄새가 사라지고 애벌레가 다시 나올 때까지 다신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코와 눈을 찌르는 살충제보다 귀를 맑게 하는 새소리가 근린공원을 찾아오는 주민의 건강을 이롭게 한다. 아이들 교육에 좋은 영향을 준다. 사람을 해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애벌레가 그리도 싫다면 새들을 더 많이 불러들여야 한다. 살충제 예산이 있어 뿌리지 않을 수 없다고 고집하는 구청 공무원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 살충제의 종류와 살포 시기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초록 잎사귀가 막 펼쳐 온갖 생명들이 내일을 도약하려 할 때에는 꾹 참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과 근린공원의 건강을 위해 그 정도 배려도 인색해야 할까. 애벌레가 민원의 대상이라니, 옹졸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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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표 2012-05-13 18:40:07
벌래가 공해이긴 하지요 시기가 있는것은 확실합니다
대개는 꽃이 질 무렵 바로 벌래가 알를 실른데 시기를 맞추어 애벌래가 생기기전에 살충제를 뿌려야 효과가 큰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까기 전후로 잘 관찰하여 시기를 맞추는것도 일거 양득.

천동 2012-04-26 11:50:34
정말이지 도심에 있는 공원은 말로만 공원이지 완정 생태단절 지역인 경우가 많습니다. 잔디나 깔고 의자만 설치하면 공원인지 나무들도 완전 격리 상태이고요, 더 심각한것은 아파트들 단지안의 나무에도 매달 소독을 하는 곳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농약 식품을 구입하면서 바로 매일 농약뿌린 나무 근처에서 뛰어놀고 걷기운동하는 사람들은 어쩔건지요! 벌레가 싫다고 초가삼간 다태우는 꼴인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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