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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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소리
  • 이창희
  • 승인 2012.05.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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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수풍물] 당시 신라 주조 기술 세계 최고 수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이 우리나라 종이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믿을까? 위 종은 정식 이름이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인 에밀레종이다. 이 종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종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건 실로 엄청난 사건이다. 1,2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큰 금속예술품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게 정녕 신기하지 않은가? 그동안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변고와 전쟁이 있었는가? 그런데도 이 종은 그러한 고난을 모두  다 견뎌내고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무려 1,200년이나 지난 금속 종이 여전히 존재해 소리를 낼 수 있었으며, 게다가 이 종은 지금도 소리를 낼 수 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말이다. 지금은 보존을 위해 더 이상 타종하지 않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동안 이 종은 많이 홀대를 받았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버려져 있어 아이들이나 소들의 노리개가 되었는가 하면, 경주 읍성의 문을 열고 닫을 때 타종했던 종이 바로 에밀레종이었다고 한다. 박물관으로 오게 된 것은 일제기인 1915년의 일이다. 그런 모진 세월을 겪고도 이 종은 망가지지 않았다.

1,200년이나 지난 금속종이 아직 깨지지 않고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 금속종의 제조 기술이 세계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종이라는 것은 항상 쳐서 소리를 내니 깨지기 쉽지 않겠는가? 그런데 얼마나 잘 만들었기에 1,200년 이상을 두들겨도 아직도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이 종을 만들었을 당시에 신라가 지녔던 기술과 예술 감각이 최고 수준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종과 동시기에 만들어졌던 석굴암이나 석가탑∙다보탑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때 신라에서는 세계 최고의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이 종은 높이가 약 3.4m이고 두께가 약 2.4cm인데 무게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1990년대 말에 마침 최첨단 저울이 나와 재보니 약 19톤의 무게가 나갔다. 19톤은 1만9천 킬로그램이니까 엄청 무거운 것이다. 이 종을 '에밀레'라는 속칭으로 부르는 것은 종을 만들 때 아이를 넣었다는 소문 때문이라고 한다. 종이 울릴 때마다 아이가 어미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나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것인데, 극히 최근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종의 성분을 조사해보니 사람 뼈에 있는 인의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런 소문이 났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 종을 만드는 일이 너무 힘든 나머지 생겨난 설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종을 만들 때 힘든 일이 많았겠지만, 엄청난 양의 주물이 필요한 것부터가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많은 양의 주물을 한꺼번에 넣어야 하는데 이때 유의해야 할 일이 있다. 기포가 가능한 한 생기지 않게 부어서 식히는 일이 그것인데, 기포가 많으면 종이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종이라는 것은 하루도 쉬지 않고 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깨지기 쉽다.

종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 크레믈린 궁 안에 보관되어 있는 종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종은 200톤이나 되는 것으로 세계에서 제일 큰 종이라고 한다. 그런데 제작과정에 물이 들어가 한 번 쳐보지도 못하고 그냥 깨져서 지금은 그렇게 깨진 채로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그 유명한 자유의 종도 깨친 채로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의 에밀레종은 1,200년 이상을 끄떡없이 견뎠다. 도대체 당시 신라의 기술은 얼마나 좋았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학계 일각에서는 이 에밀레종을 포함해 한국에서 생산된 종들을 ‘한국 종’이라는 고유의 학명으로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것은 한국 종이 가진 여러 특징 때문인데, 이 가운데 우선 언급해야 할 것은 그 소리가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멀리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다소 어려운 용어로 ‘맥놀이 현상’ 때문인데, 종에서 진동이 다른 두 개의 소리를 나오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면 이 두 소리가 서로 간섭하면서 강약을 반복하게 되고 이렇게 함으로써 소리를 먼 데까지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종의 소리를 들어보면 ‘웅 웅 웅’ 하면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가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여운이 오래가고 그 덕에 소리가 계속해서 뻗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이 다른 진동을 가진 두 개의 소리가 어떤 장치 덕에 나올 수 있는 걸까? 과학자의 정밀한 분석 끝에 이 종의 상하와 배 부분이 두께가 다른 것을 발견했고, 두 개의 소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것 때문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신라인들이 이처럼 고도의 계산을 한 것이 놀라운데, 이 기술이 가장 잘 발현된 것이 바로 에밀레종이라고 한다. 이런 첨단의 기술을 실험하느라 이 종의 제작 기간이 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에밀레종을 비롯해 한국 종에는 중국이나 일본 종에 없는 것이 또 있다. 우선 종의 꼭대기 부분에 있는 원통형 음통과 용이 그것이다. 이 통은 종의 내부를 파이프처럼 관통하고 있는데 종래의 해석에 따르면 잡음도 제거하고 소리를 사방으로 퍼져 나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통이 종의 소리와는 무관하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즉, 이 장식은 그 유명한 만파식적의 신화를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신화에 의하면, 대왕암이 있는 경주 감포 앞바다에서 용이 대나무를 가지고 왔는데 이것으로 피리(만파식적)를 만들어 불었더니 세상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이 신화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고구려 유민이나 백제 유민들과 생겼던 여러 가지 갈등을 풀고 싶은 염원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염원을 표현한 것이 바로 이 종의 장식이다. 종의 소리를 듣고 모두들 화평해지라는 것이다. 또 종 아래는 항상 움푹 들어가게 해놓는데 이것은 ‘명동(鳴洞)’이라는 장치로 소리가 더 공명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이 장치도 중국이나 일본 종에서는 발견되지 않다.

