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가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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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가족'은 없다!
  • 이영주
  • 승인 2012.06.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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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이영주 / 인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는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분석해 '2010 서울 가구구조 변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전체 가구에서 1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4.4%(85만4606)로 4인가구 비중 23.1%(80만7836)를 넘어섰다. 3인가구는 22.5%, 2인가구는 22.3%로 집계됐다. 즉 서울시의 가구 비중이 1인>4인>3인>2인 가구 순인 것이다.

이는 서울시만의 특별한 통계가 아닐 것이다. 통계청이 26일 전망한 '2010~2035 장래가구추계'의 결과 역시 서울시의 가구 변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00년까지 4인>3인>2인>1인 순이었던 가구 변화는 2010년에 2인>1인>4인>3인 순으로 바뀌었다. 특히 2012년부터는 1인>2인>3인>4인 순으로 변한다. 올해부터 1인 가구가 비중이 가장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여기저기서 논평을 내놓는다.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역시 '가족 해체'다. '해체'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어감만큼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대다수다.

그러나 가구의 변화, 정확히는 1인가구의 증가, 더 정확히는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사는 4인가구의 감소가 그렇게 걱정할 만한 일인가? 정말 그런가? 가족 해체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기 전에 냉정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산업의 변화 위에 가구 변화는 필연

대가족의 집단 노동력으로 운영되던 봉건체제가 해체되고 개인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약으로 굴러가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봉건시대의 대가족은 꾸준히 작은 규모로 분화되어 왔다. 그리고 봉건체제 이전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생존을 위해 (지금의 가족과는 전혀 다른) 공동체를 구성해야만 했다. 신자본주의가 득세한 이후 시장은 언제 어디서든 노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노동자 개인을 요구했다. 이렇게 유연해진(!) 노동시장에서 일정한 공간에서 자녀를 양육 또는 교육하거나 돌봄이 필요한 누군가를 보살펴야 하는 가족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통시적으로 가족의 변화를 살펴봤을 때, 산업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가구 변화를 불러온다. 이는 가족 해체를 걱정하는 혹자들의 걱정처럼 이전엔 하늘처럼 드높았던 인륜이 땅에 떨어지고 사람들이 갑자기 이기적으로 변해서 생긴 현상이 아니란 이야기다. 지구상에 인류가 생기고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산업은 발전했고, 사회적 인간이 사는 모양새는 그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현재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들, 제도들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통계로 드러나는 가족의 실상과 우리가 제도교육을 통해, 매스미디어를 통해 만나는 가족은 전혀 다르다. 특히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하는 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가족은 오로지 '4인가구'뿐이다. 물론 제도 속에 그 외의 가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4인가구 외의 가족은 특별히 '선별'해 시혜를 주거나 '관리'해야 할 '비정상'으로 규정된다. 가족을 둘러싼 진짜 갈등은 여기서 비롯한다.

있지도 않은 '정상가족' 판타지에 묶인 제도

사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사는 4인가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절대다수인 적이 없었다. 서울시가 발표한 보고서에 나타난 비율에서도 알 수 있듯, 25%를 넘는 가구 유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1~4인가구가 25% 아래에서 도토리 키재기하듯 순위가 바뀌었을 뿐이다. 문제는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가구로 존재하는 가족을 '4인가구'라는 밑도 끝도 없는 기준선 안에 가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그에 근거한 제도들이다.

이성애결혼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녀의 동거고 구성되는 '4인가구 대세론'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정상적'인 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가치와 규범을 주입한다.

밖에 나가 열심히 일해 돈 벌어 오는 가장 아버지와 집안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가장을 기다리는 어머니로 그려지는 전형적인 '해피홈' 이미지는 영화와 TV드라마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사실 결혼해서 그 이미지대로 사는 경우는 25%도 안 되는 4인가구 중에서도 또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와 가사노동과 자녀 양육을 하느라 대부분의 가구에서 퇴근하는 가장을 기다리는 보글보글 된장찌개는 특별한 날에나 가능할 이벤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하더라도 그 수치가 미미한 해피홈 이미지는 전체 가족의 원형으로 각인된다.

이 정도는 재미로 보는 TV드라마나 영화에나 나오는 판타지일 뿐이니 그냥 넘어가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4인가구=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규정하는 제도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이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제도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 임금체계는 4인가구를 기준으로 한 가족임금 체계다. 그래서 정규직 남성생계부양자에게는 가족수당이라는 것이 기본급에 더해져 나온다. 월급 올라가는데 좋은 일 아니냐고? 그거야 '정상가족'을 구성한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그렇게 받은 가족수당으로 가족을 온전히 부양할 수도 없는 게 또 현실 아니던가.

여성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이 남성노동자 평균임금의 70%도 안 되는 현실은, 4인가구=정상가족 모델에서 여성은 아무리 노동시장에 나왔어도 따로 누군가에게 부양받을 존재이지 독립된 가구를 운영하거나 더 나아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존재로 인식될 수 없기에 가능하다.

결혼하지 않은 이들은 어찌 보면 결혼한 이들보다 안전하고 안락한 보금자리가 필요하지만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한 주택정책에서 '당연히' 배제된다.

노동과 주택뿐이 아니다. 개인 단위가 아니라 가족 단위를 기본으로 두고 있는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정상가족' 바깥의 국민들을 복지의 사각지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내팽개쳐 버린다. 가족의 진짜 위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가족'을 지울 때 가족은 가능하다

인구주택총조사 결과가 나온 김에,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가 나온 김에, '정상가족'이라는 허황된 판타지에서 내려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현실의 가족을 정확히 보자. 우리는 이미 절대다수가 '정상가족'을 구성하고 있지 않다. 절대다수가 그렇지 않은데 어찌 '정상'이란 말이 성립될 수 있는가? 절대다수가 아닌데 그에 근거해 국가의 '보편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하는 게 정상인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가족 간 감정적 정서적 유대와 보살핌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이성애결혼으로 맺어진 부부와 그 자녀(들)'이라는 특정 가구형태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이성애결혼으로 맺어진 부부와 그 자녀(들)'이라는 특정 가구형태를 구성했다고 해서 감정적 정서적 유대와 보살핌이 '당연히' 뒤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국가제도와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이 '이성애결혼으로 맺어진 부부와 그 자녀(들)'이 '정상가족'이라는 틀을 벗을 때, '정상가족' 바깥의 다양한 가족이 이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때, 이 사회를 유지시키는 보살핌과 연대는 가능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가족은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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