우리의 종은 탁월한 소리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모습 역시 뛰어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한-중-일 세 나라의 종을 비교해 놓았는데, 한국인의 눈으로 봐서 그런지 몰라도 단연 우리 종의 모습이 가장 우아하다. 종의 외곽 곡선이 가장 유려하게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에밀레종 겉면에 조각되어 있는 비천상도 아름답기 짝이 없다. 비천이란 불교의 천사를 말하는데 서양의 천사와는 달리 날개가 없이도 날아다닐 수 있다. 한국 종 가운데 에밀레종에 있는 비천상이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데, 부처님께 공양하는 모습을 부조했다고 한다.

어떤 독일학자가 에밀레종을 보고 ‘우리나라에 이런 유물이 있으면 박물관 하나를 따로 세우겠다’라고 했다는 소문이 있다. 세계 최고의 종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그냥 박물관 앞뜰에 걸어놓고 있다? 그래 놓고는 소리도 잘 들려주지 않고 이 종이 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종인지 설명해놓지도 않는다. 이렇게 훌륭한 유물이 있으면 좀 더 국민에게 널리 알렸으면 한다

"1,200여년 전 에밀레종 원래의 긴 여운을 들으려면 현재 30㎝인 울림통의 깊이를 1m 정도로 해야 한다. 당시 신라인들은 그렇게 울림통을 만들었을 것이 확실하다." '에밀레종'으로 불리는 신라시대 성덕대왕 신종(국보29호)의 '울림통의 비밀'이 베일을 벗었다. KAIST 기계공학과 김양한(58) 교수는 종과 울림통 크기의 상관관계에 따라 종소리의 울림이 길고 짧아진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울림통은 종 아래 지표면에 움푹 파인 웅덩이를 말하며 에밀레종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범종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이 울림통을 지니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 엑스포과학공원에서 대전시청 광장으로 이전한 엑스포대종의 울림통 깊이를 110㎝, 70㎝, 50㎝, 30㎝로 변화를 주면서 측정한 결과 타종할 때 처음 발생하는 종소리의 고유 주파수와 울림통을 거쳐 나오는 주파수가 일치할수록 울림이 길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 때 종과 울림통 사이의 이격거리도 연관이 있다. 그 동안 울림통이 종소리를 오래 유지하는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됐지만 어느 깊이가 최상의 주파수를 만들어내는지 실험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교수는 이 실험결과를 적용하면 경주박물관에 설치되어 있는 에밀레종의 적정 울림통 깊이는 현재 30㎝보다 3배 이상 깊은 1m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에밀레종의 기본진동수인 64㎐와 근접한 울림 소리가 나오게 돼 종소리의 여운이 가장 길어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10년 전 경주박물관의 에밀레종 종합연구작업에 참여, 에밀레종의 종소리를 과학적으로 풀어낸 국내 권위자이다. 당시 그는 연구논문을 통해 이런 주장을 제기했으나 실험이 뒷받침되지 않아 문화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10년만에 실험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는 실험결과를 대전시에 통보해 엑스포대종의 설치에 반영하도록 했다.

김 교수는 "과거 신라인들도 울림통을 여러 차례 조정하면서 종소리가 더 멀리, 오래 퍼지는 최상의 깊이를 찾았을 것"이라며 "경주박물관의 성덕대왕 신종의 울림통도 다시 복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성덕대왕 신종은 신라 혜공왕 7년(771년) 완성돼 경주 부근의 사찰 봉덕사에 걸렸지만 조선시대 영묘사로 옮겨졌고 지금은 경주박물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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